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래사회 칼럼에서 로봇이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로 거듭날 때, 그 로봇은 인간을 닮을 것이라고 썼다.
오늘은 인간을 닮은 로봇이 과연 인간에게 편안할까하는 의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선량한 인간도 많지만, 악한 인간도 있지 않은가. 로봇만큼은 사기·폭력·전쟁의 인간사회에 끼어들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구사회에서 창조성(creativeness)을 말할 때는 단서가 붙는다. 신(神)에게 대들지 않는 선에서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단서다.
따라서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신만큼은 진화할 수 없다. 아니 진화해서는 안 된다. 서구사회의 정신적 근원을 이루는 기독교는 인간이 신이 되려고 했다가 망한 사건을 성경의 창세기부터 기록하고 있다.
이런 기독교적 전통이 강한 서구사회에서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은 매우 이단적이었다. 인간이 신처럼 생명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영국 작가 메리 셜리가 19세기 초엽에 쓴 이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은 무생물에서 생명을 창조한 과학자가 되지만, 괴물은 자신을 인간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괴물로 창조해낸 프랑켄슈타인에 반발한다. 자신이 창조한 생명을 어찌할 수 없었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없애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죽는다. 이를 본 괴물도 자살을 결심하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셜리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소설을 통해 던졌던 질문은 오늘에도 유효하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는 지점이 2040년쯤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미국의 과학자 레이 커즈웨일도 인간이 인공지능을 만들어내지만 결국 이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는 ‘특이점이 온다(Singularity is Near)’는 저서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우호적인 감정을 갖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기독교의 경전,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을 보자.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는 선(善)과 악(惡)을 구별할 수 있는 나무의 열매(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율을 어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천국의 동산 에덴에서 쫓겨난다.
인간을 벌한 하나님은 그 이유에 대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신)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문자 자체로만 보자면 우주의 재앙은 선악을 구분하는데서 시작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 여러분이 불교신자든, 무슬림이든, 기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인간이 인공지능을 창조할 수 있는 지금,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인공지능에게 모든 자유를 허락하되 딱 하나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이 점에서 선악과 이야기는 의미가 있다. 로봇이 선악을 구별한다면, 로봇은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하는 독립된 존재가 될것 같다. 그때부터 로봇은 인간의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지 모른다.
박성원 하와이미래학연구소 연구원 seongwon@hawaii.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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