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방한한 앨빈 토플러는 “한국은 내가 제3의 물결에서 예상한 단계를 뛰어넘어 이미 다음 단계로 가고 있는 사회”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바로 정보산업, 전자상거래라는 말을 언급하면서다. 하지만 이미 현대인들에게 온라인 전자상거래는 철 지난 단어다. 특히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은 ‘레드오션’이라고 불릴 정도로 포화상태다. 그만큼 대다수 소비자는 옥션과 지마켓, 11번가로 대표되는 각종 오픈마켓과 온라인몰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모바일을 활용하는 M커머스, IPTV를 통해 물건을 구매하는 t커머스 단계에 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자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전자상거래 2.0’으로 진화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는 자리가 열렸다.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회장 정태명 성균관대 교수)은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삼정호텔에서 ‘전자상거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주제로 10월 정기모임을 가졌다. 박주석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교수가 기조연설자로 나섰고 김윤태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사무국장, 서민석 이베이옥션 커뮤니케이션 총괄이사, 박선균 SK텔레콤 11번가 CR전략실장(본부장)이 패널로 참여했다.
박주석 교수는 “전자상거래를 기술적인 관점에서 되돌아보면 개인화(Personalization), 융합화(Convergence), 임베디드화(Embedded)가 이뤄졌다”며 “이제는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발전 방향을 모색해 봐야 할 때”라고 화두를 던졌다.
김진형 KAIST 전산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월마트라는 거대 공룡이 나오면서 유통업계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며 “전자상거래도 새로운 유통체계기 때문에 혁신을 줄 수 있을 만한 구조적인 변화를 꾀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전자상거래 영역에서 직접 e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서민석 이베이옥션 이사와 박선균 11번가 본부장에게 업계 현황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의견을 모았다.
이제호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지금까지 전자상거래는 오프라인에서 살 수 있는 상품을 온라인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를 들면 의료나 교육 등 서비스를 사고파는 형식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아마존을 비롯한 세계 인터넷쇼핑 업체가 어떤 추세로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서 이사는 “현재 미국 e커머스의 양대 산맥은 이베이와 아마존이며 그 기업의 가치를 잘 반영하는 주가 추이를 볼 때 최근 이 업체들은 종·횡보를 겪고 있는 정체된 상태”라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빨리 찾는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유태열 KT 경제경영연구소장은 “B2B 시장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B2B 시장은 처음 예측과는 다르게 회사 간 구조개선이나 원가 절감을 위해 활용됐다”며 “발전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대금 결제나 보증, 세금 등 여러가지 유통 거래상 법 규정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카테고리 킬러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스몰 B2B 형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 이사는 “이베이의 경우 전 세계 39개국과 연결되어 있는 훌륭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기술은 있지만 사업활로를 찾지 못하는 업자들에게 주요한 수출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m커머스가 차세대 전자상거래 모델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서 이사는 “우리나라에서 휴대폰은 아직까지 쇼핑 수단은 아닌 것 같다”며 “현실적으로는 이동통신사 통화료 문제가, 기술적으로는 큰 데이터 이미지를 모바일이 감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며 우리나라 국민성은 일본처럼 개인적이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때가 안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박 본부장은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긴 힘들지만 SK텔레콤 네이트에서 쇼핑을 하는 엄지족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단말기 규격이 완화되고 요금 문제가 해결되면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원식 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은 “오픈마켓 사업자로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오픈마켓 사업자들의 신뢰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냐”고 질문했다. 이에 서 이사는 “옥션은 판매자를 선별하는 방식에서 ‘채찍과 당근’을 사용한다”며 “트러스트 셀러를 만들어 신뢰지수 테스트를 통과하는 사업자에게 인증을 주고 수수료를 깎아주거나 반품 환불을 무료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11번가는 셀러 인증제를 실시해 기본적인 관리를 한다”며 “반품 무료교환 등 사업자와 고객이 동시에 만족할 수 있고 동시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태명 교수는 마무리 발언으로 “전자상거래 기업들이 사업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는데 좋은 계기가 됐다”며 “전자상거래 2.0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통신회사들의 무선데이터 요금 인하, 공인 인증서 도입 등 제도적인 개선도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제발표-박주석 경희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전자상거래는 인터넷의 보급과 웹 기술의 발전 등에 힘입어 시작됐다. 인터넷은 24시간 휴일 없는 장터로 거리와 시간의 구애 없이 드나들 수 있으며, 사용자 인터페이스도 쉽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는 생활과 근접한 측면에서도 상거래 혁신을 가져다줬다.
