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매출 전년 대비 3% 성장, 투자는 매출 중 1%` `2010년 매출 14% 성장 목표, 투자는 매출 중 30%`. LG이노텍 매출ㆍ투자 궤적이다. 2001년 실적에서 보듯이 당시 LG이노텍은 몇 년째 정체돼 존립 자체가 불확실했으며 LG그룹에서 존재감이 약한 계열사로 꼽혔다. 하지만 2010년 목표와 투자계획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지금은 그룹 성장동력 가운데 한 축을 담당하는 우등생이 됐다. 지난해 매출의 경우 3조5000억원에 달했다.
10여 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룹 내 천덕꾸러기였던 기업이 이처럼 `개과천선(?)`할 수 있었을까. LG이노텍이 천지개벽을 시작한 2002년부터 회사를 이끌어오고 있는 허영호 사장에게 그 비결을 물었더니 "사람이 중요합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너무 평범한 답이어서 집무실 회의용 탁자 앞에 마주 앉은 허 사장에게 좀 더 특별한 걸 알려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허 사장은 "취임 후 2002년과 2003년에 인력을 늘리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안 된다`는 패배감에 젖어 있던 직원들에게 회사 주인공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경영과 혁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과 길을 열어줬더니 매출이 25%나 늘었다"는 체험담으로 답을 대신했다.
허 사장이 취임할 당시 오랫동안 정체돼 있던 회사에는 패배주의가 퍼져 있었고 이를 바꾸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 직원들을 교육하며 혁신ㆍ의식개혁ㆍ주인의식을 설파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바뀐 분위기는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고 이전에 없던 성공을 경험한 직원들은 자신이 비즈니스 중심이라는 `사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게 됐다고 허 사장은 설명했다.
LEDㆍ부품 사업을 벌이고 있는 LG이노텍은 올해 들어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으며 높은 주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그룹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LED사업을 전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올해 매출목표액 중 30% 가까이를 투자하는 공격적 행보로도 관심을 끈다.
LG이노텍은 지난해 LG마이크론과 성공적으로 통합했고 이것이 또 다른 성장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두 회사를 통합시키는 과정에서도 허 사장의 `사람 경영`은 빛을 발했다.
그는 "통합으로 직원들 자리 이동이 있어야 할 때 일방적으로 발령내는 게 아니라 맞춤형 면담 등을 통해 개인 의사를 최대한 반영했다"며 "통합회사 비전과 목표를 세울 때도 몇몇 경영진만 모여 결정하지 않고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기업 통합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대규모 인력 이탈과 각종 잡음이 생기지 않았다.
허 사장은 `사람 경영`은 직원들과 소통을 위해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데서도 나타난다. 허 사장 홈페이지에는 경영자료부터 개인적 얘기ㆍ사진, 유머 등까지 담겨 있어 많은 직원들이 찾고 댓글을 남긴다. 허 사장은 "직원들과 스킨십을 하기 위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직원들과 소그룹별로 점심식사를 함께한다"고 말했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LG이노텍 미래상은 무엇일까. 허 사장은 "LG이노텍을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 국내에 치중된 사업구조를 `글로벌화`할 필요가 있다"며 "고객구조, 제품구조, 경쟁력 등에서 글로벌 기업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2012년 정량적 목표는 `5`로 요약된다. △매출 5조5000억원 △국내외 비중 5대5 △글로벌 1위 수준 제품 5개 등이 그것이다. 특히 TV에 들어가는 LED 백라이트유닛, 소형 정밀모터 등이 허 사장이 꼽는 `글로벌 1위` 후보다. 또 2015년에는 부품업계에서 꿈의 수치로 불리는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10%`를 달성해 일본 교세라와 같은 반열에 올라서는 게 목표다.
허 사장이 LG이노텍을 교세라 수준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기 위한 무기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람`이다. 그는 "글로벌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 혁신, 효과적 투자 등도 따라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직원들이 회사 목표를 공유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움직여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을 `글로벌 기업` 목표로 전진하도록 만들기 위해 활용하고 있는 이 회사 교육무기가 `청정문(聽情問)` 프로그램이다. 서로 얘기를 경청(聽)하고, 서로를 인정하면서 정(情)을 나누며, 스스로에게 자기 능력을 얼마나 발휘하고 있는지 자문(問)하자는 내용이다. LG이노텍은 청정문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교육을 벌이고 있다. 허 사장은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착이 대단해서 특허청에 `서비스표` 등록까지 해놨다.
그는 "직원들은 누구나 인정받고 비즈니스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입사했다"며 "이런 것들을 보장해 주기 위해서는 윗사람들이 아랫사람 얘기와 아이디어를 들어주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직원들 스스로가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있는지 자문하고 스스로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회사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세라급 회사를 만들겠다는 허 사장에게 일본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LG에서 33년이나 일한 허 사장은 80년대 초 금성사(현 LG전자) 주재원으로 일본에 머물렀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한국사람이라면 집도 구하기 힘들고 소니, 파나소닉 같은 일본 전자회사들은 오를 수 없는 나무로 보였다"며 "하지만 요즘 전자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을 앞질렀고 부품 등도 따라잡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허 사장은 시간나는 대로 걷고 책을 읽는다. 특히 매일 아침 새벽 5시께 일어나 1시간씩 집 근처 학교나 한강시민공원을 걷는다. 하루 종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매일 저녁 약속이 잡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아침 산책 시간이 스스로를 위해 온전히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 He is
△1952년 제주 출생 △제주 오현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학사, 경북대 경영대 석사 △육군 ROTC 13기 △77년 금성사(현 LG전자) 입사 △90년 TV 공장장 △96년 DVD담당 상무 △98년 TV담당 전무 △2000년 LG마이크론 대표이사 부사장 △2001년 LG이노텍 부품사업본부장(부사장) △2002년~현재 LG이노텍 대표이사 사장
[매일경제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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