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지스터, 레이저, 통신위성, 유닉스 시스템, 이동전화, 전자교환기, 고화질(HD)TV.’ 정보통신(IT) 혁명을 이끈 기술이다. 이 기술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벨연구소가 그 동안 개발한 기술이기도 하다. 1925년 세계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터 그레함 벨의 이름을 따 설립된 이 연구소는 그야말로 세계 IT역사 박물관이다. 노벨상 배출자도 13명에 이른다. 출원한 특허만 5만건이 넘는다. 이 벨연구소가 지난해 12월 17일 상암동 DMC산학협력센터에 ‘서울 벨연구소(Bell Labs Seoul)’를 개소했다. 향후 5년간 서울시와 고려대와 협약을 맺고 향후 5년간 국제공동연구를 수행하게 된다.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을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 이기수 고려대 총장 등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3개 기관의 대표가 모여 향후 IT에 의한 기술융합, 이를 위한 인재육성, 향후 IT가 가져올 미래 변화와 각 기관의 미래비전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대담은 지난해 말 상암동 DMC산학협력센터 서울 벨연구소에서 이뤄졌으며 e메일로 보완했다.
# 세계 최고의 지식허브를 꿈꾼다
◇김종훈 사장=현재 우리는 3 ∼5년마다 정보량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하는 정보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량이 두 배 증가하는데 사람의 평균 수명에 해당되는 시간이 소요되던 100년 전과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 수요를 고객별로 관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용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원하는 시간에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분리, 분산되어 있던 정보 보관소, 연구원, 기업, 연구 기관들을 광범위하게 연결해 상호 협력하도록 해야 한다. 상호 협력과 공조를 통해 다양한 기술과 문화, 전망 등을 통합하고 궁극적으로 개인들에게 최고의 혜택을 선사할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다.
획일적 형태의 연구 조직이 모든 일을 해내는 현재 상황의 모델은 생존하거나 지속가능한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벨 연구소가 추구하는 개방형 혁신 모델은 더욱 더 글로벌화를 추구하며 대학이나 정부 기관, 기타 연구기관과의 협력에 개방적이다. 또 업계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협업 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오세훈 시장=좋은 말씀이다. 세계 연구개발 시장을 주도해 온 벨연구소의 혁신은 창의 정신을 내세운 서울시의 비전과도 상통한다. 서울은 세계가 인정한 전자, 정보통신 중심도시로서 앞으로 서울시의 야심작인 DMC를 중심으로 연구개발(R&D) 메카를 이뤄 갈 생각이다. 서울 벨 연구소 개소는 이 같은 전략의 일환이다. 서울시와 벨연구소, 고려대가 향후 5년 간 진행하게 되는 협력은 향후 국내 IT산업에 새로운 협력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이기수 총장=대학도 새로운 변화에 직면해 있다. 기초과학연구가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에 적용됨으로써 국가경제 발전과 인류문제 해결에 도움을 줘야한다. 고려대는 기존의 ‘리서치’ 중심에서 비즈니스 기능이 강화된 ‘사업화연계기술개발(R&BD)’ 중심으로의 혁신을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술지주회사다.
고려대 기술지주회사는 2020 비전으로 50개 자회사, 자산 1조원, 매출 1조원을 달성해 ‘월드 클래스 기술지주회사’로 만들 것이다. 비전 달성을 위해 기존 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양적 성장과 미래 핵심기술 사업화라는 질적 성장을 동시에 추구한다.
고려대가 만들어갈 자회사는 핵심기술 기반 제조 벤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식과 서비스를 더해 부가가치 높은 ‘글로벌 강소기업’ 육성이 목표다. 또 신성장동력을 이끌 캠퍼스 CEO를 적극 양성하고 사업성과의 대학재정 환류를 통해 대학경쟁력을 제고하는 ‘스노우볼의 선순환구조’를 정착시킬 것이다.
◇오세훈=기업이나 대학, 지자체도 다 같은 문제를 고민하는 것 같다. 기업의 문제, 대학의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2010년 전자정부 세계 1위에 걸맞는 인프라와 안정적인 서비스를 통해 ‘글로벌 세계도시, 지식정보사회의 선도도시’로 만들어 갈 계획이다.
첨단 u-ICT 기술기반 시민체감형 u서비스 발굴과 세계도시전자정부협의체 발족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해 갈 것이다.
서울벨연구소 유치도 해외 유수연구소 유치와 연구개발(R&D) 캠퍼스 타운 조성 등을 통해 서울을 동아시아 최고의 ‘글로벌 지식 허브’로 만들겠다는 혁신적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고대, 세종시에 융복합 공학 연구캠퍼스 구축
◇김종훈=인재 양성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개방형 혁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훌륭한 인력 확보와 인재 양성이 필수 요건이다. 벨연구소는 혁신성과 통찰력을 오랫동안 인정받는 세계적인 연구 인력을 중심으로 최고 수준의 연구 기량을 유지하는 것도 우수 인재의 힘이다. 벨연구소는 세계 도처의 유명 교육 기관 과학자들을 지속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갖춘 연구 인력들은 다채로운 전망을 내놓을 수 있다. 다각도에서 사물을 볼 줄 아는 통찰력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요즘과 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역동적 연구 환경에서 혁신적 기술을 창출하는 필수 요소가 된다. 이런 인재가 중요하다고 본다.
