[모바일, 이젠 소프트파워다] <1>뒤바뀐 게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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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대 2’

 불과 1년여 전 삼성전자와 애플이 한 해 동안 내놓은 새 휴대폰 수다. 세계 2위인 삼성전자가 매년 100가지 이상의 모델을 내놓을 때 애플은 겨우 2개만 내놓았다.

 ‘9 대 28’

 같은 기간 삼성전자와 애플이 휴대폰사업으로 달성한 영업이익률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2009년 휴대폰 부문에서 영업이익률 9.8%를 달성하는 동안 애플은 겨우 2개 모델로 28.8%라는 세 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스마트폰이 야기한 ‘모바일 빅뱅’이 게임의 법칙을 바꾸고 있다.

 휴대폰 시장에 혜성처럼 나타난 애플은 2009년 ‘아이폰’으로 5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휴대폰 부문 영업이익 4조1000억원을 9000억원이나 앞지른 실적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애플의 휴대폰 판매 수는 삼성전자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는 사실이다. 그간 휴대폰 판매량 늘리기가 미덕이었던 업계 관계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가로 6㎝, 세로 11㎝의 ‘아이폰’은 시장 판도마저 흔들었다. 세계 3위 휴대폰업체 LG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8~9위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게임의 법칙을 바꾼 원동력은 바로 ‘소프트파워’다.

 ‘소프트웨어’ ‘사용자 중심 인터페이스’ 등이 ‘아이폰 열풍’을 불러왔다. 무엇보다 생산자가 일방적으로 완성품을 제공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사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 유통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은 폭발력이 대단했다.

 애플은 아이폰 판매와 별도로 애플리케이션 오픈마켓인 ‘앱스토어’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선순환 구조도 만들어냈다. 모건스탠리는 전 세계 애플리케이션 시장 규모가 지난해 68억달러에서 2013년에는 295달러로 네 배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앱스토어 시장을 선점한 애플의 파죽지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비단 스마트폰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아이패드와 갤럭시탭 등으로 불붙은 스마트패드 시장에서도 결국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가 승부를 가를 전망이다.

 소프트파워 경쟁은 모바일 시장을 단말기 전쟁에서 플랫폼 전쟁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구매할 땐 삼성, 노키아, LG 등 하드웨어 제조업체 브랜드를 첫손으로 꼽았지만, 이젠 iOS, 안드로이드, 윈도모바일 등 플랫폼을 따진다.

 미국 아틀라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구매의 결정적 요인은 1위가 ‘기능과 애플리케이션(26.8%)’이었다. 2위가 조작성(14.5%), 제조사 브랜드는 3위(11.6%)에 그쳤다.

 한국에서도 킬러 앱이 스마트폰 판매나 통신사 가입자 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례가 나타났다. 아이폰 열풍에 고전하던 SK텔레콤은 지난해 내비게이션용 전자지도 ‘T맵’으로 오히려 공세모드로 전환했다.

 2009년 말 30만명 수준이던 ‘T맵’ 이용자는 지난해 말 기준 250만명으로 늘어났다. 아이폰에 밀리던 ‘갤럭시S’ 등 안드로이드폰 판매도 T맵 인기에 힘입어 판매량이 꾸준히 증가했다.

 모바일뿐만 아니라 IT 전체 시장은 이미 소프트파워가 하드파워를 역전한 지 오래다.

 시장조사기관 집계에 따르면 세계 SW 시장은 1조300만달러다. 7700억달러 규모인 HW 시장보다 무려 3000억달러가량 많다.

 휴대폰 제작비 가운데 SW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9년 59%를 넘어섰다. 스마트폰에서는 80%에 이를 정도로 높아졌다.

 IT 시장 게임의 법칙이 바뀌는 동안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지난해 ‘아이폰 쇼크’에 허덕였던 우리는 여전히 소프트파워에 관한 한 변방에 머물러 있다.

 휴대폰 세계 시장 점유율이 30%를 넘지만, SW 시장 점유율은 고작 1.8%에 불과하다. 지난해 1500억달러에 달하는 IT 수출액 가운데 SW는 10억달러에 그쳤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전 세계 휴대폰의 30% 이상을 우리나라가 만들지만 제대로 된 운용체계(OS) 하나 없다”며 “현재 공짜로 공개된 안드로이드가 유료로 전환하면 한국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창의력과 철저한 관리기법, 수평적인 협력모델이 필요한 SW산업은 HW와 달리 압축 성장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오랫동안 눈에 보이는 ‘하드파워’에 연연해온 우리 기업의 문화와 인식 변화 역시 쉽지 않다.

 바뀐 게임의 법칙을 거스르는 낡은 제도 역시 발목을 잡고 있다. 사전심의 규제에 묶여 스마트폰용 게임을 국내에서 서비스할 수 없는 현실이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지난해 1월 세계 최대 가전쇼 CES 현장에서 삼성과 LG 관계자들은 시대 흐름을 간과했다고 자탄했다. 당시 남용 LG전자 부회장은 “우리는 백화점 건물(단말기)을 짓는데, 애플은 거기에 10만개 점포(애플리케이션)를 들여 돈을 벌고 있다. 이젠 디바이스만으로는 승부를 걸 수 없다”고 말했다.

 그 뒤 1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얼마나 자성하고 분발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소프트파워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바일 시장은 아직 초창기다. 그만큼 기회도 많다. 이젠 모바일 HW 강국에서 모바일 SW 강국으로 대변신을 모색할 때가 됐다.

 특별취재팀=장지영차장(팀장) 김원배·김인순·권건호·정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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