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국내 산업 가운데 제일 극심한 타격을 입은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조선업이다. 금융시장이 위축되면서 선박금융시장이 빠르게 냉각됐고, 전 세계적으로 신규 선박 발주량도 급격하게 줄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삼성중공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급격한 수주 감소로 인해 적지 않은 후유증에 시달렸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삼성중공업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삼성중공업이 지난 1974년 창사 이래 상선 수주 잔량 기준 세계 1위 조선사로 등극한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삼성중공업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 조선산업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세계 경기가 호전되면서 선박 발주가 다시 회복세로 돌아선 외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지만 삼성중공업이 액화천연가스(LNG)선, 드릴쉽 등 고부가가치 선박 개발에 전념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삼성중공업으로서는 불황이 오히려 기회로 작용한 셈이다.
그리고 그동안 삼성중공업이 부단히 노력해 왔던 프로세스 선진화와 정보시스템 고도화 작업이 시의적절하게 진행됐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중공업의 정보화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황규옥 정보서비스그룹 그룹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추진해 온 프로세스혁신(PI)과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선진 프로세스를 갖춘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면서 “어려운 시기에 시스템 경영과 지속적 혁신 활동으로 생산성과 품질을 높일 수 있었던 것은 핵심 정보시스템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신규 사업 진출에 따른 정보화 지원에 총력=최근 풍력발전 설비 사업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5월 미국 시엘로로부터 2.5㎿ 규모 풍력발전기 3기를 수주하면서 미국시장에 진출했다. 11월에는 국내 최초로 풍력발전기를 해외에 수출하는 등 사업 초기부터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처럼 삼성중공업이 신규 사업인 풍력발전 설비 사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황 그룹장에게도 신규 사업 진출에 따른 정보시스템 구축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황 그룹장은 최근 연간 생산능력 500㎿ 규모의 풍력발전기 공장 준공에 맞춰 ERP 시스템 및 생산관리시스템(MES) 구축 등 정보화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1차적으로 공장 오픈과 함께 MES를 일부 가동했고, 나머지는 오는 연말까지 구축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ERP 시스템은 영업, 설계, 구매, 생산, 품질 등 우선순위가 높은 업무를 중심으로 연말까지 구축 완료하고, 내년 상반기 안에 현장 설치와 서비스 기능까지 프로젝트를 모두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선박 및 육상용 전자장비를 생산하는 삼성중공업 디지털사업부에도 SAP ERP 시스템을 도입했다.
조선업의 독특한 업무 환경 탓에 ERP 구축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는 황 그룹장은 “그래도 외부 컨설턴트를 활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모든 구축 작업을 완료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며 “전사적으로 ERP 패키지를 적용하면서 내부 역량을 그만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황 그룹장은 신규 사업 진출에 따른 ERP 확장 구축 외에 현재 전사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SAP ERP 시스템 ECC6.0 버전을 업그레이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내년에 SAP가 새로 발표할 버전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황 그룹장은 “SAP에서 개발한 여러 가지 확장 ERP 시스템을 놓고 조선업에 적합한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올해 이러한 검토 작업을 거쳐 내년에 대규모 업그레이드 작업을 진행하면서 또 한 번 프로세스 혁신을 계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에는 중국에 있는 영파 및 영성 조선소에 ERP 시스템을 확대 적용하는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현재는 중국의 조선소와 블록 제작 등을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만 구축돼 있으나 앞ㅇ로는 독자적으로 신조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다는 방침이다.
◇내년 핵심 사업은 `BI와 모바일 오피스`=지난해 말 삼성중공업은 정보화전략계획(ISP)을 수립했다. 초일류 중공업을 지향하는 `스마트 삼성중공업(SMART SHI)`을 정보화 비전으로 정하고, 12개의 IT 영역별로 전략과 로드맵을 수립했다. 전사 ERP 고도화부터 IT인프라와 보안,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지식경영(KM), 캐드(CAD), 컴퓨터지원설계/제조(CAD/CAM), 제품수명주기관리(PLM), 공급망관리(SCM) 등에 대한 고도화 계획이 수립됐고, 전사기준정보 · IT융합 · 그린IT 등의 추진 전략과 과제들을 도출했다.
요즘 황 그룹장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은 신규 사업 진출에 따른 IT서비스 지원도 만만치 않은데다 이러한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과제 가운데 내년에 황 그룹장이 우선적으로 집중할 IT프로젝트는 BI 시스템 구축이다.
지난 2008년 ERP 시스템 오픈 당시에는 임원정보시스템(EIS) 등 필요한 부분만 일부 도입했다. 내년에 데이터웨어하우스(DW) 구축에서 분석평가시스템 등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BI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이미 축적된 데이터를 다양하게 분석 활용해 신속한 의사 결정을 지원하고 사전에 위험 요소를 파악해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또 내년에는 모바일 오피스 구축 작업도 완료할 예정이다. 기존보다 성능이 두 배 향상된 `와이브로 웨이브2`를 KT와 함께 올해 안으로 구축 완료하고, 내년부터는 조선소 어디에서나 정보시스템에 접속해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할 전망이다.
황 그룹장은 “그동안 삼성중공업은 CDMA 기반의 무선통신을 이용했는데 전송속도 등의 문제로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었다”면서 “와이브로 구축을 통해 무궁무진한 다양한 서비스 지원이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약력=삼성중공업 황규옥 정보서비스그룹장은 1983년 입사해 삼성중공업의 통합생산관리 시스템과 해양통합관리 시스템 개발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총괄한 주인공이다. 지난 2005년에는 삼성중공업의 PI와 ERP 개발을 맡아 성공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거제=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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