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참으로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20일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윤용로 기업은행장이 이날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밝힌 이임사 한 구절이다. 2007년 말 취임한 윤 행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느꼈던 소회다. 당시 윤 행장이 이끈 기업은행의 행보는 놀라울 정도였다. 주요 시중은행 대부분이 중소기업 대출에 소극적이며 ‘비올 때 우산을 빼앗는다’라는 비판을 받을 당시, 기업은행만은 중소기업 챙기기에 적극적이었다. 한참 경기가 불투명했던 2008년 4월에는 중소기업 대출금리를 최대 1%포인트 인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당연히 중소기업들은 기업은행 문을 두드렸다. 올초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규모는 전년과 비교해 14.1%(10조4000여억원)나 늘었다. 6개 주요 시중은행 증가액의 85%에 달하는 압도적인 규모다.
‘현장에 답이 있다’며 중소기업인들과의 지속적인 자리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윤 행장이 전국 중소도시를 방문하며 현장의 소리를 청취해 업무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마련한 ‘타운미팅’ 횟수는 무려 42회. 이를 통해 약 2000명의 중소기업 CEO와 대화를 나눴으며 이들로부터 358건의 제안을 받아 총 50건을 자체적으로 개선하고, 27건을 정부에 직접 건의했다.
윤 행장은 이임사에서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중소기업대출을 어떻게 운용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면서 “여신건전성을 시중은행 중 가장 잘 관리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그 결과 소기업 지원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다하면서 생존을 뛰어넘어 더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업은행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9월 말 기준 총 자산규모 171조3000억원으로 시중은행 빅4로 도약했다. 당기순이익도 1조482억원으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다하면서 생존을 뛰어 넘어 더 큰 도약을 이룬 셈이다.
행시 21기 출신인 윤 행장은 재정경제원 은행제도과장과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2국장 및 부위원장을 거쳤다.
후임 행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차기 행장 후보로는 기업은행 내부에서는 조준희 전무(수석부행장)와 외부의 권혁세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용환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등이 거론된다. 후임은 내년 초 예정돼 있는 경제부처 개각과 맞물려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