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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부품소재 세계일류화’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올 한 해 전자신문은 우리나라 부품소재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연중기획을 진행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등 우리나라 주력산업에서부터 태양전지·히트펌프 등 신성장동력까지, 부품소재 산업의 ‘산맥’과 ’계곡’을 속속들이 들여다 봤다. 또 후방산업의 핵심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생산기반 기술에 대해서도 고찰해봤다. 부품소재가 ‘산업의 쌀’이라면 생산기반기술은 곡식을 거두는 농부의 ‘정성스런 손길’이다.

나름의 성과도 있었던 것으로 자평한다. 정부는 지난달 부품소재 경쟁력 제고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핵심 부품소재 자립화 △글로벌 부품소재 시장진출 촉진 △부품소재기업 혁신역량 강화 △소재산업 집중 육성 4대 추진전략 등의 대책을 오는 2018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를 세계 4대 부품소재 강국의 반열에 올린다는 원대한 목표도 제시했다.

1년간 진행된 부품소재 일류화 마지막 회로 우리나라 부품소재 전문가들과 함께 앞으로 우리나라 후방산업이 성장하기 위해 마련되야 할 점들에 대해 짚어봤다.

 ◆참석자(가나다 순)

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주대영 산업연구원 IT산업담당 연구위원

최평락 전자부품연구원장

이신두 서울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사회)

◇사회=국내 부품소재 산업의 취약성을 인식하고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LCD 산업이 태동하던 199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정부가 수 많은 보완책을 내놓았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디스플레이 부품소재의 경우 국산화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많다. 부품소재 산업은 20년 이상 긴 비전을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대통령이 바뀔때마다 큰 기조들이 변한다. 5년에 한 번 부침이 생기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원천기술이 태동되기 쉽지 않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내 후방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할까.

◇주대영 연구위원=일단 우리 후방산업이 성장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원인부터 찾아봐야 할 것이다. 부품소재 산업은 기본적으로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기업의 수가 많고 다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단 인구 규모에서부터 불리한 셈이다.

◇사회=그렇다. 우리가 지금까지 무수한 정책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하면 이는 기술·인력, 즉 절대적인 인구단위가 부족했던 것도 한 원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대영 연구위원=국내 수요만으로는 자생력을 갖기 힘든 것도 한 원인이다. 기술이 있더라도 워낙 다품종 소량생산이다 보니 일부 수요만 가지고는 규모의 경제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특히 금속소재·철강 등이 대표적이다. 대일 무역역조가 심한 품목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인도 등 거대시장을 타깃으로 정부가 길을 열어줘야 한다.

◇사회=대기업들의 협력사 줄세우기 관행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비록 한 업체가 경쟁력 있는 부품소재를 만든다고 해도 삼성과 LG 모두에 공급하는 것은 국내 사정상 쉽지 않은 것 같다.

◇주대영 연구위원=맞다. LG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플래시 메모리를 삼성전자 대신 일본 도시바에서 사오기도 한다. 일본도 과거에는 경쟁사들끼리 협력사 줄세우기 관행이 있었는데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 무라타 같은 스타 부품소재 업체가 나올 수 있는 것도 전방위 공급이 가능한 문화 덕분이다.

◇나경환 원장=부품소재 산업에 대한 시각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 지금까지 부품소재 전략은 선진국 따라잡기·수입대체 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금부터의 숙제는 일본을 추월해서 어떻게 세계 1등의 부품소재 강국이 될 수 있느냐가 돼야 한다. 부품소재라는 분야도 세분화해서 봐야 한다. 결국 소재가 모여 부품이 된다. 정부 정책이 부품보다 소재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는 ‘부품소재’가 아니라 ‘소재부품’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사회=지금까지 정부 정책은 부품과 소재가 따로 분리돼 육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다 보니 소재를 개발해놓고도 이를 어떤 부품 생산에 사용되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는 소재를 개발하면서 부품업체도 같이 들어와서 공동 연구 형식으로 진행되야 한다.

◇나경환 원장=공정기술도 중요하다. 결국 소재 생산은 공정기술이 절반이다. 소재의 특성이 바뀌려면 공정기술이 진보해야 한다. 일본도 과거 ‘모노쯔꾸리(좋은 제품 만들기)’ 정책을 통해 생산기반기술 선진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공정기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다. 금형·열처리·도금 등이 중요하다고 하면 요즘도 그런 것을 연구하냐고 되물을 정도다.

◇최평락 원장=지난달 정부의 부품소재 경쟁력 제고 종합대책은 큰 방향에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해외 연구인력들을 활용하기 위해 KOTRA도 적극 동참시킨다는 것은 기발한 발상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향후 적극 육성해야 할 품목으로 20대 핵심 부품을 지정했는데 이는 대일 무역역조가 심한 것들에만 치우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을 따라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제적인 연구개발을 하지 않으면 결국 세계 일류가 되기 어렵다. 선도 지원형 신성장산업을 찾아가야 한다.

