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맥, 네트워크산업을 키우자] <5·끝>좌담회- 네트워크산업 르네상스를 만들자

 전자신문은 지난 한 달간 지면을 통해 ‘IT동맥, 네트워크산업을 키우자’ 시리즈에서 국내 네트워크 활성화를 위한 필요성을 조망해왔다. 국내 네트워크산업은 지난 1984년 전전자교환기인 ‘TDX-1’을 상용화한 이후 열정이 사그라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당시 기술 개발에 참여했던 기업 중 네트워크 분야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기업은 삼성전자를 제외하곤 한 곳도 없다. 특히 인터넷프로토콜(IP) 기반으로 전환되면서 인터넷 강국이란 자부도 무색하게 네트워크 분야에서 국내기업들의 의미 있는 흔적을 찾아보긴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국내 네트워크업체 앞에 놓인 전 세계 네트워크 시장 규모는 지난 2008년 1871억달러에 달할 만큼 거대 황금시장이다. 시스코·에릭슨·알카텔루슨트 등 소수의 기업이 주도하는 가운데,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기업이 급성장하는 형국이다. 국내 시장 규모도 2008년 약 4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전자신문은 업계 현황을 점검하고 네트워크산업이 다시 뛰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업계·정부·연구계 전문가들과 함께 ‘네트워크산업 르네상스를 만들자’라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구교광 한국네트워크연구조합 사무국장=전자신문에서 기획한 시리즈는 오랜만에 네트워크산업을 조망하게 된 기회였다. 회원사에서 전화가 이어지는 등 관심도 높았다. 이번 시리즈를 계기로 우리나라 네트워크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기 바란다. 또 정부도 최근 네트워크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추진 중이어서 기대감이 높다.

 ◇강용구 제너시스템즈 사장=정부가 여러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업체 입장에선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정부 정책을 기업체가 체감하는 데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움직이는 만큼 업계도 변화하고 있다. 공개네트워크얼라이언스(ONA)도 결성돼 AS 공조 등을 통해 힘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업계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네트워크산업의 특성상 선행투자비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TDX를 만들 때도 10년의 시간과 수조원의 돈이 필요했다. 중소업체들이 이를 감당해야 하는데 고민이 깊다. 중국업체의 활약으로 힘든 기업도 늘고 있다. 시장 상황도 아이폰 출시로 사업자 입장에선 네트워크 투자보다 애플리케이션 투자를 꾀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 네트워크업체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게 현실이다.

 ◇김철수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BcN PD=최근 기업들이 ONA를 통해 자발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좋은 징후다. 또 우리나라가 네트워크 시장에서 지위가 약화됐지만 우리 기술력은 글로벌 톱 수준이다. ITU 논문의 28.8%에 달하는 162건이 우리나라에서 생산된다. 특히 TDX를 개발한 ETRI에 유무선에 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다. 이를 사업화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양병내 지식경제부 정보통신과장=정부로서는 네트워크업계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R&D 과제를 제시할 방침이다. R&D 자금을 지원해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정부의 노력 외에도 네트워크산업 활성화를 위해 업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게 있나.

 ◇구 국장=ONA 회원사들은 KT와 SK텔레콤 등 통신서비스사업자와 함께 연구개발하면 어느 정도 구매가 보장되는 시스템이 되길 기대한다. 일례로 부품기업과 수요기업 간 상생 프로젝트는 좋은 모범사례다. 부품업체들이 수요기업의 요구에 맞게 제품을 개발하면 이를 완제품에 적용한다. 그야말로 상생이 이뤄진다. 개발업체 입장에서도 서비스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고 서비스사업자도 입맛에 맞는 장비를 생산할 수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양 과장=R&D 과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제안이다. 하지만 기존에 시스코 등 글로벌기업이 개발한 장비나 솔루션을 따라서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새로 개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수요기업과 함께 기술력이 있는 기업이 뭉치면 새로운 판로가 열린다. 또 해외 수출도 가능하다. 덧붙이자면 껍데기만 연구개발해서는 의미가 없다. 따라서 부품까지 고려한 세심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김 PD=우리나라 기술은 기능은 뛰어나지만 가격으로 승부를 걸기엔 승산이 없다. 기능에선 시스코나 주니퍼 등의 선진기업에 밀리고 가격에선 중국에 밀린다.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계속 턱걸이하는 것도 이런 경제적 요소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우리 네트워크산업은 이노베이션(혁신)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박진우 고려대 교수=옳은 얘기다. 이제는 기반산업 간 연계성을 갖고 함께 끌고 나가야 한다. 신문 보도처럼 중국 화웨이가 한국기업 장비 원가의 20%에 불과한 가격에 입찰을 하듯 가격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이제 가격에서 우리가 막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이제는 업체 간 컨소시엄을 통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또 글로벌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장비·콘텐츠 등을 한데 묶어야 한다. 통신사업자들이 스마트폰 확산으로 지나치게 콘텐츠만 강조하는 데 서비스와 네트워크산업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 최근 부상하는 모바일산업도 기반 네트워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기반 기술을 간과하는 것은 성공적인 서비스가 될 수 없다.

