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인류 사회에 지식 문명을 탄생시켰던 ‘인쇄’가 디지털 전자기술과 만나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반도체·LCD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에서 전통적인 양산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히는 데다 차세대 태양전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웨어러블 컴퓨터 등 인간 세상을 다시 한번 바꿔 놓을 미래 제품의 핵심 요소 기술로 부각된다. 오는 18일부터 이틀간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열리는 ‘국제 플렉시블&인쇄전자 워크숍 2009’ 행사는 국내외 업계·학계의 저명 석학들이 대거 참석해 인쇄전자 기술의 현주소와 향후 기술 흐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쇄전자란 무엇=기판에 전자회로를 구성할 때 통상 구리 도금을 한 뒤 화학적인 방법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거나 원하는 구리 배선을 부착시키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반도체칩용 실리콘 웨이퍼나 필름을 기판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원리다.
그러나 인쇄전자 기술은 종이를 프린트하듯 회로를 찍어낸다. 일반 잉크가 아닌 전도성(전기를 전달하는 성질) 특수 잉크를 사용한다는 점만 다를 뿐 원하는 그림을 특정 대상에 인쇄하는 기본 원리는 같다. 노광·식각 등 전통적인 핵심 공정을 간단한 인쇄 공정으로 대체함으로써 전자회로의 생산 원가는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별도의 화학 공정이 필요 없어 친환경적인 것은 물론이다.
◇왜 인쇄전자인가=전북대학교 화학공학부 이수형 교수는 “LCD용 컬러 필터만 해도 8∼10단계 제조 공정이 소요되지만 인쇄전자로 바꾸면 1∼2단계로 줄어든다”며 “전자인쇄는 무엇보다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휘어지는 필름과 같은 유연한 재료와 함께 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인쇄전자가 각광받는 데는 양산 기술로 탁월하다는 점외에 무궁무진한 활용 분야를 지니고 있다는 점도 꼽힌다. 당장 인쇄회로기판(PCB), 전자태그(RFID) 안테나, LCD용 반사 필름에는 양산 적용할 수 있는 기술 수준에 왔고, 태양전지·반도체·디스플레이 등에 폭넓게 응용할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발빠른 기술 개발=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인쇄전자 산업 규모는 올해 약 4조원에서 오는 2013년이면 약 40조원으로 10배 이상 성장할 전망된다.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 국내외 기업들이 최근 서둘러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유다. 제록스는 지난달 26일 독일의 ‘유럽인쇄전자전’에서 전자회로를 옷감·전자종이 등 어디든 새길 수 있는 새로운 인쇄전자 기술을 발표했다. 듀폰·소니·필립스·GE 등은 자체 생산 공정에 인쇄전자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우리나라도 근래 삼성·LG 등 대기업들과 전문 장비 업체들을 중심으로 양산 기술력 확보에 매진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인쇄전자의 미래 성장성에 주목하고 전북 전주시에 전자부품연구원 나노기술집적센터를 개설하는 등 범국가 차원에서 서서히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신진국 나노기술직접센터 본부장은 “인쇄전자는 오는 2028년께 단일 기술로만 300조원이 넘는 거대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며 “원천기술을 서둘러 확보해야만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들과의 격차를 좁히고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