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5년 도시바가 세계 최초의 노트북PC ‘T1100’을 출시한 지 25년 만인 올해 5월, 애플은 모바일PC를 가볍고 빠르며, 작동 시마다 부팅할 필요가 없는 아이패드로 재탄생시켰다. 투박한 크기에 통화 기능만 있던 모토로라의 1988년형 ‘TAC8000’은 우리나라 돈으로 240만원이었다. 그 당시 500만원 정도였던 포니 엑셀 승용차 가격의 절반에 해당됐다. 이 휴대폰의 무게는 무려 771g이었다. 지난 8일 발표된 애플 아이폰4의 무게가 137g, 삼성 갤럭시S가 121g인 것을 감안하면 20여년간 기술의 진화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우리가 쓰는 정보기술(IT)기기는 하루가 다르게 작아지고 가벼워졌다. 가격도 저렴해지고 성능도 향상됐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역할을 하는 게 반도체다. 다국적 반도체업체들은 우수한 인재 풀을 보유한데다가 연구개발(R&D)에도 막대한 자본을 투자해 미래 반도체와 IT산업을 주도한다.
이제는 반도체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인텔이 리눅스 운용체계(OS)를 개발하는가 하면 ST마이크로는 랩온어칩과 같은 바이오 분야에 선두주자로 부상 중이다. 이른바 컨버전스(융합)가 어느 분야보다 활발하게 진행된다. 물론 여전히 사업 중심은 반도체지만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약을 위한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도 한창이다.
◇저전력화·소형화·원칩화로 탄소배출량 억제=다국적 반도체기업들은 우선 중단기 핵심사업으로 친환경 반도체 개발에 나서고 있다. 유럽에서 시작된 환경 규제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기업들은 저전력화·소형화·원칩화를 통해 전력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전력용·차량용반도체 세계 1위 업체 인피니언테크놀로지스는 탄소배출량이 낮은 하이브리드와 전기자동차용 엔진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ECU), 가전 제품에 쓰이는 절연게이트양극성 트랜지스터(IGBT)를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했다. 페어차일드반도체 역시 전력용반도체인 스마트파워모듈(Motion-SPM) 시리즈를 내놓고 태양광 IGBT 개발에 착수했다.
리니어테크놀로지는 전류를 변환시켜 전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끔 돕는 컨버터를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 백열등·형광등에 비해 수명이 길고 전력 효율이 높은 LED 구동칩·제어칩 시장도 반도체업체들의 주요 타깃이다. NXP반도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페어차일드, TI 등이 이 시장에 진입했다.
◇오감 만족 시대, 아날로그반도체가 뜬다=아날로그반도체는 사람이 느끼는 빛·소리·온도·압력 등 자연계의 각종 신호를 인식해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감성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아날로그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들에 따르면 아날로그반도체 시장 규모는 연간 450억달러에 이른다. TI는 지난 5월 300㎜ 웨이퍼 아날로그 설비에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이 회사는 지난 1980년대 D램 메모리사업을 접고 무선 헤드폰·스피커를 비롯한 아날로그 제품으로 주력 사업군을 옮겨 여전히 선두기업의 입지를 유지한다.
◇경계가 사라진다=인텔은 지난 2월 노키아와 함께 휴대폰 등에 사용할 수 있는 OS 플랫폼인 미고를 발표했다. 지난 20년간 마이크로소프트와 ‘윈텔(윈도와 인텔의 합성어)’ 제국을 만들었던 인텔에 SW 분야는 금기의 영역이었다.
더글러스 W 피셔 인텔 SW서비스그룹 시스템SW분야 총괄 부사장은 “아톰 프로세서를 지원하려면 SW가 필요함을 절감하게 됐다”고 인텔의 SW 개발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지난 10년간 매출이 정체상태를 보인 점도 영향을 미쳤다. 모바일 모뎀칩·프로세서 분야 선두기업인 퀄컴의 전략 역시 유사하다. 이 회사는 ‘브루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모바일 OS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신개념 MEMS 센서=‘닌텐도 위’가 성공한 것은 사람의 동작을 감지해주는 입력 단말기를 게임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아이폰4에도 자이로센서가 내장돼 상하좌우 움직임을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이다. MEMS는 소형 정밀기계 장치를 뜻하며, MEMS 센서는 움직이는 속도와 방향을 감지할 수 있는 반도체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이 분야 선두업체다. ST는 이 기술을 의료기기에도 적용해 당뇨병 환자의 인슐린 주입 펌프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손가락만 한 칩 하나로 여러 바이오 실험을 할 수 있는 ‘랩온어칩’의 선두주자기도 하다. 아날로그디바이스가 개발한 3차원(D) 모션 센서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구현하는 데 사용됐다.
퀄컴은 MEMS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미라솔’이라는 디스플레이 기술을 선보였다.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모바일·가전 제품용 MEMS 시장 규모는 2013년 27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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