 ◇강 사장=성공적인 시장 창출을 위해선 업계의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재투자 여력이 없다는 게 문제다. 기업들이 재투자로 선진업체와 기술 간격을 메워야하는데 사람·돈·시간이 부족하다. 이렇게 된 데는 그간 국내 네트워크 시장의 토종기업 역차별도 한몫했다. 국내기업들은 시장에 물건을 팔고 유지보수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일례로 시스코·오라클 등 글로벌기업 1년 매출액의 20∼30%가 유지보수 비용에서 나온다.

 국내 민간사업자나 공공기관에서 네트워크사업을 하면 우리나라기업에 적정한 유지보수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어떤 기관은 장비 판매에 대한 유지보수 비용으로 국내 기업엔 1∼2%, 해외기업엔 10∼20%를 준다. 국내기업이 장비를 판매하면 5% 이상 주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국내기업은 재투자 여력이 사라진다.

 ◇박 교수=실제로 민간기업 등에서 네트워크사업자를 선정할 때 공짜로 유지보수하는 것에 가점을 주고 있다. 노예를 만드는 꼴이다. 혹자는 한국인 네트워크사업자가 미국에서 사업권을 내고 국내에서 사업을 하면 똑같은 제품이라도 제값을 받고 유지보수비도 적정한 보상을 받는다고 한다. 국산에 대한 홀대가 드러나는 게 현실이다.

 ◇양 과장=몇 년 전부터 적정한 유지보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명문화했는데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또 그간 통신과 인터넷 강국을 만드는 과정에서 국내 통신장비업체들이 소외돼온 게 사실이다. 이제 이러한 간극을 좁힐 때가 됐다. 정부나 업계, 연구계에서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박 교수=최근 공공기관에서 사업제안서를 평가할 때 일이다. 당시 기술점수 80%에 대한 평가가 있었지만 그 안에 사후 유지보수가 평가항목에 함께 있었다. 사후 유지보수 가격을 기술평가에 반영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장비업체들이 유지보수 비용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없다. 또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솔루션 가격 산정에 업데이트 비용을 포함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미래 확장성을 위한 업그레이드는 u시티 등에서 자가망 관리에 필수적인데 이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이순석 ETRI 미래네트워크연구부장=작물이 잘 자라려면 토양이 좋아야 하는데 국내 네트워크 장비업체에 한국의 토양은 척박한 수준이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브로드밴드 플랜을 보면 프로젝트 비용의 50%를 캐나다·미국·이스라엘 등 이 지역 나프타(NAFTA) 회원 제품을 포함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 내에서도 지역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격이다.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중국기업도 자국 내에서는 보조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강 사장=실제로 그렇다. 우리나라기업의 장비 가격은 에릭슨의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화웨이는 아프리카에 장비를 수출할 때 10분 1에 불과한 가격에 판다. 화웨이 등 중국기업이 아프리카에 수출할 때 차관을 통해 수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장비업체의 장비·노동력에 대한 원가를 보전해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시스코 매출의 12%는 미국 국방부에서 지원한다. 국내 수출업체엔 이런 보조금이 없는 게 현실이다.