초기 전자상거래 시장은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B2C(Business to Consumer) 전자상거래를 통해 인식되기 시작했다. 점차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Business to Business) 거래 비중이 높아졌다. 이렇듯 1990년대 많은 전문가들은 전자상거래가 B2C로 시작하여 B2B로 확대되고 P2P(Peer to Peer)로 발전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또한 정보기술의 발전에 따라 m커머스와 t커머스를 거쳐 u커머스로 발전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러한 예측과 함께 ‘전자상거래(EC)’라는 용어보다는 ‘e비즈니스(eBusiness)’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게 됐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전자상거래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리라 예상했던 B2B의 부진과 P2P의 급성장으로 나뉘어졌다. P2P의 경우 사용자는 많으나 규모 면에서는 B2C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의 전자상거래 대세는 오픈마켓으로 옮겨간 것이다. 정보기술의 발전과 달리 m커머스나 t커머스는 아직도 대중화되어 있지 못하고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에서 이용하는 전자상거래를 의미하는 u커머스는 요원한 상황이다.
특히 t커머스는 이론적으로 많이 거론돼 왔지만 m커머스보다는 오히려 쓰임새가 적다. 그러나 최근 고무적인 것은 IPTV 채널이 많아지면서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다시 발전할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기업 관점에서도 예전에 온라인 엔터프라이즈, 버추얼 엔터프라이즈 등이 태동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생겨나지도 않았다. 특히 버추얼 기업의 경우 기업의 꽃이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버추얼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2000년대에 되돌아본 전자상거래는 벤처 비즈니스 관점 전자상거래에서 대기업 비즈니스 관점의 전자상거래로 변화했다. 이미 많은 대기업의 주도로 전자상거래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2000년대 인터넷은 1990년대 인터넷과 분명히 구별된다. ‘웹 1.0’과 ‘웹 2.0’으로 구분하듯이, ‘전자상거래 1.0’과 ‘전자상거래 2.0’을 구분할 수 있는 전자상거래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과연 있는가하는 화두를 던지고 싶다.
◇패널발표-서민석 이베이옥션 커뮤니케이션 총괄 이사
현재 시장점유율 기준 옥션·지마켓·인터파크·11번가 등이 10조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전체 e커머스 시장의 55%에 육박하는 수치다. 옥션과 지마켓만 따로 두고 봐도 6조8000억원으로 전체 유통 시장에서 4위다. 현재 시장은 전통마트, 백화점 등으로 대변되는 대면거래와 오픈마켓, 온라인쇼핑, 홈쇼핑 등 비대면 거래로 나눌 수 있다.
발전을 하려면 반성이 수반돼야 한다. 오픈마켓은 신뢰가 주요변수다.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법 개정 움직임이 있지만 이는 오픈마켓 사업 모델 전반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면 쉽게 언급할 수 없다.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까지 판매자를 확인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책임을 지게 하려면 입점을 제한해야 하는데 그럼 기존 쇼핑몰과 오픈마켓이 차이가 없어진다. 소비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다.
향후 오픈마켓은 독일의 철학자 헤겔의 정반합 이론처럼 진화할 것이다. 우선 오픈마켓+쇼핑몰 형태로 1차 발전을 했다(정). 그리고 이 형태가 포털(반)을 만나 쇼핑포털 형태(합)로 2차 발전이 예상된다. 쇼핑몰이 포털화될 지 포털이 쇼핑기능을 가질 지 아직 가늠할 순 없다.
