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안전무선통신망은 ‘국가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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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은 공공안전 차원서 무선망 구축…감사원ㆍKDI는 경제 논리로 반대

경제성 확보 문제 등으로 보류된 국가통합지휘무선통신망(국가통합망) 사업의 정책방향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한 공개토론회가 열려, 영국ㆍ미국ㆍ독일 등의 구축 사례와 국내 환경 및 구축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지난 7일 과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선 ‘재난안전 무선통신망 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행정안전부 재난통신팀이 주최한 이 토론회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을 통해 수행된 중간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유관기관과 관련 업계, 전문가 등의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됐다.

국가통합망은 각종 재난에 대비해 경찰, 소방 등 여러 기관이 사용하는 무선통신망을 하나로 통합하는 사업으로, 예산 3600억원을 투입해 2006년까지 전국을 아우르는 디지털 TRS 통신망을 구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05년 국정감사에서 전면재검토 주장이 제기돼 예산이 2100억원으로 줄면서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결국 2005년 10월부터 서울·경기지역과 5대 광역시를 대상으로 시작된 시범사업이 2007년 12월 끝난 뒤 사업자체가 보류됐다.

게다가 지난해 2월 감사원이 감사결과처분요구서를 통해 사업추진방식의 적정성과 경제성, 사업목적 달성 가능성 등에 의문을 제시했다. 올해 6월 기획예산처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를 통해 실시한 타당성 재조사에서도 경제성 확보가 어려워 정책 타당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경제 논리 때문에 국가통합망 사업은 중단되거나 전면 재검토될 상황에 놓였다.

이에 대해 7일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KISDI 김사혁 책임연구원은 “감사원 감사 및 KDI 타당성 재조사로 인해 결과 국가통합망 사업이 보류된 뒤 재난 관련 기관들의 자체 무선통신망 신·증설이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또 그는 “국가통합망 사업이 다시 추진된다 해도 빨라야 2013년까지 구축을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사혁 연구원은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10월부터 수행한 재난안전 무선통신 정책방향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의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행안부 재난통신팀 쪽에 따르면, 이 용역과제는 보류된 국가통합망 사업을 재검토하며, 가능한 대안을 제시해 난맥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업을 정비하고 향후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데 활용될 방침이다. 또 23일까지 공개토론회 결과를 반영한 용역과제 최종결과를 보고한 뒤, 이달 말까지 재난안전망 기본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행안부 재난통신팀 쪽은 설명했다.

이날 김사혁 연구원은 “영국,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선 재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공공안전 무선통신망을 구축 운영 중이다”며 “우리도 경제성만을 따질 게 아니라 공공인프라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3월 사업이 보류된 뒤부터 경찰청, 소방방재청, 한국도로공사 등 재난관련 기관들의 자체 무선통신망 신ㆍ증설이 중단된 탓에 무선통신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운영 중인 자체 통신망의 장비 노후화 문제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심 재난관리 책임기관들이 국가적인 재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무선통신망을 갖추지 못하거나, 장비가 너무 오래돼 재난을 맞았을 때 인명ㆍ재산피해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이어서 김사혁 연구원은 지구촌 전체의 기부변화 가속, 미래 재난 예측 가능성 감소, 생활공간 밀집화, 재난안전관리의 다양성과 복합성 증대 등의 이유로 국가 재난안전 대응체계 혁신 및 선진화된 재난안전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찬오 행안부 재난안전정책자문위원장(서울산업대 안전공학과 교수)도 “국가통합망 사업은 재난을 맞았을 때 신속하게 대응하고 유관기관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시작됐다”며 “먼저 현 상태의 무선통신망을 인정한 뒤 국가통합망 구축을 고려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관련 업계에선 대안 제시보다 자사 이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주제발표 후 이어진 토론 및 의견교환 시간에 나온 의견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책방향과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토론 시간 초반에 나온 의견들은 ‘우리 기술도 고려해 달라’는 업계 관계자들의 요청이 주를 이뤘다.

김사혁 연구원이 발표한 와이브로(WiBro)·테트라(TETRA)·아이덴(iDEN) 세 기술의 장단점에 대한 반론도 줄을 이었다. 자사 기술의 단점으로 지적된 내용이 잘못됐으니,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참석자는 “큰돈이 걸린 사업이어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업체들이 모두 몰려와 기술적인 문제들만 이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토론회의 본질은 할지 말지 확정도 안 된 국가통합망 사업이 가능하도록 대안을 제시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의 지적처럼 이날 토론회는 국가통합망 사업에 대한 관련 업계의 관심을 대변하듯 과열 양상을 보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행안부 재난통신팀은 관련 업계와 유관기관 등에서 1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참석자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160여명에 달했다. 토론 및 의견교환 시간도 70분으로 정해져 있었으나, 시간을 제한해야 할 만큼 발언자 수도 많았다.

재난포커스(http://www.di-focus.com) - 이주현 기자(yijh@di-foc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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