 ◇구 국장=보조금 같은 제도는 WTO에 위반사례로 지적될 수 있지만 네트워크가 국방·보안 차원에서도 중요한 자원인 만큼 정책적인 회피 수단이 될 수 있다. 미리 겁을 먹고 예산을 축소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박 교수=기업과 공공기관의 최고정보책임자(CIO)의 역할도 중요하다. CIO가 기술 수준이나 동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에서 네트워크 장비 제안요청서(RFP)를 발주할 때 특정 외산업체의 브랜드를 명기한 사례도 있었다. CIO가 관련 정보에 무지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CIO를 교육시키는 장을 마련하거나 RFP의 적정성을 검토할 위원회가 필요하다.

 통신사업자나 정부가 장비업체에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이나 미국 등에선 내년도 또는 차년도 사업에 대한 정보를 자국기업에 미리 전달한다. 6개월이든 1년이든 적정한 사업 예상치를 주면 국내기업도 준비할 시간이 있다. 통신사업자나 사업자들은 장비 개발 시간을 주지 않고 그때그때 사업을 발주해 외국 기술을 그대로 채택하는 사례가 많다. RFP가 일부 외국 기술의 검증의 장으로만 사용돼서는 곤란하다.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정부나 민간사업자가 관련 산업체에 정보를 제공하면 좋겠다. 그게 바로 상생이다.

 ◇강 사장=우리나라의 정부 출연연도 영세하다. 재투자 여력이 없다. 단기적인 R&D는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중국에는 가격에 밀리고 유럽에는 기술에서 밀릴 수 있다. 따라서 출연연의 기술사업화도 좋지만 기술 격차가 큰 R&D에 집중해야 한다. 출연연이 혁신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김 PD=실제로 국내 네트워크산업의 수익성이 낮아지면서 기술 완성도가 높은 영역에서도 엔지니어가 사라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광소자·부품의 경우 엔지니어 육성에 20년 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산업이 침체하면서 고급 연구 인력이 다른 영역이나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제 기초산업의 경쟁력부터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박 교수=ETRI 등 출연연의 기술 수준이 높다고 하지만 출연연도 고령화되고 있다. 출연연의 성과급시스템(PBS)이 강화되면서 출연연의 지원비가 줄고 신규 직원 채용이 어려워지고 있다. 또 고령화로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직접 연구비도 사실상 축소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연구 거버넌스를 따르려고 하지만 연방국가엔 국가연구소가 없다. 모순이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출연연에 대한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

 ◇이 부장=네트워크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 최소한의 핵심 장비에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 PD=유무선 융합시대는 혁신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화웨이가 세계 2위 업체로 도약한 것은 노동집약적인 부문에 집중한 사례다. 중국과 북미 등지의 강한 기업은 보수적인 경향이 있지만 서비스가 앞선 한국은 변화를 통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 서비스 수용 속도가 빠른 우리나라의 특성을 잘 활용해야 한다. 또 이를 위해 확산성이 높은 자체 핵심 엔진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는 혁신적인 R&D에 집중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구 국장=해외 시장 개척도 중요하다. 산발적인 수출 추진이 아닌 선단식 수출이 필요하다. 장비·서비스·콘텐츠를 아우른 토털 솔루션 수출이 바로 해법이다. 그렇다고 전시회 몇 번 다녀오고 수출을 논하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강 사장=현재의 구조론 앞으로 3∼4년 후 중국에 맞설 수 있는 게 없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전자정부든 교통정보시스템(ITS)이든 업계가 뭉쳐 제안하지 않으면 단품으로 승부를 걸기는 어렵다. 중소기업 혼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적다.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부장=의욕만 앞서서는 글로벌 시장을 확보하기 힘들다. 기술개발 파트에서 연구하면서 느끼는 아쉬움은 R&D에서 R&BD로 넘어가지 않는 데 있다. 특히 7·7 DDoS 공격, 김철수 사건 등 사회적 문제가 도출될 때 대응할 능력이 부족하다. 이는 단품 위주의 고립된 개발 구조에서 비롯됐다. 통신사업자·IT서비스업체·네트워크통합(NI) 등 업체가 한데 어우러져 세력을 만들어야 새로운 시장에 대응할 수 있다.

 ◇박 교수=정부의 R&D 과제도 통신사업자는 물론이고 대·중소기업 공동 컨소시엄을 통해 세계 선도 기술을 만들어야 한다. 개방적인 컨소시엄을 만들면 대기업은 경직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고 중소기업은 할 수 있는 역량이 늘어날 것이다.

 정리=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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