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유형준 전자신문 반도체디스플레이팀장)=오늘 좌담회는 정부와 업계 및 학계를 대표하는 여러분을 모시고 디스플레이 산업의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살펴보는 자리다. 먼저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 위상에 대해 오랫동안 업계에 몸담고 계셨던 분들의 평가를 듣고 싶다.
◇정호균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고문=지난 2분기에도 우리나라 LCD 업체는 기념비적인 시장점유율을 유지했다.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60억달러 매출을 돌파한 것은 물론이고 LG디스플레이도 24.2% 점유율로 출하량 1위를 기록했다. 또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AM OLED 시장에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점유율 98%를 넘는 등 압도적인 우위를 확인했다. 이 같은 성과는 결국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이 뒷받침된 결과다.
◇배효점 에스에프에이 사장=디스플레이 산업을 전방과 후방으로 나눠볼 필요가 있다. 패널을 중심으로 한 전방 산업은 2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비를 포함한 후방산업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초기 후방산업은 외국 업체가 사실상 독점했다. 10여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후방산업이 육성되기 시작됐고 관심의 대상이 됐다. 이렇게 후방산업에 힘을 기울인 결과 어느 정도 선진 업체를 따라잡은 부분이 있지만 품질에 직결되는 전 공정 장비는 아직도 차이가 크다. 늦게 시작한 만큼 적은 투자로 대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와 전방 업체들이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정보를 공유해 나가면서 후방산업을 위한 공동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전방산업이 더 강력한 경쟁력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삼성전자는 지난 1998년 이후 지속적으로 세계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 LCD 패널 업체 입장에서 어떤 과제가 남아 있는가.
◇문주태 삼성전자 전무=최근 디스플레이 업계의 여러분이 LCD 산업의 미래 성장성을 우려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속 성장을 위해 개척해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원천 액정 기술을 비롯해 장비와 소재의 성능 향상도 아직 숙제가 산적해 있다.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 패널과 후방의 중소 업체가 협력해야 한다.
◇사회=디스플레이 산업은 소재 경쟁력도 매우 중요하다. LG화학은 편광판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고, 미래나노텍도 프리즘필름 시장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 국내 소재 산업의 현황은 어떤가.
◇손세환 LG화학 상무=LG화학이 편광판 사업을 시작한 지 이제 15년이 됐다. 또 컬러필터와 OLED 사업도 15년 이상 꾸준히 연구개발해 왔다. 현재의 성과가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요구되는 차세대 소재들은 점점 더 시장에 적용되는 시간이 짧아진다. 더욱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의 전선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수한 인적 자원의 뒷받침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소재는 물론이고 관련 업계가 10년, 20년 후를 보고 장기적으로 사람을 키우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재 양성만 놓고 보면 이미 중국과의 양적, 질적 경쟁에서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정부뿐만 아니라 업계가 모두 심각하게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권오경 한양대 교수=이 부분은 학계의 책임이 큰 것 같다. 디스플레이 관련 학과들은 지금도 10년 전 교재로 교육하고 있다. 교과과정도 표준화돼 있지 않다.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업계 전문가와 함께 여러 과제를 추진 중이다. 우수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학계가 기업의 요구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 기존 인력의 재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허종욱 미래나노텍 상무=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차세대 소재를 준비해야 하는데 정보가 상당히 부족한 것을 느낀다. 또 시장이 언제 열릴지도 확신이 들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등 대기업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또 소재 분야에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
◇사회=장비 · 소재 산업의 경쟁력 향상과 이를 위한 인력 양성 문제 등이 거론됐다. 이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대책은 어떠한가.
◇정만기 지식경제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우선 공과대학에 들어가는 인력의 질적인 수준이 전보다 떨어진다. 양적으로는 연간 4만명의 인력이 배출되지만 실제 기업에서 쓸 인재는 부족하다. 또 전공 이수 비중이 30% 정도만 되면 졸업이 가능하다. 수학 · 물리 등 기초가 되는 과목을 피하고 전공은 최소로 이수하다 보니 본질을 모르고 졸업하는 경우가 많다. 창의성 있는 연구개발 인력 양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식경제부는 두 가지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지경부가 지원하는 국가연구개발 사업은 전공과목의 비중을 높이는 대학 위주로 집중될 것이다. 공과대학 교육을 질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이다. 또 대학원 수준에서 인문, 경영, 사회 등을 아우를 수 있는 융합형 명품 인재 양성에 나설 것이다. 이런 것들이 실행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인력 양성이 가능하다.
