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 수십년간 압축성장을 거듭해왔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유달리 대기업 주축의 산업 구조가 형성되고, 중소기업의 대기업 의존율이 높아진 산업 전반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이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정부가 대 · 중소기업 상생협력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대기업의 무리한 납품단가 인하 요구 등으로 중소기업이 멍들고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기업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국내 유명 대기업들이 앞다퉈 상생협력방안을 내놓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자칫 거시적이 아닌 `반짝 쇼`로 끝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전자신문은 최근 3회에 걸쳐 진행해온 `대중소 상생협력`시리즈를 마감하며 각계 인사들을 초청, 그간의 성과 및 과제 등을 살펴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번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구매조건부 신제품개발지원사업을 정부의 연구개발(R&D)지원사업 중 가장 큰 성공 사례로 꼽으며 참여 대상 및 예산 확대 등을 요청했다.
<참석자>
-류헌 삼성전기 상무
-서상혁 호서대 교수
-신기룡 중소기업청 기술개발과장
-조태용 대중소기업협력재단 기술협력센터장
-하승철 센코 대표
(가나다순)
-사회: 신선미 전자신문 전국취재팀 차장
정리=신선미 기자 smshin@etnews.co.kr
◇신선미 전자신문 전국취재팀 차장(사회)=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이 최근 사회의 주요한 이슈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계는 연일 납품단가 현실화 및 산업 구조 선진화 등 상생협력방안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대중소 상생협력문화가 정착되려면 신뢰와 믿음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중소기업청의 구매조건부 신제품개발지원사업은 정부의 연구개발(R&D)지원사업 중 대표적인 대중소 상생협력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실제 중소기업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어떤 부분이 기업에 도움이 됐는가. 기술개발 후 구매로까지 이어지는데 애로사항은 없었는가.
◇하승철 센코 대표=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사업은 정부에서 진행중인 여러 기술개발 사업중 중소기업에게 가장 매력적인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과제들은 기술개발 수준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이 사업은 수요처의 수요를 조건으로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아 기술을 개발할 경우 실질적인 매출로 이어진다는 점이 장점이다. 또 개발기간동안 수요처와 자연스럽게 협력관계가 형성돼 중소기업이 보유한 다른 기술 및 제품의 홍보도 가능하다. 나아가 수요처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사전에 파악할 수 있어 시장에 맞는 제품을 개발 · 생산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사회=대기업 입장에서는 구매조건부 신제품개발지원사업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류헌 삼성전기 상무=우리 회사는 2006년부터 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해왔다. 현재까지 약 40여건의 과제를 수행해 중소협력회사가 수혜받도록 지원하고 있다.특히 개발사업 성공을 위해 전담 인력을 두고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제품의 판로가 확보되는 시점까지 체계적으로 팔로업함으로써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당사의 상생협력 활동의 대표적인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사회=이 사업이 시행된 지도 9년째가 됐다. 그간의 지원실적 및 주요 성과에 대해 설명해달라.
◇신기룡 중소기업청 기술개발과장=2002년부터 2009년까지 총 1499억원이 이 사업에 투입됐다. 그간 109개 대기업 및 38개 공공기관 등 147개 수요처가 사업에 참여했으며, 이를 통해 모두 888개 과제를 지원했다. 올해 기준으로 399개의 과제가 성공돼 총 4363억원의 구매 성과가 발생했다. 특히 과제당 평균 10억여원의 매출이 발생한 점이 고무적이다. 기술개발 성공률도 83.3%나 돼 일반적인 다른 사업의 성공률(42%)에 비해 2배 이상 된다. 결과적으로 우리 중소기업에 안정적인 판로와 우수 기술의 상용화 비용을 지원함으로써 직접적인 매출 증대는 물론 수입대체 효과, 개발비 절감 효과 등 경제적 효과를 창출했다고 본다.
◇사회=구매조건부 신제품 개발지원사업을 시행하는 운영 주체로서 대중소협력재단은 어떤 점에 주력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가
◇조태용 대 · 중소기업협력재단 기술협력센터장=연구개발(R&D)기획에서부터 수행, 완료, 사업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중소기업이 직면한 문제와 수요를 해결할 수 있도록 밀착 지원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대기업 · 공공기관 수요 연계를 통한 R&D 협력 펀드를 조성하고, 민관이 기술력을 갖춘 우수한 중소기업을 선정해 개발에 필요한 사업화 자금을 지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대기업 · 공공기관들이 중소기업 개발 제품에 대한 자발적 구매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구매협약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아울러 중소기업간에 바람직한 기술협력 모델의 표준안을 제시하고 기술협력 수준을 지수화함으로써 우수 협력기업에 대한 보상 및 기술협력 활성화를 유도해 나갈 계획이다.
◇사회=객관적인 입장에서 다른 R&D 지원사업과 비교해 구매조건부 사업을 평가해달라.
