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서비스 종량제 도입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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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삼성, LG 등 대형 그룹의 계열사 중심으로 IT아웃소싱 서비스에 대해 종량제를 도입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사실 국내에 IT서비스 종량제 개념이 소개된 것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한국IBM은 ‘온디맨드’라는 이름으로 1998년에 사용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의 IT아웃소싱 비용산정 방식을 제안했다. 또 국내 업체로는 지난 2005년 삼성SDS와 SK C&C가 종량제 도입을 IT아웃소싱 사업의 핵심전략으로 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종량제 도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전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확산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지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지 10년이 넘은 종량제가 이제서야 대형 그룹사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것은 비즈니스 환경과 기술 변화에 기인한다. 비용 절감과 IT자원 활용 유연성을 목표로 종량제를 검토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만 종량제를 위한 비용 산정 기준은 아직 초보적 수준이다. 서비스 수준에 따른 보다 세부적인 기준 단위와 명확한 측정 툴에 의한 계측이 요구되고 있다.

 삼성그룹의 전기·전자 계열사인 삼성코닝정밀유리,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가 지난해 IT자산을 IT아웃소싱 업체인 삼성SDS에게 매각하고 IT아웃소싱 비용산정 방식으로 종량제를 도입한 데 이어 호텔신라, 제일모직이 올해 종량제를 도입했다. 삼성물산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LG그룹도 LG전자, LG화학, LG패션 등 제조 계열사 중심으로 종량제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 동부, 롯데, 한화그룹 등 중견그룹들도 그룹 IT통합을 추진하면서 종량제를 일부 적용하고 있거나 적용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아직은 많은 기업들이 종량제 도입을 검토만 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만다. 또 종량제를 도입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은 서버, 스토리지 등 IT인프라에 대한 사용량을 측정하는 정도다.

 ◇비즈니스 변화와 기술발전이 종량제 확산 계기=최근 종량제 도입이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배경에는 크게 △비즈니스 환경 변화 △기술의 발전 △기업 내부 환경 변화 등 3가지 요인이 있다.

 이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비즈니스 환경 변화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급변하는 환경 변화로 인해 신규사업 론칭, 해외시장 진출 및 확장, 사업방향 변경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IT자원도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IT자원이 필요할 때마다 구매하는 형태보다는, 기존에 보유하던 IT자원을 매각한 후 이를 빌려쓰고 사용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는 형태가 선호되기 시작했다.

 김진우 아모레퍼시픽 상무는 “비즈니스가 최근 급격하게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IT자원 사용량도 유동적인 상황이 됐다”면서 “이런 상황을 대처하기 위해 시스템 유연성을 확보하는 데는 종량제가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IT자원 사용이 특정 시기에 급증한다는 것도 종량제 도입을 부추기는 비즈니스 변화다. 정보시스템 처리량이 급증했고 특히 금융, 통신, 서비스, 유통업종의 기업들은 특정 시점에 처리건수가 평소의 2∼3배에 이르는 상황을 겪게 된다. 이 때를 위해 IT자원을 넉넉히 구매해야 하지만, 1년에 고작해야 몇번 되지 않는 피크타임을 위해 IT자원을 평균 사용량보다 2배 이상 상시 보유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 김철우 대한항공 상무는 “과거 설이나 추석 연휴 직전에는 예약시스템 사용량이 평소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나는데 평상시에도 이 만큼의 IT자원을 보유해야 한다는 것은 부담이었다”면서 “그러나 현재 온디맨드 계약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이러한 부담은 많이 줄어든 상태”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기술의 변화도 종량제 도입을 확산시키고 있는 요인이다. 이는 IT아웃소싱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고객에게 종량제를 제안,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요인이다.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 종량제가 가능하려면 IT자원 활용이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러한 유연성은 단순히 IT자산을 매입해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기업에서 도입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가상화와 통합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IT서비스 비용을 사용한 만큼만 받아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면 즉, 종량제를 선택하는 고객이 많다면 서비스 제공업체는 수익 측면에서 문제가 없게 된다.

