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22>
김 대통령 “국가적으로 중요한 초고속망사업은 범정부적으로 추진해야”
사진-김영삼 대통령이 94년 7월19일 국정보고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초고속망관련 자문기구로 94년 10월24일 초고속 자문위원회 발족했다.
기획단 출범
인생만 역전(逆轉)이 있는 게 아니다. 산업에도 역전이 있다.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은 한국의 산업 역전을 불러온 한 동인(動因)이었다. 산업화에서 뒤진 한국의 면모를 정보화로 일신(日新)한 것이다.
1994년 5월 30일 초고속정보화추진위원회가 발족하자 체신부는 범정부 조직인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기획단 구성에 역점을 두었다. 국무총리실과 총무처 등을 뛰어다니며 인력과 예산 지원 등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기획단 구성 실무를 담당했던 김인식 체신부 정보망과장(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장, 한국정보인증 사장 역임)의 증언.
“국무총리실과 총무처를 다니며 업무 협의를 했습니다. 당시 국무총리실의 이기호 행정조정관(노동부 장관, 청와대경제수석 역임)과 변재일 산업심의관(정통부 차관 역임, 현 국회과학기술위원장) 등을 만나 사업 계획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이 조정관은 초고속정보통신망 계획을 설명하자 금새 관심을 보이더군요. 윗분이 관심을 가질만한 정책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어요. 그 자리에서 `알았다. 국무총리에게 보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로인해 이회창 총리(현 자유선진당 대표)가 이 사업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한 작은 에피소드 하나.
이 총리 주재로 열린 1994년 4월 14일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회의와 관련한 언론 보도가 기대에 못미치자 이 총리가 못내 아쉬움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총리실 관계자가 이튿날 기자실로 내려와 보충 설명을 했다. 당시 언론은 회의 내용이 체신부 발표 내용을 재탕한 것이 아니냐며 평가절하했던 것. 총리실 관계자는 “총리는 미래정보 사회에 대비한 이 정책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앞으로 이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체신부가 앞서 발표한 안은 시안이고 이번 총리주재 회의는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통해 세부계획을 확정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총리가 이 정책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일이었다.
김 과장은 총무처와도 수차례 기획단 인력과 조직에 관해 협의했다.
김 과장의 이어지는 증언.
“인력과 관련해 총무처는 무척 까다롭습니다. 그런 총무처가 이 일에는 아주 호의적이었습니다. 국가정보화를 하기 위해 기획단 조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더니 실무자인 인사과 이성렬 과장(소청심사위원장, 대한지적공사 사장 역임)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7월 2일 충북 청원군 경부고속전철 중부사무소 및 공사현장을 방문하고 현지에서 신경제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 윤동윤 체신부 장관(한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과 박성득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SK&C 고문,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이 참석했다. 체신부는 김 대통령에게 3월에 이어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에 대한 사업계획을 재차 보고했다.
박 실장의 기억.
“보고할 내용은 브리핑 차트로 만들어 갔어요. 다섯 장 분량의 내용인데 사업 총괄 개요를 보고 했습니다.”
윤 장관은 7월에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초고속정보화추진위원회에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기획단 설치 운영안을 제출했다. 이 안에 따르면 기획단은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과 운용을 관장하며 인력은 관련부처와 정부 기관 등에서 파견받기로 했다. 기획단 부단장 이하 구성원은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관련 업무에 전념하고 인사나 복무규정은 공무원 복무규정을 준용키로 결정했다.
이런 방침은 1994년 7월 5일 경제기획원 회의실에서 열린 초고속정보화추진위원회 1차 실무위원회에서 확정됐다. 실무위원장은 한이헌 경제기획원 차관(청와대 경제수석, 15대 국회의원,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역임, 현 한국디지털미디어고교장)이었다.
기획단은 단장과 부단장 각 1명과, 기획총괄반, 국가망계획반, 공중망계획반, 기술개발반, 망운영반, 기술지원반 등 6개반 49명으로 구성키로 했다. 이 중 25명은 경제기획원과 상공부, 과학기술처, 총무처, 공보처 등 7개 부처에서 파견하는 인원으로 충원키로 했다. 나머지는 한국통신(현 KT)과 데이콤, 한국이동통신(현 SKT),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사회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통신정책연구소(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등에서 전문인력을 선발했다.
구축단 반별 업무도 확정했다. 기획총괄반은 망구축계획총괄 및 종합심사분석 · 평가, 관련 법령 및 제도검토, 수요조사 및 공공부문 신규서비스개발 · 지원, 민간부문의 관련서비스개발촉진 및 지원 업무를 맡기로 했다. 국가망계획반은 국가망구축의 단계별 · 연차별 세부추진계획수립, 소요재원조달방안 수립, 연도별 예산계획안 편성 및 확보, 공공전산망(국가기간전산망 등) 수용계획수립과 추진 업무를 맡았다. 공중망계획반은 공중망구축 추진계획 심의조정, 국가망과의 연계추진방안수립, 공중망 민간투자촉진제도수립(세제 · 금융 등), 사업자별 망구축진도 관리를 담당키로 했다. 기술개발반은 망관련 기술개발기본계획수립, 국내외 기술개발동향 조사분석, 기술개발기관간 협력 · 지원, 연구개발업무를 지원키로 했다. 망운용반은 선도시험망 구축운용, 시험망을 이용한 기술개발과제 선정 · 지원, 정보화시범지역 구축사업추진, 시범사업구축개발 등 관련업무, 전산망간 연동운영기술개발, 망 보안성 · 안전성 · 신뢰성 대책을 수립키로 했다. 기술지원반은 초고속망관련 제품의 표준화추진, 시험 · 인증 등을 위한 기술기준 · 규격 · 표준 등 제정, 핵심기술의 국제협력방안지원, 개발된 기술의 관리 및 이용촉진 업무를 담당했다.
