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성장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금융에도 녹색바람이 거세다.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녹색산업의 성공여부가 녹색금융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녹색산업은 초기 자금이 많이 소요되나 투자에 따른 불확실성이 크고 자금회수 기간이 길어 초기에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원활한 자금 공급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에서도 이 같은 점을 감안, 지난 7월 ‘녹색투자 촉진을 위한 자금유입 원활화 방안’을 마련했다. 지난달 ‘녹색인증제’ 도입을 골자로 한 실행 계획까지 발표했다. 활성화 방안의 골자는 산업육성을 위해 정부가 주춧돌을 놓는 동시에 민간투자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발전단계별 자금유입 계획을 세웠다.
먼저 연구개발(R&D) 단계에서는 재정지원을 확대하면서 시장성 확보와 상용화 가능성 제고를 위해 민간자본 참여를 확대하는 방식을 도입한다. 이를 위해 녹색기술 R&D 재정 규모를 올해 2조원에서 2013년까지 2조8000억원으로 확대하고, 어려운 R&D 성공 시 사후 보상도 하기로 했다. 또 기술개발과 상업화 연계를 위해 산업은행 중심의 30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 및 사업화지원(R&BD) 매칭펀드’도 조성한다.
중소기업 녹색 R&D사업에 민간자금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투자연계형 R&D와 구매조건부 R&D에 재정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상용화 단계의 전략이다. 녹색 산업에 가장 크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녹색 금융 활성화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우선 모태펀드를 활용해 ‘녹색중소기업 전용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창업 녹색 중소기업에 대한 안정적인 자금 공급을 위해 모태펀드출자를 대폭 확대해 2013년까지 1조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 특히 투자위험을 줄여 민간 벤처자금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녹색중소기업 전용펀드’에 대한 모태펀드의 출자비율을 현행 30%에서 50%로 확대하는 방안도 진행한다.
녹색기업과 녹색프로젝트의 신용보증도 확대한다.
보증지원 규모를 올해 2조8000억원에서 2013년까지 7조원으로 확대한다. 녹색 창업기업 발굴·육성을 위해 창업 초기준비부터 초기단계까지 3억∼5억원 한도로 3년에 걸쳐 맞춤형 보증도 지원한다.
녹색 중소기업에 대한 창업자금 등 정책자금 융자규모도 올해 1300억원에서 2013년까지 6600억원으로 대폭 확대한다. 금리우대와 지원한도 확대, 업종별 부채비율 제한 적용을 배제하는 등 지원조건도 개선하기로 했다.
성장 단계에는 자본시장을 활용한 장기자금 조달 메커니즘을 구축할 계획이다. 필요 시 금융공기업 출자와 신용보강, 세제지원 등을 통해 투자위험 경감을 위한 유인책도 마련된다. 또 성숙 단계에는 민간의 자발적 녹색금융을 중심으로 하고, 정부는 녹색금융 활성화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만 주력한다.
이 같은 정부와 정책과 관련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는 다섯 가지 ‘녹색금융 성공을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녹색성장기업의 자금지원 전담기관 신설 △금융기관 세제지원 강화 △녹색기술 및 산업의 투자 단계 중 R&D 단계에 자금 집중 지원 △녹색인증제 조속 시행 △녹색성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이다.
상의 관계자는 “녹색금융은 친환경산업의 견인차 역할뿐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며 “녹색금융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민간의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산업 육성에는 다양한 금융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 그중에서도 벤처펀드 등 초기단계 기업육성에 필요한 자금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물론 다양한 벤처펀드가 신성장·신재생에너지 등 녹색산업에 투자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녹색산업에 일정 수준 투자를 집행하는 전문펀드는 드물다.
현재 국내 벤처펀드에는 7개 정도의 녹색펀드가 있다. 결성 총액은 600억원이 조금 넘는다. 결성되기 시작한 시점도 채 2년이 넘지 않았다.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연말까지 총 600억원 규모의 새로운 펀드 3개가 추가 결성될 전망이다. 특히 지난달에는 녹색인증제 도입 등 투자 활성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 마련 계획도 발표됐다. 좀 더 많은 펀드 결성이 기대된다.
가장 먼저 결성된 녹색 투자펀드는 2007년 12월 결성된 미래에셋벤처투자의 ‘그린에너지투자조합’이다. 200억원 규모로 김남기 대표펀드매니저가 운용한다. 지난해는 본격적인 조합 결성이 시작됐다. 2008년 7월 맥스창업투자가 100억원 규모 ‘신재생에너지 전문 1호’ 펀드를 결성했고 지식과창조벤처투자가 ‘신재생에너지전문투자조합 1, 2, 3호’를 결성했다.
올해는 전문 녹색창투사를 표방한 삼호그린인베스트먼트가 활발한 펀드 결성에 나섰다.
이 회사는 올해 초 76억원 규모의 ‘전남그린에너지펀드’와 150억원 규모의 ‘삼호그린녹색성장투자조합’을 연이어 결성했다. 오는 12월 말까지 결성총액 600억원에 달하는 3개의 전문 펀드가 추가로 결성될 전망이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에 따르면 현재 결성이 진행 중인 9개의 신성장동력펀드 중 3개 정도가 녹색펀드를 표방하고 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인터뷰-김형기 한국벤처투자 사장
“전 세계가 ‘그린 레이스(race)’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쟁은 올림픽 경기가 아닌 검투사 경기입니다.”
한국벤처투자 김형기 사장은 녹색산업을 메달 색깔을 가리는 올림픽 레이스가 아닌 생사를 건 결투라고 표현했다.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안 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경쟁이라는 의미다. 그만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동안의 산업발전이 곧 환경에 역행하는 일이었지만, 녹색산업은 환경과 함께 가는 산업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녹색산업 자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끄는 산업이라는 설명이다.
“녹색산업은 쉽게 창업할 수도 없고 단위당 투자 규모는 크지만, 투자 회수도 IT산업 등과 비교해서는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수익 등 외부효과는 그 어떤 산업보다 큽니다.”
이 때문에 금융도 기존 산업과 다른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부 차원의 금융은 한계가 있습니다. 건전한 생태계와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민간자금 유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김 사장은 정부자금은 펌프에서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붓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모태펀드를 운용하는 한국벤처투자의 사장으로서가 아니라 수십년간 금융 산업에 몸담아 온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그는 현재 정부가 많은 역할을 하는 보증과 융자 부분에서의 국내 녹색 금융 현황은 괜찮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전의 벤처투자에서 경험했듯이 정부 차원의 금융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녹색 산업의 특성상 민간에만 맡겨 놓을 수도 없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정부의 자금은 마중물 역할을 하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형기 사장은 “현재 금융위기는 잘 극복해 가는 과정이지만 IT산업으로 IMF를 극복했던 것처럼 녹색산업으로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다”며 “녹색산업의 바탕에는 반드시 민관의 역할이 적절히 조화된 녹색금융이 있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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