 이외에도 계열사간의 IT통합, 비용절감, 인력감축 등 내부적인 환경변화도 종량제 도입을 앞당기고 있다. 특히 IT통합은 IT아웃소싱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룹의 IT계열사로 하여금 종량제 도입을 수월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그룹들은 IT통합에 IT자원과 인력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한화그룹이다. 한화그룹은 내년 통합 데이터센터가 완공되면 IT자원을 한화S&C로 통합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IT인력에 대한 통합이 진행 중이다. 종량제 도입은 초기단계에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버·스토리지에 종량제 적용 한정=최근 들어 종량제 도입이 확산되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종량제를 도입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이 IT인프라 운영에만 국한돼 있다. 그것도 대부분이 서버는 단순 처리건수나 중앙처리장치(CPU) 사용량 기준으로, 스토리지는 GB 단위로 사용량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종량제가 이뤄진다. 또 이를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 시스템과 측정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기업도 많지 않다.

이러다 보니 종량제를 도입했지만 당초 취지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되고 있다. 즉, 서버 사용량을 CPU 기준으로 체크한다 하더라도 최종 비용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서버의 성능이 반영돼야 하고 투입인력, 업무 중요성, 그리고 서버가 위치한 공간 등 발생된 비용의 모든 요인들이 반영돼야 하는데 이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한 곳은 흔치 않다. 제3자 아웃소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한국IBM이 온디맨드 방식에 일부 이를 적용하고 있는 정도다. 그외 그룹 내 IT계열사를 통해 실시하고 있는 종량제는 세부적인 기준을 마련해 놓고 적용하지는 못한 상황이다.

 그나마 우리금융그룹과 삼성그룹이 현재로서는 가장 체계적인 종량제 기준을 마련해 놓고 적용하고 있다. 우리금융그룹의 IT자회사인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은 지난 2002년부터 시작한 계열사 대상의 IT아웃소싱 경험을 기반으로 총 6개 영역 13개 세부항목에 대해 종량제 적용 기준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이 기준은 앞서 EDS와 맥킨지를 통한 컨설팅 결과물이다.

 삼성그룹 계열사에게 IT아웃소싱을 제공하고 있는 삼성SDS도 지난 2004년부터 ‘유즈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종량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연구했다. 이후 고객의 기업 특성을 반영한 측정 툴을 구축했다. 이 툴은 아웃소싱 대상인 정보시스템의 성능, 업무 특성 등을 모두 반영해 사용량을 측정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삼성SDS는 향후 IT인프라 뿐 아니라 애플리케이션 아웃소싱 영역에도 종량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업 마인드가 여전히 걸림돌=기업들이 종량제를 도입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IT아웃소싱에 대한 의사결정권자나 기업 내 IT조직의 마인드 문제다. 무엇보다도 종량제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IT자산을 IT아웃소싱 업체에게 매각을 해야 가능한데 많은 기업들은 이 부분에 대해 주저하고 있다.

 특히 정보시스템의 비즈니스 민감도가 높은 금융권, 통신업계 등은 더욱 그렇다. 실제 그룹의 금융계열사들을 비롯해 SK텔레콤, LG텔레콤 등 통신사들은 대부분 자체적으로 IT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 금융권 최고정보책임자(CIO)는 “금융사는 정보시스템 처리건수가 많고 비즈니스 민감도가 높아 IT자산을 매각한 후 종량제를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정재 우리금융지주 수석부장은 “종량제 도입은 마인드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의 문제다”면서 “IT영역은 일반적인 비용관리의 관점이 아닌 IT서비스만의 특성을 고려해 서비스 단위별로 관리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를 위해 김 수석부장은 IT만을 별도로 분리해 관리할 수있도록 IT셰어드서비스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아직은 일부 기업이지만 종량제 도입을 애플리케이션 영역까지 확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최근 IT인프라 운영에 종량제를 도입한 제일모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종량제 도입 확산을 검토하고 있다. 향후 2∼3년 후쯤 애플리케이션에 종량제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애플리케이션 개발 및 유지보수 비용 산정 시 단순히 개발기간과 투입인력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애플리케이션 영역에 종량제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다. 이 중 가장 큰 문제는 100여개에 이르는 서비스수준협약(SLA) 항목에 따른 비용산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이러한 기준안을 마련해 IT아웃소싱에 종량제를 도입한 기업은 단 한곳도 없다.

 이외에 현대·기아차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 두산그룹 등 대부분의 그룹 계열사들과 우리금융그룹을 제외한 전 금융그룹들은 아직 종량제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SK그룹도 종량제 도입이 일부에만 적용된 정도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과거 종량제 도입을 검토한 적이 있으나 실제 적용은 이뤄지지 못했다.

 한 IT전문가는 “종량제 도입이 현재로서는 비용산정 방식 중 진화된 방식이지만 궁극적인 모델이라고는 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종량제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IT비용에 대해 명확한 사용량을 측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혜권기자 hk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