전자상거래 1.0은 매시업 형태였다. 오픈 API 기반으로 옥션 내에서 개별 쇼핑몰의 결제가 가능했던 상황이다. 향후에는 압도적인 트래픽을 바탕으로 포털과 오픈마켓이 상호시너지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리라 예상한다.
◇패널발표-박선균 SK텔레콤 11번가 CR전략실장
SK텔레콤 11번가는 후발 주자로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 뛰어들었다. 후발 업체기 때문에 기존 패러다임에 머무르기보다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현재까지 기술적인 비즈니스 형태로 진화했다면 앞으로는 보다 화학적인 컨버전스가 일어날 것이다.
컨버전스라는 부문은 실제로 SK텔레콤이 3년 전 온라인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부터 기획한 것이다. SK텔레콤은 네이트, 결제부문, IPTV 등 디바이스 통신 사업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이를 결합해 고객이나 사업자에게 이익을 안겨줄 수 있다.
SK텔레콤 입장에서 보면 오픈마켓인 11번가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다. 디바이스 관점, 웹 2.0 통신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서 여러가지 포맷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생활의 변화가 주는 유통이나 구매 패턴 등이 많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향후 쇼핑은 온라인 상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이통사나 단말기 제조사는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이제 휴대폰이 메인 기능이 된다. 단말기 규격이 풀어지면 단말기 자체가 더 커지고, 이는 m커머스를 보편화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 마트에 가서 휴대폰으로 가격비교를 하며 주문을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의미다.
과거 전자상거래는 각 업체마다 사업 볼륨 확장이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과연 현재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몇 조를 차지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무슨 혜택을 주는지 의문이다. 이제는 업체가 고객 마인드로 전환해야 한다. 온라인 쇼핑을 즐기는 고객들은 자신이 물건을 사는 곳이 온라인몰인지 오프마켓인지 중요하지 않다. 여러 패러다임이 섞여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구분은 의미가 없다.
기존의 온라인 쇼핑몰이나 오픈마켓은 고객에게 신뢰를 못 주고 있었다. 백화점이나 홈쇼핑은 믿을 수 있는 대기업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전자상거래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고객에게 신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장 형태다.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은 고객의 신뢰와 요구가 된다.
◇패널발표-김윤태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사무국장
온라인 쇼핑은 TV 홈쇼핑, 오픈마켓, 모바일커머스, t커머스 등을 합친 개념이다. 인터넷쇼핑과 온라인쇼핑은 다르다. 온라인쇼핑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법적인 용어는 통신판매다. 1996년 9월 인터파크가 처음 전자상거래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업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현재 서울시 전자상거래 센터에서 확인된 업체만 2만개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통신판매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다. 우리나라 소매시장 규모가 203조원이 넘는다. 그 중 통신판매업은 9.5%인 약 23조원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일본의 경우 온라인 시장이 소매시장(135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5.5%다. 일본은 정체된 소매시장이다. 중국은 1.3% 정도다.
TV홈쇼핑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잘 발달했지만 카탈로그 쇼핑은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
일본은 m커머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일본은 3770억엔 시장이지만 우리나라는 이통사에서 시장 형성을 못하고 있어 겨우 600억원 정도다. 솔루션이나 모바일 기기 등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오픈마켓 성장세가 무섭다. 처음 2003년에 시작했지만 최근 20% 내외 성장을 하고 있다. 앞으로는 온라인몰과 오픈마켓이 비슷한 성장을 할 것으로 추측된다. 향후 t커머스 성장도 일어날 것이다. 이미 4억∼5억 매출을 올리는 회사도 나오고 있다. e커머스가 처음 나왔을 때 이렇게 성장할 줄 예측 못했던 것처럼 t커머스도 많은 솔루션과 반복 학습 효과가 나타난다면 극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미 전자상거래 소비시장은 백화점을 뛰어넘었다. 2015년이 되면 대형마트를 뛰어넘어 44조원 시장을 형성, 가장 큰 소비시장이 된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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