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꿈만 꾸며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많은 아이디어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느낌입니다.”
융합생명과학분야 국가과학자로 선정된 남홍길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52)는 “융합생명과학 분야의 과학자로서 지금보다 훨씬 더 깊고 많은 것을 추구할 수 있는 제2의 과학 인생이 시작됐다”며 “국가과학자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과학적 업적을 만들기 위해 더욱 정진하겠다”고 선정소감을 밝혔다.
융합생명과학분야의 국가과학자로 선정된 것과 관련해 남 교수는 “열린 사고를 갖고 타 분야의 지식과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쉽지는 않았다”며 “학문의 보수성은 정제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지만 그것으로 인해 융합과학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선정이 연구성과를 높이 평가했다는 것에 앞서 과학계에 융합이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다. 그의 연구의 핵심은 기존의 툴과 사고를 넘어 기계나 수학 등 타 분야와의 융합적 방법론을 활용해 생명현상을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밝히는 작업이었다.
“식물의 성장과 발달에 대한 이해와 수학적 모델링은 식량증산과 바이오에너지 등 인류공통의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내자신 즉 인간의 노화와 수명을 연구하는 단초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죽음의 생체회로를 규명한 연구성과가 지난해 사이언스에 게재되면서 남 교수는 지난 2008년 10월 식물진화 성공의 열쇠인 쌍둥이 정자 형성의 메커니즘 구명(네이처), 식물의 생화학적 눈동자 개념 제시(셀) 등 네이처와 사이언스, 셀에 모두 논문을 게재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는 국가과학자로 향후 10년간 식물의 발달 및 성장과정의 이해와 조절분야에 시간적, 공간적, 시스템 등 다차원 및 통합적으로 접근해 식물 성장 및 발달을 조절하는 연구를 지속하기로 했다. 이 같은 연구에도 역시 학제간 융합이 필수다.
남 교수는 “분자 유전학과 이론적 모델링, 초정밀 영상학, 화학 유전학, 단분자 물리학 등을 접목해 새로운 차원에서 생명 현상을 해석하고 응용하는 혁신적 기술과 도구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세상은 인식되는 만큼 존재합니다. 자연에 대한 이해가 바로 세상을 인식하는 폭을 넓혀주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과학의 역할이자 목적입니다.” 그가 제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믿고 따라준 제자들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지 못했을 성과”라고 말했다.
남 교수는 “국가과학자는 부족한 연구 인프라와 제도속에서 소외받으면서도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 과학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남 교수 연구성과>
남 교수는 융합연구를 통해 새로운 생명 연구의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생명과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88년 포스텍 교수로 부임한 남 교수는 지난 2005년 식물의 생화학적 눈동자라는 논문으로 셀지를 장식한 이후 쌍둥이 정자형성의 비밀을 푼 논문이 네이처에 소개됐고, 이후 지난해엔 식물의 노화와 죽음을 관장하는 생체회로의 메커니즘을 규명해 사이언스지에 발표됨으로써 이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떠올랐다. 세계 3대 대표 과학저널인 셀과 네이처, 사이언스지에 주저자로 모두 소개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 한국 과학기술의 쾌거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그외 지난 2007년에는 식물노화조절 연구분야를 집대성했고, 지난해에는 생체내 ‘mRNA’의 단분자 측정에 성공하는 등 식물 노화의 유전, 융합분야에서 새로운 개념들을 밝히는 데 독보적인 연구업적을 쌓아왔다. SCI급 학술지 게재 논문수만 41편이며, 관련분야의 국내외 특허가 75건에 이른다. 국가과학자 종합심의위원회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생명체의 노화와 죽음을 관장하는 생체 회로를 규명하는 등 생명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해 남 교수를 국가과학자로 선정했다.
포항=정재훈기자 jh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