◇사회=그렇다. 수입대체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완전히 새로운 부품소재에 대한 연구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최평락 원장=앞서도 지적했지만 결국 우리 산업을 이끌어 가고 있는 중소기업의 인력을 키우는 것도 큰 문제다. 결국 후방산업이 커야 대기업이 클 수 있는 거다. 삼성전자가 성장하려면 협성회 멤버들이 발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산업에 필요한 인재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전문기술 연수원 등이 있어야 한다. 전자부품연구원에서도 인재 육성을 위해 지원하는데 이 정도 소규모로는 전문 인력을 길러내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점들이 정책에 반영됐어야 한다.

◇사회=우리나라에서 LCD가 주목받은 것은 1990년대 들어서다. 그 때 원천기술을 보유한 일본 연구계 관계자들은 우리나라가 디스플레이 강국이 될 것을 예견했었다. 이유는 우리나라 대학에 디스플레이 관련한 석·박사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에피소드지만 부품소재 산업에 인재육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다.

◇주대영=부족한 연구인력이나마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대학·기업·연구기관 간에 인력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기업·연구기관에 있던 인력들은 대학으로 많이 가지만 반대로 대학에 있다가 기업·연구기관으로 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학에 있다가 벤처기업 차렸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등 자유로운 인재교류가 있어야 한다.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대학에 있다가 기업으로 가면 대학에서는 자기 자리가 영영 사라지게 된다고 생각하는 점이 기업으로의 인재 유입을 막는다. 교수직을 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제도적으로 적은 대학에 두고 있지만 활동은 기업·연구기관에서 할 수 있게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나경환 원장=지난 1960년대 우리나라 우수한 인력들이 이공계로 많이 갔다. 특성화대학도 우리 산업에 영향을 많이 줬다.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산업 경쟁력을 가지게 된 것도 과거 인재육성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산업현실을 반영한 인재 육성이 필요하다. 한국이 IT강국이라는 점을 살려 IT를 활용한 인력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또 일본의 글로벌 기업가 정신도 배워야 한다. 가업승계형 기업과 같은 전통들도 좋은 점은 우리의 장점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사회=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외국 기업 클러스터 전략은 어떻게 진행되야 할 지 얘기해보자.

◇주대영 연구위원=정부는 최근 일본 부품전용 공단 4군데를 지정했는데 집적효과가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파주나 탕정을 보면 알 수 있듯 부품소재 업체는 세트 업체와 가까이 붙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 확률이 높다.

◇최평락 원장=일단 외국 기업 유치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한다는 아이디어는 좋다. 그러나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일본 부품전용 공단을 예로 들어 보자. 일본에 있는 기업이 한국에 오는 이유가 뭐겠는가. 일본에서 생산해서는 더 이상 원가경쟁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한국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 결국 우리나라에 자리잡는 일본 기업들의 경우 최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거다. 단순히 우리나라에 기업이 들어와 있다고 해서 기술이 유치되지는 않는다.

◇사회=정확한 지적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서 연구개발을 하고 정부 자금만 받고서는 기술이전은 회피하는 사례가 많다. 기술이전을 할 때 이전 가격을 지나치게 높이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해외 선진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평락 원장=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가는 게 맞다. 해외 연구소와의 합작 센터를 국내에 두지 말고 해외에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프라운호퍼와의 공동 연구센터를 한국에 두지 말고 독일 현지에 두는 것이다. 그래야 선진 기술들을 습득하기 쉬울 것이다. 이런 협상에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사회=최근 부품소재 분야에도 환경 관련 이슈들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앞으로 후방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나경환 원장=앞으로 에너지를 많이 쓰거나 환경에 유해한 기술은 경쟁력을 잃어 갈 것이다. 생산기반기술에서도 ‘녹색’이 중요한 화두가 됐다. 그러나 국내 중소기업들은 환경과 관련한 대응이 매우 취약한 편이다. 정부는 중소 부품소재 기업들이 환경 관련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주대영=최근 부품소재 분야 키워드는 역시 ‘모바일’과 더불어 ‘친환경’이다. 최근 진행된 덴마크 코펜하겐 기후회의에서 볼 수 있듯, 이제 전기소모량이 많거나 환경에 유해한 기술은 더 이상 산업에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됐다.

◇최평락 원장=지식재산권과 관련한 문제도 앞으로 부품소재 기업들이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중소기업이 자기 특허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외부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지식재산권 패트롤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지식재산권 패트롤 시스템은 중소기업들이 특허를 확보하면 이를 등록해서 대기업들이 기술을 침해할 수 없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주는 공공 서비스다.

◇사회=정리해보면 부품소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갖출 수 있게 해외 시장시장을 개척하면서 인재육성을 위한 정부 정책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최근 부쩍 제기되고 있는 환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중소기업들도 미리 준비를 하는 한편 정부의 지원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정리=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