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김 할머니의 존엄사, 혹은 안락사 문제는 ’생명의 끝’에 대한 여러가지 논란을 촉발시켰다.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환자 본인에게, 또 가족과 의사의 윤리에는 어떤 함의점을 갖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논란의 중심에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정말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상태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문제였기에 안락사, 존엄사와 관련된 논쟁이 이만치나 뜨거웠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 연구가 발표되어 생명윤리에 대한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영국과 벨기에 연구팀이 7년된 식물인간의 의식·마음의 뇌신경 신호를 읽어냄으로써 환자와 ‘대화’가 가능하다고 보고한 것이다.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지 2010년 2월 3일자 온라인판에 “의식을 잃은 환자의 두뇌활동의 의지적인 조절”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이 5년 간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에게 ‘아버지 이름이 알렉산더가 맞느냐’ 정도의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뇌파와 혈류의 움직임을 탐지하는 기능성자기공명이미지(fMRI) 기기를 동원, 환자의 뇌를 스캐닝한 결과 예스와 노를 관장하는 뇌 영역이 질문에 따라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23명의 식물인간 상태 환자 중 4명만이 이 같은 반응을 보였고 해당 환자가 의식이 있더라도 ‘생명을 연장하고 싶으냐’와 같은 복잡한 문제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확실치 않다는 한계점은 있지만 최소한 식물인간 상태 환자의 머리와 가슴이 완전히 텅 빈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한 셈이다.
이는 앞으로는 안락사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함을 의미할 수 있다. fMRI로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면, 연명 치료에 대한 식물인간 자신의 의사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락사의 근거는 혼수상태가 아닌 식물인간의 환자들은 깨어 있는 상태이지만 심각한 두뇌 손상 때문에 ‘의식이 없다’는 기존 학설이었다. 그러니 식물인간이 된 환자가 의식이 있다고 한다면 안락사의 인도적 정당성은 그 정당성을 잃는다. 아무리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라 해도 “죽고 싶으냐.”라고 물었을 때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변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 연구 결과는 앞으로의 의학에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의식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의사들은 당연히 그 의식을 조금이라도 더 식물인간 상태 이전으로 돌리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이다. 이는 식물인간 치료 방법이 앞으로 훨씬 더 중요해질 것을 시사한다.
건강한 삶과 건강하고 인도적인 죽음으로 이르는 길은 이처럼 멀고도 험하다. 하지만 이를 향한 의학의 앞날이 밝을 것이라는 것 역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학, 과학자들의 건투를 빈다.
차원용 아스팩미래기술경영연구소장 wycha@StudyBusin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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