◇서상혁 호서대 교수=우리나라 R&D 지원사업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가 투자대비 사업화 비율이 크게 낮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구매조건부 사업은 정부 R&D 지원사업 중 가장 진전되고 모범적인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사업의 규모나 기간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지만, 지원과제 도출 단계에서부터 기술 사업화를 염두에 두고 지원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업과는 다르다. 다른 정부 사업도 이 사업을 벤치마킹하면 좋겠다. 하지만, 일부 문제점도 없지 않다. 기술 개발이 끝난 이후 대기업에서 구매하지 않거나 구매를 늦추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더 많은 중소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과제를 늘리고, 기술개발후 사업화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 의식적 개선 방안을 강구하면서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뿐만 아니라 원천 기술을 보유한 대학과 정부출연연구원에서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한다.
◇사회=기업 입장에서 구매조건부 사업에 대한 개선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하승철 대표=기술 개발 완료 후 보고 절차를 간소화했으면 한다. 현재의 경우 사업 종료 시점에 개발제품에 대해 수요처 최종 보고, 현장실태조사, 최종평가 순으로 평가절차가 복잡하다. 만약 현장 실태조사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최종 평가를 서면 평가형식으로 진행했으면 한다. 이렇게 될 경우 수요처의 구매 요구에도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과제개발 중 사업비 증액이 필요한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최초 사업 계획시 기획단계에서 구체적인 제시 및 검토를 통해 기술개발에 알맞는 사업비 책정이 이뤄졌으면 한다.
◇류헌 상무=동감한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이 너무 많다. 중간중간 보고도 해야하는데 이 일이 쉽지 않다. 서류 절차가 간소화됐으면 한다. 그리고, 2 · 3차 협력사로 넘어가면 업체들 여건상 많이 취약한데, 그 부분과 연계되는 사업이 있으면 좋겠다. 정부가 지원하는 기술개발 자금도 조금 늘렸으면 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 설비 개발건이 많은데 정부 지원한도인 10억원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회=최근 정부와 공동으로 펀드를 결성해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요자 측면에서 향후 어떤 방식으로 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가.
◇류헌 상무=정부와 공동으로 조성한 R&D 협력펀드는 1차 협력회사 뿐만 아니라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2차, 3차에 이르는 뿌리산업을 근간으로 하는 전 협력회사에 기회를 주고 지원을 강화해나가야 한다. 특히 취약한 정보와 기술력을 극복하기 위해 모기업에서 선진화된 기술 로드맵을 공유하고, 노하우를 접목시켜 중소기업이 기술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또 중소기업은 우수과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과제라고 본다.
◇사회=구매조건부 사업의 기술개발 성공률이 비교적 높지만, 수요처에서 구매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꽤 된다. 어떤 문제점이 있고, 개선점은 무엇인가.
◇조태용 센터장=그동안 추진한 과제중 구매가 발생하지 않은 과제건수가 74건 정도 된다. 이를 분석한 결과 가장 큰 원인은 시제품의 양산 단계인 제품화 단계에서 기술적용에 실패하거나 양산인력 및 설비 등의 부족으로 실패한 사례가 전체의 42%를 차지했다. 이어 외부시장 환경의 변화도 구매가 이뤄지지 않는 사례로 이어졌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 수요처 외 신규 판로 개척을 위해 제품화 지원사업의 연계방향을 모색하고 기술보증기금 및 은행권과의 협력을 통한 R&D 사업화 연계 프로그램 발굴 등의 노력을 강화하겠다. 또 기술협력단 및 쿠폰제 컨설팅 등 기업중심형 서비스 연계를 강화하고 중소기업이 자생적으로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
◇사회=다른 국가의 R&D 지원사업 중 구매조건부 사업이 벤치마킹할 만한 지원사업이 있다면 추천해달라.
◇서상혁 교수=외국의 지원 프로그램중 참고할만한 것으로는 프랑스의 SME Pact(중소기업 규약), 노르웨이의 IFU(중소기업 혁신지원프로그램), 미국의 SBIR(소기업 혁신연구사업)등이 있다. 이 중 SME Pact는 중소기업의 샘플 제작비 지원사업이 중심으로, 구매결정이 신속하게 처리된다는 점이 벤치마킹 포인트다. IFU는 중소기업의 글로벌 투자자금 지원 측면이 강하고, SBIR는 연구기획단계부터 R&D사업화까지 일괄 지원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나가야할 방향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요즘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을 둘러싸고 자칫 정부가 대기업 의사와는 달리 일정부분 무조건 참여를 강요하는 감이 없지 않다. 대기업의 참여 확대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도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이 사업을 좀 더 뿌리내리기 위해 활성화할 정책적 발전 방안이 있으면 말해달라.
◇신기룡 과장=올해부터 기업의 수요를 받아들여 상시 과제지원제도를 도입해 중소기업의 R&D를 적기에 지원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오늘 나온 의견을 수렴해 기업들에게 불필요한 부분은 없애고, 더 많은 기업들의 참여를 위해 예산 확보에 나서겠다. 또 설비 및 프로젝트 관련 투자 부문도 예산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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