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기초학문 중에서도 순수이론 분야인 수학자를 국가 과학자에 선정한 것도 큰 연구의 의무를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국가과학자 5명 중 유일하게 이론 분야인 황준묵 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47)는 기초이론 분야의 연구는 큰 연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큰 연구를 “논문 편수에 매달리지 않고 장기적인 지속을 통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연구”라고 정의했다. 그는 “큰 연구를 하다보면, 실패해도 배우는게 많다. 비록 오아시스는 가보지 못했지만 오지를 개척해봤던 사람들은 분명히 학계에 큰 도움을 주는 학자가 될 수 있다”며 결과에 대한 경쟁 만큼이나 도전 그 자체로서의 경쟁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평가 지표도 결과보다 도전 경력”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우리 학계가 목을 매고 있는 노벨상 수상도 큰 연구를 수행 가능한 풍토 속에서만이 나올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 올해 수상자는 베트남 학자입니다. 놀랍지요. 하지만 그 학자는 프랑스에서 박사와 포스닥(박사 후 연구) 과정을 수행하고, 현재 미국에서 연구 중입니다. 개인은 베트남이지만, 베트남 수학계가 상을 받는 거라곤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학계가 선진국처럼 큰 연구를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전통을 만들고,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한 학자가 노벨상이나 필즈상을 타는 날이 진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날이라는 이야기다.
황 교수의 연구분야는 ‘공간 기하학’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세계적으로 수학계에선 150년 이상 된 전통 연구분야다. 보다 쉽게 설명해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그는 주식 동향 그래프를 예로 들었다.
“주식 동향을 그래프로 나타내는 이유는 긴 안목에서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기하학도 마찬가지라서, 숫자와 문자의 나열인 방정식을 공간으로 풀어내면 긴 안목의 관찰이 가능해집니다. 직관력도 생깁니다. 그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논리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현재 국제수학자연맹에서 평가하는 한국의 수학 수준은 4등급으로, G7·중국·이스라엘(이상 5등급)보다 한 단계 아래다. 황 교수는 우리 수학계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미지의 공간을 끊임없이 개척해 나갈 각오”가 돼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황 교수 연구성과
황준묵 교수는 기하학 분야에서 15년 간 미해결이던 공간 사이의 변환에 관한 ‘라자스펠트 예상’을 1999년 증명했고, 40여년 간 미해결 문제였던 ‘변형불변성 증명’을 9년에 걸쳐 총 100페이지가 넘는 네 편의 논문을 통해 완성했다. 그의 주요 연구분야는 기하학적 구조론이라는 미분기하학 이론이다. 미분기하학 방법론을 대수기하 연구에 도입하려는 시도다. 비유하자면 디지털 정보에 대한 문제 해결에 아날로그적 방법을 도입하려는 시도로, 이 계획이 성공할 경우 장기간 미결과제로 남아있는 미분기하학과 대수기하학의 난제들이 해결돼 수학사에 한 획을 그을 전망이다.
국가과학자 종합심의위원회는 황 교수가 우리나라 수학계를 세계 선진국 수준에 진입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올해 국가과학자로 선정했다.
<주요 이력>
1986년 서울대 물리학과(학사)
1988년 미 하버드대(이학석사)
1993년 미 하버드대(이학박사)
1993∼1996년 미 노트르담대학 조교수
1996∼1999년 서울대학교 조교수
1999년∼현재 고등과학원 교수
<주요 연구실적>
균질공간의 변형불가성 증명 (2005 Inventiones mathematicae 게재)
복소사교공간의 fibration의 기저 공간에 대한 예상 증명 (2008 Inventiones mathematicae 게재)
상훈: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2006)·호암상과학상(2009)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