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의 활로는 파운드리와 반도체 설계인력 양성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대만에서 배울 것이 많다. 1~2년 전의 반도체 치킨 게임에서 한국이 대만을 밀어낸 것은 메모리 한 분야에 지나지 않는다. 놀랍게도 2009년도 반도체 전체 매출액에서 대만은 271억달러로 265억달러의 한국을 넘어섰다. 대만의 반도체 매출 구성 포트폴리오는 메모리 편중의 한국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탄탄하다. 증가세를 보아도 대만이 앞선다.
대만의 제조설비가 없는 순수 반도체설계전문업체, 소위 팹리스의 2009년 매출액은 106억달러로 15억달러의 한국을 크게 압도한다. 팹리스는 반도체산업과 시스템산업의 가교역할을 하기 때문에 팹리스의 부진은 반도체산업의 부진에서 끝나지 않고 시스템산업의 경쟁력, 미래 전망에도 영향을 준다. 그런데 팹리스는 파운드리가 있어야 온전한 기능을 하므로 결국 반도체 파운드리가 시스템 산업과 반도체 산업 사이의 진짜 가교, 혹은 병목이 되는 것이다.
대만은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면서 이 병목에 고지를 만들어 점령하고 여기에서 미디어텍과 같은 막강한 팹리스 기업군을 만들었다. 대만 정부는 국가연구소 정책에 있어서 우리나라와는 매우 대조적인 길을 걸어왔는데 매우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1960, 1970년대에는 ITRI와 같은 국가연구소에서 PC 주기판을 카피하는 일을 함으로써 중소기업을 지원하였고 1980년대에는 TSMC 와 같은 반도체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듦으로써 대만의 전자산업의 생태계의 대부역할을 하게 하였다. 대기업에서는 우리가 이겼지만 중소기업과 정부정책에서는 대만이 더 잘하고 있다. 대만은 기술전문가들을 정책 수립과 추진에 더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이대로 그냥 가다가는 우리 미래의 먹거리 반도체가 우려스러워 질 수 밖에 없다.
정부의 산업정책은 산업, 연구와 인력양성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연구소의 연구나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이 기업체에서 개발할 제품을 직접 개발하는데 쓰여서는 안 된다. 당장은 효과가 있어도 배증의 효과나 타사업과의 시너지 효과가 없는 일에 나랏돈을 들여서는 안 된다. 열매를 거두는 것은 물론 씨앗을 뿌리는 것도 기업에게 맡기고 정부는 오로지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그 안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이 마음껏 활동하여 성공하도록 해야 한다.
그 생태계는 바로 우리 산업의 큰 기둥인 시스템산업과 반도체산업을 연결하는 팹리스를 키우는 것인데, 그러려면 파운드리를 우선적으로 키워야 한다. 파운드리에 물을 주면 팹리스가 잘 자랄 것이고 그러면 반도체와 시스템이 단단해진다. 단단해진다는 것은 시황을 덜 타고 이윤폭이 더 커짐을 뜻한다. 팹리스 기업에게 단기 연구비를 지원해주는 정책만으로는 대만을 이기기 어렵다.
팹리스를 위한 설계인력, 파운드리를 위한 공정과 설계 간 인터페이스 인력을 키우는 인프라를 강화하는데 돈을 써야 한다. 이것도 대만은 7년전에 이미 실리콘소프트라는 3500억원 규모의 국가프로젝트로 시작했고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놀라운 성공이다. 대만에서는 매년 2000명의 석사급 설계전문가들이 기업으로 배출되며 팹리스의 고속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각종 전자관련 국제학회에서 대만의 도약은 우리를 훨씬 능가한다. 궁극적인 승리는 좋은 생태계를 갖춘 자의 것이다. 생태계를 갖추는 것은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 일이다. 서둘러야 한다.
경종민 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 kyung@e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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