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애플의 오만한 상술

지난 24일 아침 9시까지 뉴욕 5번가 애플 매장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은 그나마 불평이 그리 많지 않았다. 10시를 넘어서면서 햇볕이 내리쬐고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돌자 고객들 표정이 달라졌다.

애플 직원들이 길게 늘어선 대기자들에게 음료를 무료로 나눠 주었지만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돌리지는 못했다.

아이폰4를 사기 위해 애플 매장 앞에 줄을 선 고객들이 결국 참았던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불만의 요지는 이렇다. 출시 전에 신제품을 여유 있게 생산한 뒤 여러 매장에서 판매하면 고객들은 줄을 서지 않고 살 수 있는데, 애플이 의도적으로 고객들에게 줄을 세운다는 비난이다.

애플 측 의도는 고객들에게 애플 제품에 대한 신비심과 호기심을 불어넣어 구매 충동을 일으키고, 구입 후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은 `선택받은 사람`이란 인식을 줘 만족도도 높이겠다는 발상이었다.

실제 일부 애플 팬들은 이틀 전부터 줄을 섰다. 아이폰4 출시 첫날엔 수백 명이 뉴욕 5번가 애플 매장을 찾았다. 애플이 독점 제휴 통신사업자인 AT&T 매장이나 대형 전자상가 체인점인 베스트바이 등에서도 판매한다고 했지만 애플 매장만큼 충분히 공급하지 않았다. 고객들이 애플 매장으로 몰린 결과 긴 행렬이 연출됐다.

애플이 이런 마케팅 전략을 쓴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4월 아이패드를 출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도 고객들을 애플 매장으로 몰아넣고 긴 대기행렬을 만들었다. 신제품을 `가까스로` 산 고객들은 마치 전리품을 얻은 듯이 기뻐했다. 고객이 희생하는 것도 즐기게 하는 기술마저 보유한 애플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 아이패드 품절 소식은 없었다. 얼마 후 애플 매장은 품절 피켓을 들고 나왔다. 예약하면 1~2주 후 배달해주겠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물량이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뭔가 이상하다.

애플은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마다 "예상보다 뛰어넘는 수요 때문에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는 말로 오히려 제품에 대한 인기를 강조했다.

그러나 고도의 신기술을 사용해 혁신 제품을 만든 애플이 수요 예측 하나 못한다는 게 의문이다. 정보기술 분야 최고 기업으로서 수급을 조절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충성도를 100% 이상 활용해 희생을 고객 몫으로 돌리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애플의 창의적 제품이다. 애플은 이제 경쟁사나 마찬가지인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소프트웨어도 배척하고 있을 정도다. 애플이 재기하는 데 공신으로 꼽히는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공급업자들을 무시한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애플이 오만한 상술을 쓰고 있지만 아무도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역공을 받을 충분한 여건이 성숙됐지만 견제세력이 없다. 오히려 일부 경쟁사들은 스마트폰 추세를 놓쳐 휴대폰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쟁사들이 혁신적 기술과 마케팅 능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기술력이나 마케팅 자체가 아니었다. 혁신적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에서도 상식을 깨는 스티브 잡스 같은 리더십이었고, 이 리더십과 조화를 이루는 창의적인 기업문화였다. 애플을 뛰어넘는 비결도 여기서 시작한다. 특히 기업문화를 바꾸는 것이 첫 단추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뒷북만 칠 수밖에 없다.

[뉴욕 = 김명수 특파원 mskim@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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