플렉시블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지금도 연 150억원 정도의 자금이 투입돼 연구개발하고 있다. 산업의 발전 단계를 볼 때 패널이 먼저 발전하고 심화하면서 소재나 장비의 경쟁력도 뒤이어 향상된다. 이 분야에 연구개발을 집중하는 기업에 세액 공제 등 제도적 지원을 할 예정이다. 수요와 연계한 연구개발 지원에도 신경쓰겠다.
◇사회=반도체는 장비와 재료 국산화가 20% 불과하다. 하지만 디스플레이는 이미 국산화가 50%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의 역할이 컸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김호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디스플레이 산업 비중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협회는 앞으로도 정부의 좋은 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업계의 의견을 잘 취합해고 전달하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또 11세대 투자를 위한 장비 개발 등 업계 공동의 협력 체계 구축에 노력하겠다. 이미 14개 핵심 장비별로 패널 업체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고 실질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디스플레이 전후방 업체의 요구를 잘 취합해 산업이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사회=삼성전자 등 국내 LCD 업체의 주력 라인이 8세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추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문주태=국내 라인이 8세대에 머물기 때문에 추격을 허용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핵심은 시장이 요구하는 크기와 제품에 맞춰 비용을 낮추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혁신적인 공정 개발을 통해 충분히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11세대는 시장과 투자 시기 등 여러 가지 상황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사회=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 신화는 산학연이 상당히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가능했다는 평가다. 인력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권오경=많은 고민 중이다. 우리 대학은 공과대학의 전공 비중을 반 이상으로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업이 그런 대학에 장학금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스플레이 전공 교수들도 많이 줄었는데 원격 강의로 보완할 수 있다. 이런 시설 투자에도 정부와 기업이 관심을 가져달라. 또 교수들도 학생들의 교육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교수 평가가 논문 게재 및 연구 수주에만 집중되다 보니 본분인 교육에 소홀하게 된다.
◇정만기=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 공과대학 질적 개선 방안 등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다. 공과대학에서 교육과 현장 실습에 매진하는 교수들이 우대받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할 것이다.
◇사회=마지막으로 디스플레이 강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제언을 해달라.
◇배효점=장비가 챔피언이 돼야 전방 산업이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핵심 소재를 모르고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하기 어렵다. 우리 장비 업계는 소재 업체들과 사실상 분리돼 있다. 전방 업체들이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협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기 바란다. 또 국내 장비 업체들이 영세하다 보니 개발 자금 확보가 가장 큰 문제다. 정부와 전방 업체가 전략적으로 공동의 인프라를 구축해 줘야 한다.
◇문주태=소재와 장비 업체 간 정보 공유를 통해 윈윈할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런 장을 디스플레이산업협회에서 활성화하면 이런 욕구는 해결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내 장비 업체의 수준이 빨리 향상되고, 고품질 패널을 만드는 데 기여하기 바란다. 컨소시엄을 형성해서 인프라를 만들고 공동 개발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호균=어린 세대들이 이공계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자. 좋은 자질을 갖춘 인력이 이공계에 몰릴 수 있도록 성공적인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손세환=장비 업체들과 공동 작업을 진행하면서 원천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절감한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장비도 나사 하나가 잘못되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한다. 기본과 정석을 지켜야 하는데 국내 업계는 하부로 갈수록 열악한 상황이다. 인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밑바닥부터 체계를 다지고 기본을 갖춰야 한다. 이는 대기업부터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인 고민이다.
◇정만기=강력한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번 좌담회에서 잘 나타났다. 사소한 부품 하나에 전체 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생(相生)이다. 소재나 하도급 업체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대기업이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싼 값에만 사려고 하면 결국 기본이 무너진다. 중소기업이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여력도 안 생긴다.
물론 국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단가 인하가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초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정부도 국산 장비 유지보수 비용을 외산과 동등하게 책정하는 등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업계는 최종 세트를 만드는 다른 산업과 비교해서 아직은 생태계가 건전하다고 생각한다. 업계가 함께 상생협력 방안을 만들면 정부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면서 디스플레이 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사회=긴 시간 동안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을 위한 고견을 많이 도출해 주셔서 감사하다.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의 지난 20년은 1등을 향한 험난한 여정이었다. 앞으로의 20년은 신시장 개척, 혁신적인 기술 개발 등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새로운 도전을 즐길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산학연이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겠다.
정리=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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