출신이나 배경에 관계없이 벨연구소 연구원들은 대부분 호기심이 강하고 협동 정신이 뛰어나다. 또 새로운 관점이나 전망에 매우 개방적이며 보편적인 사물을 다른 시각에서 관찰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특성이야말로 벨 연구소가 찾고자 하는 연구 인력이 갖추어야 할 재능이자 자질이며 이런 성향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세훈=맞다. 소프트파워가 중요하다. 우리는 도시경영 패러다임을 창조성, 인본주의, 거버넌스, 지속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결국 이는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 ‘매력 있는 도시, 서울’을 만들어 갈 것이다. 도시 경쟁력은 시장규모, 기업환경, 국제화 수준 등의 ‘경제여건’과 교육·사회복지·문화활동·주거환경 등 ‘삶의 질’, ‘시민의식’ 등 여러 가지 척도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 결정된다.
서울은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대표도시이자, 고품격 문화와 풍부한 자원 등이 많은 장점을 지닌 도시다.
600년 수도로서의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한강이나 남산과 같은 소중한 자연자원이 있으며 3회 연속 전자정부 1위 등 IT분야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디지털문화의 발산지로 세계 문화 트랜드도 주도하고 있다.
미래 서울은 창의적 인재가 일하기 좋고, 글로벌 기업활동을 하는데 최적의 도시로써 여유로운 삶과 사회적 평등이 보장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세계 트랜드를 선도하고 세계인들이 다양한 매력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무한매력의 도시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기수=인재 육성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한다. 특히 대학으로서 책임감이 크다. 고려대도 정부의 WCU(World Class University) 사업에 선정된 뇌공학(심리학+IT)분야와 태양광(화학공학+신소재)분야를 중심으로 세계 최고의 스타 교수를 영입해 교육과 연구를 진행중이다. 미래성장 동력분야 육성을 위해서다. 또 경영학, 한국학, 생명과학, IT분야 등에서 BK 및 HK 사업 선정되는 등 37개의 국책사업을 수행 중이다.
녹색성장(에너지/환경/자원) 분야에 대한 정책과 기술을 겸비한 인재육성을 위해 전문대학원인 그린스쿨(Green School)를 신설했다. 또 산업의 정보화 추세가 증대되면서 거의 모든 제품이 IT를 장착하게 됨에 융합IT 혹은 융합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이 시급하다는 판단아래 융합소프트웨어 전문대학원도 신설했다.
향후 미디어와 디자인이 주도하는 21세기에 대비하기 위한 미디어 전문가 양성을 위해 언론학부를 미디어학부로 확대 개편했으며, 미래 산업과 문화를 선도할 창조적 디자인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2010년에는 디자인학부도 설립할 예정이다. 의·약·생명과학 학문분야를 새로이 육성하기 위해 2011학년도 약학대학을 설치 신청서를 제출, 현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좀 더 중장기적으로 보면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세종시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바이오 사이언스 및 융복합 공학 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연구캠퍼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기존의 전공, 학과, 대학의 벽을 허물고 산업과 연구가 직결될 수 있는 융복합 연구소를 중심으로 학문분야를 재설계하는게 목표다. 예를 들면, 자동차 산업에서 앞으로 개발해야 할 그린카에 대한 연구를 위한 종합연구소(가칭 그린카 연구소)를 설립하고, 이런 산학협력 연구에 필요한 소재, 기계, 전기, 전자, 화공 등을 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석박사 과정을 설치하겠다.
고려대 세종시 연구캠퍼스는 미래지향적 산학연 협력체계를 갖춘 새로운 모델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오세훈=대학 내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되는 듯 하다. 서울시도 미래경쟁력을 견인해 나갈 관광, 컨벤션, 디자인·패션, R&D, 금융·비즈니스, 디지털콘텐츠 등 6대 신성장동력산업 육성과 함께 글로벌 도시환경 조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를 비롯해 상암 DMC, 여의도 국제금융지구, 용산 국제업무단지, 마곡 R&D 시티 등 미래경제의 발전소 역할을 하게 될 산업 클러스터가 조성하고 있다. R&D의 상징인 리켄, 바텔, 프라운호퍼, 벨 등 세계 유명 연구소와 더불어 호주 맥쿼리 동북아 지역본부를 비롯해 딜로이트 코리아 등 외국 자본을 여의도 금융지구에 유치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경기, 인천이 기능적 연계 및 역할분담을 통해 최고의 투자매력을 지닌 광역경제권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 기존의 틀(우물 안)을 넘자
◇이기수=국제화도 중요해 보인다. 특히 우리 나라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글로벌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오세훈=서울시는 ‘글로벌 지식정보사회의 선도 도시’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 인프라 개선, 내외부시스템 정보자원의 통합·연계를 통한 고도화, 개인정보보호 및 사이버 보안시스템 강화 대책 등을 통해 ‘안전한 전자정부’를 만들어가고 있다. 홈페이지와 모바일·GIS포털 등은 단순한 정보제공을 넘어 쌍방향 소통의 장으로 운영할 것이다. 또 u투어, u헬스 등 u-ICT를 접목해 시민체감형 u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발굴, IT수도 서울을 만들 계획이다.
