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경제성장, 개도국 발전모델로 부상

#1. 베트남 정책당국자들은 2011~2020년 중기 경제발전계획 수립을 위해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수시로 정부청사를 찾고 있다. 개발, 금융재정정책, 국토이용, 기업정책 등 향후 10년의 경제 청사진을 마련하는데 필요한 정책자문을 받기 위해서다.

한국식 경제개발 10개년계획인 이 중기발전계획의 효율적 수립은 베트남이 2020년까지 중위권 소득국가로 발전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한 걸음 앞서 경제발전에 성공한 한국의 노하우는 그만큼 소중하다.

#2. 압둘라이 와드 세네갈 대통령은 지난 1월 방한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경험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며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 전수를 희망했다. 우리로선 뜻밖의 요청이었지만 그는 “한국은 세네갈의 발전모델이다. 한국이 서부 아프리카 진출을 희망한다면 필요한 모든 협조를 다하겠다”고 적극적 의사를 밝혔다.

세네갈은 당초 한국의 경제발전경험 공유사업(KSP) 지원대상국이 아니었지만 와드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세네갈을 KSP 대상국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적극 추진중이다.

◇KSP란..‘한국식 발전모델 개도국의 전범으로’=KSP는 말 그대로 우리의 독특한 경제발전 경험을 토대로 개도국이나 저개발국에 정책자문을 해주는 사업이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한국의 경험과 축적된 기술은 물론 실패담까지 전달해 개도국의 경제성장에 실질적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다. 이 사업은 공.사석에서 개도국들이 한국의 발전 비결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자 2004년 시범사업으로 출발했다. 초창기인 2004~2005년만 해도 대상국가는 연도별로 2개국에 불과했고, 예산도 10억원, 8억원으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정부로서도 한국식 개발모델이 해당국가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반신반의하면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혜국가에서 호평이 나오고 추가 자문을 요청할 정도로 활기를 띠면서 지원 대상국은 2006년 4개국, 2007년 5개국, 2008년 8개국으로 꾸준히 늘었다. 특히 이 사업은 지난해 우리 정부가 ‘한국과 함께하는 경제발전’이라는 모토 하에 대표적 국가 브랜드 사업으로 추진키로 결정하면서 양적으로 큰 성장을 했다.

지원대상국이 11개국으로 늘고 예산도 50억원으로 증액됐다. 중점지원국 제도를 도입해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포괄적 정책자문도 실시했다. 올해에는 75억5천만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중점지원 국가는 지난해 베트남 1개국에서 올해에는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등 4개국으로 늘었고, 일반지원국도 12~13개국 수준으로 증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가 간에도 입소문이 퍼지면서 우리가 수요대상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는데도 지원을 해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다”며 “6.25 한국전쟁 당시 참전국에 대한 지원에 나서는 방안도 적극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실적은..‘컨설팅에서 자금지원까지 원스톱’=초기에는 특정분야에 국한된 컨설팅이 많았다. 내부적으로 준비가 덜된 상태인데다 운영의 노하우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컨설팅 과정에서 상대국의 긍정적 반응이 나오면서 자신감이 생겼고, 실제 정책집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생겨났다.

일례로 인도네시아는 2005~2006년 채권시장 개발방안에 대한 집중 컨설팅을 받아 2006년 11월 수립한 ‘자본시장발전 5개년 계획’에 우리 정부의 자문을 상당 부분 반영했다.

우즈베키스탄이 중앙아시아의 허브를 지향하며 추진한 ‘나보이공항 경제특구’ 사업 과정에서도 KSP가 큰 역할을 했다. 우리 정부가 수출활성화를 위해 외국인 전용공단인 특별경제자유구역 설립을 제안하자 우즈벡 정부는 2006년 특별경제자유구역 설립을 결정하고 2008년 12월 나보이 경제특구를 지정했다. 이후에도 우리 정부는 사업 내내 우즈벡 정부와 밀착 컨설팅을 진행했다.

알제리 역시 2006년과 2008년 신용카드 거래 활성화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자문을 토대로 2008년 전자결제시스템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최근에는 특정분야의 컨설팅에 그치지 않고 경제정책 전반에 대한 자문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2004년 첫 지원국이었던 베트남은 2005년만 제외하고 매년 우리나라의 지원대상국에 포함될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형성됐다. 시작은 수출신용기구 설립에 관한 것이었다. 베트남은 우리 정부의 자문을 바탕으로 2006년 우리나라의 수출입은행을 본뜬 베트남개발은행을 설립했고, 이후 자문분야는 경제전반으로 확대됐다. 지난해부터는 베트남이 10년짜리 중기 경제발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컨설턴트로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측 전문가 참여폭도 종래 3~4명에서 15명으로 크게 늘었다.

정부는 컨설팅에만 머물지 않고 하드웨어적 지원으로도 연결시킬 방침이다. 정책집행에 필요한 자금 지원까지 원스톱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일례로 도미니카공화국은 한국의 코트라, 수출입은행과 같은 조직 설립에 대한 자문을 받았는데 이 국가가 기관 설립에 나설 경우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이용한 유상차관 지원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왜 한국인가..‘고기 대신 고기잡는 법’ 전수=개도국 개발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나라가 적지 않지만 한국의 모델은 국제적으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2007년 3월 한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개발경험은 개도국의 바람직한 발전모델”이라고 평가했고, 아프리카 개발은행 카베루카 총재는 “아프리카에 부족한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효율적으로 쓰는 노하우”라며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국의 KSP는 물건을 직접 지원하는 선진국형 양적 원조 대신 경제발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는 데 장점이 있다는 평가다. 쉽게 말해 선진국이 물고기를 잡아주는 방식이라면 우리나라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뜻이다.

개도국이 볼 때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 자체가 매우 인상적일 뿐 아니라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로 여겨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폐허 위에서 단시간에 경제발전에 성공해 선진국의 문턱까지 진입한 유일한 국가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로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해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모두 전수받을 수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경제발전 초기단계의 개도국 입장에서 선진국형 발전전략은 너무 먼 얘기이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에서 출발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벤치마킹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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