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디지털 TV 시장은 미국과 함께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곳이다. 지난해 1월 29일 영국 정부는 오는 2012년까지 전국 광대역 인터넷 구축과 TV·라디오의 디지털 전환을 골자로 한 ‘디지털 브리튼’ 계획을 발표했다. 불과 1년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 영국의 디지털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오프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91.4%의 가정이 디지털 TV를 시청하고 있으며, 이는 전년 대비 약 2.6% 증가한 수치다. 또 79%의 가정이 기존 아날로그 TV를 디지털 TV로 바꿨고, 69%는 두 번째 TV를 디지털 TV로 교체했다. 44%의 가정은 디지털 방송을 녹화하고 있다.
영국에는 현재 약 6000만대의 TV가 있는데 이 가운데 약 2400만대가 거실에 주 TV로 설치돼 있다. 나머지 약 3600만대는 침실과 부엌 등에 이른바 세컨드 TV로 보급돼 있다. 그리고 약 40%의 가정은 무료 디지털 위성 방송인 프리샛을 주 TV를 통해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한 해 동안 약 1300만대의 프리뷰 셋톱박스와 프리뷰 수신기가 내장된 TV가 판매됐고, 이는 전년보다 9% 증가한 수치다.
영국 내에서 디지털 TV의 인기를 반영하듯, 오프콤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TV 시청 시간은 하루 평균 3.75시간으로 11개 유럽국가 평균치인 3.5시간보다 많았다. 올 1분기에는 TV 시청 시간이 더 증가해 하루 평균 4시간 18분에 달했다고 BBC가 보도한 바 있다.
오프컴의 수치는 영국인들이 디지털 미디어 이용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지 보여준다. KPMG 조사에 따르면 신문을 포함한 미디어 이용 시간이 11시간 40분에서 12시간 13분으로 33분 증가한 반면에 디지털 미디어 이용 시간은 6시간 14분에서 7시간 28분으로 무려 1시간 14분이나 늘어났다. 경기 침체의 여파로 외출을 자제하면서 집에서 미디어를 접하는 시간이 더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에서는 고선명(HD)TV의 판매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까지 약 2300만대의 HDTV가 팔려나갔다. 현재 약 45개에 달하는 유무료 HD 채널이 있고, 이는 유럽 최초로 3차원(D) 방송을 서비스 중인 ‘B스카이B’의 채널도 포함한다. B스카이B는 현재 BBC HD와 ITV HD를 비롯해 39개의 HD 채널을 제공하고, 연말까지는 10개 채널을 증편할 예정이다. 버진미디어는 8개의 HD 채널을 제공하고 있다. 브리티시텔레컴 역시 자사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BT 비전’이라는 HD 방송을 제공 중이다. B스카이B는 지난 3분기 동안 43만명이 디지털TV와 HD 방송에 새로 가입하면서 약 76%의 증가세를 나타냈다. 올해 들어서도 약 6만2000명의 신규 가입자가 몰리면서 총 250만명에 이른다. 버진미디어의 HD 서비스인 ‘V+HD’의 경우 11만명의 가입자가 늘어 현재 약 86만명을 확보하고 있다.
B스카이B는 지난 1월31일 영국에서 최초로 3D 스포츠 중계 방송을 9개의 펍에서 성공적으로 방송했다. 이후 4월 3일 3D 방송을 정식으로 시작했고, 현재 약 1000여개의 새로운 펍들이 3D 방송을 위해 등록했다. 영국에서 7년째 거주하는 그리스 출신의 마리아(28)씨는 “영국의 TV 라이선싱 비용은 비싼 편이라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며 “프리샛 수신기를 사는 데 비용이 더 들지만 BBC HD와 iTV HD를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축구팬인 마이클(35)씨는 “ITV가 한 달 전부터 HD 방송을 일반 방송의 하나로 포함시켰기 때문에 올해 남아공 월드컵을 HD로 볼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런던 시내 토트넘코트 로드의 전자 제품 판매점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소비 심리가 아직 완전히 풀리지는 않은 느낌이지만 월드컵 덕분에 HD TV 판매는 늘어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디지털·HD 방송에 긍정적인 견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일간지인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600만명이 HD 방송을 시청하고, 약 55%의 가정이 수백 파운드에 달하는 돈을 HD 방송에 투자하고 있지만 실제 활용도는 낮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약 58%만이 블루레이 플레이어나 PS3, HD 셋톱 박스에 실제로 연결해서 사용하는 정도에 그쳤다. 텔레그래프는 단순히 HDTV만으로는 HD 방송을 시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방송을 시청하는 방법에 대한 홍보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디지털 TV는 아날로그 방송이 중단되는 2012년까지 지속적으로 판매가 늘겠지만, 그 이후에는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B스카이B가 3D 방송을 영국의 일부 펍에서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가운데 4월 22일부터 영국의 유통업체인 존 루이에서 삼성전자는 40인치 3DTV를 1799 파운드에 판매한다고 타임스 온라인판은 보도했다. 열광적인 축구팬들은 월드컵을 3D 방송으로 더욱 실감 나게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3D텔레비전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영국의 HD 방송은 앞으로도 더욱 인기를 끌 전망이다. 3D TV의 경우 올해 약 18만대가 팔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지만 아직은 시장 반응을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영국의 경우 디지털 브리튼을 구축하려는 정부의 노력과 B스카이B의 새로운 서비스가 맞물려 디지털 TV 시장이 의미있는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TV 업체로 등극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거느린 한국에서도 디지털 TV 시장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방송계·업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런던(영국)=김정희 런던정경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 jeongism@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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