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 업계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

 #트랜스포머 등 아날로그 부품을 주로 만드는 A사는 원재료 내재화를 위해 지방에 공장을 세우고 있다. 코일을 감는데 쓰이는 구리선 가격이 너무 올랐기 때문이다. 직사각으로 사출된 이 구리선은 일본 업체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품목이다. 엔고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바로 이어졌다. 이번 공장 설비 투자도 극비리에 진행중이다. 소재 내재화 추진 사실이 일본업체에 알려지면 판매가 상향 등의 보복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핵심 부품·소재의 자체 생산·조달이 늘어나면서 부품소재업계에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많은 부품 업체들이 세트 업체의 판가 인하와 엔고로 인한 핵심 소재 가격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내재화 작업에 착수했다. 덩달아 기존에 거래하던 소재업체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연초들어 부품·소재 기업간 공급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부품 기업들이 핵심 소재 자체 생산 및 내재화에 나서면서 소재 기업의 매출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잠재적인 경쟁자로 부상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 업체 담당자간 감정 싸움이 발생하거나, 소재 업체가 판가 상승 등 보복을 진행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부터 터치폰의 활황으로 성장하고 있는 터치스크린 분야는 소재 국산화 성공의 대표적인 사례다. 디지텍시스템스는 투명전극(ITO) 필름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기존 거래 업체인 일본 니토덴코와 경쟁 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ITO 상판 등 일부 부문에서는 여전히 니토덴코 제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 부품 분야에서도 소재 국산화가 잇따라 진행되고 있다. 트랜스 코일을 만드는 산화철, 구리선, 에폭시 등은 기존에 일본·대만 업체 제품을 구매해 조립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환율의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커지면서 거래업체 몰래 내재화를 추진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소재 내재화는 많은 설비투자를 진행해야 하고, 실패 위험도 따르지만 부품업체의 장기적 사업 위험도를 줄일 수 있다.

 일부 소재기업들은 지난해 엔고 상황에서 부품업체와의 오랜 관계를 고려해 원자재 가격 상승의 부담을 분담하고, 할인가를 적용해주는 등 많은 혜택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부품업체들이 앞에서는 힘들다는 이유로 판가 인하를 요구하고, 뒤에서는 소재 기업의 영역을 넘보기 위해 준비했다는 사실을 괘씸하게 여기고 있다.

 이에 부품업체들측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세트업체의 판가 인하 압력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핵심 소재의 대부분을 일본·대만 업체들이 판매하기 때문에 환율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상황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것. 또 최근에는 세트업체들이 부품 업체의 평가항목에 소재 개발 능력에 가산점을 주기 시작하면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라도 소재 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부품업체 사장은 “삼성전자 등 국내 세트업체들은 부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길 바라고 있다. 부품 업체가 소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또 핵심 소재를 언제까지 해외 기업에 의존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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