내년 하반기에는 서울시가 주도하는 첫 국제기구인 ‘세계도시전자정부협의체’를 발족·운영해 글로벌 리더십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이기수=국내·해외 대학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국제화가 필요하다. 지난 수년 간 국내 대학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분야가 바로 국제화다.
국제화 초기 단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대학의 국제화’라고 하면 떠올리는 외국인 학생·교수 비율, 영어강의 비율, 교환학생 프로그램, 해외 대학과의 교류협정 체결 등에 주안점을 두어 국제화를 추진했다. 2009년 현재 고려대는 세계 72개국 700여개 기관과 협정을 체결하여 교류 중에 있다.
◇김종훈=현재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것도 중요하다. 벨 연구소에는 머지 않아 시장에 등장하게 될 연구 분야 선구자들이 일하고 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무선과 광통신 기술이 제공하는 장점에 익숙해져 있을 수 있으나 정보 교환 및 사용 방법을 혁신적으로 변모시켜 줄 수 있는 또 다른 새로운 분야들이 많이 있다. 센서망, 인체 내에서 작동하는 마이크로 및 나노 네트워크, 인공 지능, 가상망, 클라우드 네트워킹, 인간과 기계간의 인터페이스 등이야말로 산업 동향 및 주도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시킬 신규 기술 분야 중 대표적인 예다.
# 최고 IT 연구의 터를 닦자
◇김종훈=중장기적으로 벨연구소는 100% 광대역 커버리지 지원 기술, 보안 및 프라이버시, 망 효율성, 몰입적 상호작용, 정보 과부하, 그린 테크놀로지 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그린 테크놀로지의 경우 혁신적인 히트싱크 장치를 개발해 열량을 기존 장비의 몇 배 이상 효율적으로 방출함으로써 에너지 소모량을 절감시킬 수 있게 됐다. 차세대 파워 그리드 실현을 위한 혁신 기술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안테나 엘리멘트 바로 뒤에 전원 전자장치를 배치하는 액티브 안테나 어레이를 개발해 RF 케이블링 관련 전력 손실을 없앴다. 알카텔-루슨트의 통신 솔루션을 풍력과 태양열 에너지와 같이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최근의 연구개발 초점은 ‘하이 레버리지 네트워크(High Leverage Networks)’에 기반한 알카텔-루슨트의 비전인 ‘애플리케이션 인에이블먼트(Application Enablement)’를 실현이다. 이를 위한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가까운 시일 내에 진행하게 될 것이다.
통신사업자 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 공급업체들이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요구 조건들을 유연성있게 수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최첨단 애플리케이션들을 신속히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종합형의 ‘노출 플랫폼(exposure platform)’ 등이 포함된다.
◇오세훈=우리나라는 세계적인 IT강국이며 서울은 세계 전자정부 순위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IT선진도시다. 서울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서울 벨연구소도 유치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서울시는 벨연구소에 향후 5년간 200억원을 지원한다. 서울시의 IT 및 인프라를 서울벨연구소의 세계적인 성과와 접목해 우리나라 연구개발(R&D) 분야의 위상을 더 높이기 위해서다. 서울시의 IT 역량강화는 곧 대한민국의 IT 역량강화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기수=고려대도 교수 12명이 벨연구소 연구인력 18명과 함께 ‘광대역 컨버전스’ 네트워크 기반기술 및 응용서비스 분야에 대한 연구에 나서게 된다. 고려대는 세계 최고의 연구 역량을 갖춘 벨연구소와의 협력을 통해 해당 분야의 핵심인재를 육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문형식의 협력관계를 넘어 공동기술을 통해 질적으로 다른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학문적 연구에 멈추지 않고 연구 성과를 상용화해 전자·통신 산업의 고부가가치를 높여 관련 산업군과 기업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김종훈 사장=서울 벨연구소의 연구과제는 ‘광대역 컨버전스’ 네트워크 기반기술과 응용서비스다. 1차로 현재 사용중인 초고속 인터넷보다 최소 5배 이상 빠른 차세대 초고속 무선통신을 개발할 것이다.
통신, 방송, 인터넷 등 통합 멀티미디어서비스를 초고속 유무선망을 통해 전송하는 이 같은 첨단 분야는 고급기술의 뒷받침과 함께 공공기관의 투자와 협력이 필요하다. 이번 협력은 이런 점에서 최고의 조건을 갖췄다.
정리=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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