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찰가-조달가 차이 커 사업자 추가조정 요구
경쟁력 있는 국산 디지털교과서 단말기가 없어 두 차례 유찰한 정부의 대형 디지털교과서 프로젝트 입찰이 다시 유찰될 위기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사업자가 써낸 가격(투찰가)과 조달예정가격의 간극을 이유로 최종 협상을 주저하기 때문이다. 정부 요청으로 가격 대비 성능을 개선한 국산 단말기를 개발한 업체도 있지만 정부는 ‘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협상평가부적격자로 판정했다.
11일 교육과학기술부와 디지털교과서 관련업계에 따르면 총 180억원 규모의 예산이 배정된 전국 110여개 전원(농어촌)학교 인프라 구축 사업 우선 협상 대상자인 LG데이콤·HP 컨소시엄이 선정 직후 투찰가와 조달 예상가의 간극이 크다는 이유로 최종 계약을 미루고 있다. 이 컨소시엄은 조달청·컨소시엄 참여기업들과 추가 조율을 거쳐야 한다며 조정을 요구했다.
이 프로젝트에 공급할 예정인 디지털 교과서 단말기는 총 9842대로 올해 전국 디지털교과서 시범사업에 공급한 4700대의 두 배에 이른다. HP는 해당 사업 수주를 위해 기존 단말기가 150만원대로 매우 고가인 점을 감안, 기존 인텔 CPU를 AMD로 교체하고 기기도 HP2730P에서 TX2000 기종으로 바꿔 단가를 낮췄다. 그런데도 대당 가격이 130만원에 육박, 정부가 제시한 대당 110만원대와는 가격 차이가 크다.
KT 공공고객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HP의 공급가가 대당 128만원 선인 것으로 안다. 계산대로라면 LG데이콤이 18억원의 적자를 감내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LG데이콤 공공영업팀 관계자는 “(입찰에 응했지만) 조달예가와 투찰가 사이 간격을 좁히기 위해 조달청과 협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유찰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유찰 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안정적인 성능의 태블릿PC’로 인정하는 HP의 태블릿PC는 ‘전자유도방식’ 터치스크린을 사용한다. 이와 달리 국산 제품은 감압식이나 초음파 유도방식을 쓴다. 교과부는 지난 8월 삼성전자·LG전자·삼보컴퓨터 등에 ‘국산 단말기를 개발해달라’고 공식 요청했지만 대기업은 ‘최소한의 시장 규모가 10만대’라며 난색을 표명했다. 삼보컴퓨터가 유일하게 대만 디자인과 국산 특허 기술을 도입한 감압식 디지털교과서용 태블릿PC를 90만원대에 개발했지만 입찰에서 탈락했다.
삼보컴퓨터 교육정보화팀 한 관계자는 “자동유도방식 또는 감압식에 대한 어떠한 사전 연구나 기준도 없이 정부가 14명의 현장 교사들이 단말기당 단 10분씩 평가한 결과로 국책 사업을 결정하는 것은 문제”라며 “정부가 연구사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실패를 용인할 수 없다는 명분 아래 HP만을 고집하다보니 국내 기업들은 이 사업에서 아예 손을 떼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전우홍 교과부 교육복지정책과장은 “대기업은 시장이 없다고 외면하고 국산 제품은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난감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유찰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말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