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너지가 SK그룹 차원의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2차전지 분야에 전력을 쏟고 나섰지만 국내 2차전지 시장 판도를 뒤집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선발 경쟁사들이 국내외에서 잇따라 대형 공급권을 따내며 기세를 높이는 것과 달리, 공급처 확보도 더뎌지면서 핵심 미래시장인 중대형 2차전지에서도 예전 소형전지 때의 ‘고전’을 되풀이할 공산이 커졌다.
4일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최근 차세대 에너지사업으로 태양광·바이오연료·2차전지 등 친환경 저탄소형 미래 에너지 사업에 내년 4500억원을 포함해 2020년까지 총 4조5000억원의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같은 투자 규모가 선발 업체에 비해 크게 미흡하다는 평가다. 이는 국내 2차전지 1위 업체인 삼성SDI의 투자계획 5조4000억원에 비해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그마저도 바이오연료와 태양광 사업이 합쳐진 것이라 2차전지 투자 규모는 더욱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 회사가 갖춘 생산시설 규모도 경쟁 사업자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대규모 양산 체제로 볼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일례로 LG화학이 2012년까지 구축 예정인 미국 공장은 3000억원이 투자돼 하이브리드 기준으로 연간 20만대 생산이 가능하다. 특히 올해부터 GM 시보레 볼트에 2차전지를 공급하는 충북 오창공장에는 2013년까지 1조원이 투입될 예정이어서 국내 양산 규모가 미국 생산 물량을 크게 초과할 전망이다. 반면, SK에너지가 최근 시공을 마치고 공개한 대전 2차전지 라인은 하이브리드 기준 4만대 정도에 그친다.
고객사 확보도 SK가 넘어야 할 산이다. 과거 소형 2차전지 사업을 중단한 것도 고객사 확보 실패가 발목을 잡았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소형전지의 성장을 기반으로 각각 BMW·S&T모터스와 GM·볼보·이튼·장안신에너지기차 등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하지만 SK에너지는 지난해 다임러그룹 산하 상용차 업체인 미쓰비시후소를 확보한 것 외에는 굵직한 공급처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공급처의 확보 없이는 생산시설만 미리 세울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SK에너지의 생산 라인 증설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는 초기 시장 선점의 중요성이 큰 신 시장에서 실패 가능성을 높이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SK그룹이 지난 2000년 삼성SDI와 비슷한 시기에 2차전지 사업을 준비하다가 그 뒤 사실상 중단한 실패 이력도 장기적 전지 수요기업 입장에선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삼성SDI나 LG화학의 경우 소형전지에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GM·BMW·볼보·보시 등 굵직굵직한 거래처를 확보한 상태지만 SK에너지는 소형전지에서 별다른 레퍼런스가 없어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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