부처별 전담반은 △산업발전(상공자원부) △방송산업(공보처) △연구개발(과학기술처) △정보인력(교육부) △문화 · 영상산업(문화체육부) △지방행정(내무부) △국방(국방부) △의료 · 복지(보건사회부) △교통 · 물류(교통부) 등으로 나눴다.
이 후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과 관련한 각 부처 협조는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됐다. 경제기획원은 당장 예산부터 증액시켜 주었다.
예산관계로 경제기획원을 뛰어다녔던 김인수 사무관(현 국가인권위 고위공무원)의 말.
“당시 경제기획원 예산담당이 남준현 사무관이었습니다. 체신부 업무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람 일이란 참 알 수 없더군요. 그가 나중에 정보통신부로 왔어요. 지금은 제주체신청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7월 11일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 기획단장에 박성득 정보통신정책실장을 겸임 발령하고 기획단 부단장에 천조운 체신부 국장(정통부 전파방송괸리국장, 중앙전파관리소장 역임, 작고)을 임명했다. 관련 부처도 기획단 인력에 대한 인사발령을 냈다.
기획단 기획총괄반장은 노준형 경제기획원 서기관이, 국가망계획반장은 체신부 이계순 서기관(현 서울체신청장), 공중망계획반은 체신부 차양신 서기관(방통위 고위공무원, 이용자보호국장 역임), 기술개발반장은 한국전자연구소 김용준 박사(책임연구원), 망운용반장은 한국통신 전인성 박사(현 KT GSS부문장), 산업화지원반장은 최갑홍 서기관(산자부 기술표준원장 역임, 현 한국표준협회장) 등이었다.
이 중 기획단에 파견 나왔다가 해당 부처로 복귀하지 않고 정통부로 자리를 옮겨 승승장구한 사람이 노준형 기획총괄반장이다. 그는 행시 21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해 경제기획원 투자기관1과장을 거쳐 기획단에서 파견근무를 하다 1995년 5월 정통부 정보망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후 기획총괄과장, 국제협력관, 전파방송관리국장, 정보통신정책구장, 기획관리실장, 차관을 거쳐 정통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의 회고.
“1년간 미국 연수를 끝내고 보직대기중인데 어느 날 안병우 정책조정국장(예산청장, 충주대 총장 역임)이 불러서 갔더니 `체신부에 미래기구가 발족하는데 파견을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알겠습니다`하고 파견을 나갔어요.”
그 후 기획단에서 그의 기획력과 탁월한 업무능력을 높이 평가한 정홍식 기획단장(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 정통부 차관, LG데이콤 부회장 역임)과 천조운 부단장 권유로 이듬해인 1995년 5월 정통부 정보망과장으로 변신해 제2의 공직 길을 걸었다.
노 과장의 회고.
“정 실장과 천 부단장이 `정통부에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좋다`며 복귀를 만류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정통부에 남기로 했지요” 결과적으로 그의 정통부 선택은 탁월했다. 청운의 꿈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7월 19일 오전 청와대에서 상반기 국정평가보고회의를 주재했다. 이날 윤동윤 장관은 초고속정보통신망 운용에 관해 보고했다. 윤 장관은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을 위해 망구축, 재원조달, 응용서비스 및 기술개발, 민간투자촉진방안 등 종합추진계획을 11월까지 수립하겠다”고 보고했다. 윤 장관은 “미래 정보사회의 모습을 앞당겨 국민에게 보여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정보화시범지역을 연내 확정, 내년부터 시범사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 후 청와대 대변인(문화체육부 장관, 정무1장관 역임)이 소개한 김 대통령과 윤 장관의 대화 내용.
△김 대통령=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윤동윤 체신부 장관=국무총리 산하에 범정부차원의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체신부내에는 기획단을 설치해 11월까지 종합 추진계획을 세우겠습니다.
△김 대통령=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이고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것이므로 체신부내로 국한하지 말고 범정부적으로 추진하기 바랍니다.
체신부는 10월 24일 초고속망 구축과 관련한 정책 자문과 여론수렴기구로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 자문위원회를 발족했다. 자문위원회는 이날 오후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첫 회의를 열고 김진현 전 과기처 장관을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위원은 학계와 언론계, 사회단체 인사 등 각계 인사 25명으로 구성했다. 인터넷 강국의 꿈은 기획단 출범과 더불어 차츰 무르익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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