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소기업 정보화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중소기업들의 정보화 경쟁력은 매년 추락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 내년 중소기업 정보화 지원 예산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중소기업들의 정보화 투자도 덩달아 수직 감소할 조짐이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정보화를 통해 생산과 경영 혁신을 단행하지만 IT강국 한국만 ‘역주행’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정보화 정책의 실종은 머지 않아 ‘글로벌 경쟁력 약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해외 바이어들은 생산에서 유통까지 실시간 정보시스템으로 관리하는지 꼼꼼히 따지기 시작했다. 거꾸로 가는 한국 중소기업 정보화 사업의 문제점과 대안, 모범사례 등을 매주 월요일 5회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머지않아 정책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지난 5월 중소기업청에 중소기업 정보화 지원 사업을 담당했던 경영공정혁신과가 없어지면서 업계 관계자들이 쏟아낸 말이다. 업무분장이 철두철미한 정부 조직의 속성을 감안한 진단이었다.
5개월이 지난 뒤 이 같은 전망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내년도 중기 정보화 지원 사업 예산이 올해보다 무려 6.4%나 깎여 사상 최저치가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예산 감축으로 중기 경쟁력이 급격히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에도 올해보다 10억여원 깎아 163억원의 예산안을 확정했다.
2002년 이 사업이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규모다. 2005년 339억원과 비교하면 5년 만에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중기청의 전담조직이 사라지면서 예산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려는 동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다. 이는 중기청 내년 R&D 예산의 경우 중기청내 기술정책과·기술개발과 등이 건재하면서 오히려 13%나 늘어난 것이 입증한다. 중기청 내년 R&D 예산안은 5846억원으로 올해보다 688억원이나 늘어났다.
익명을 요구한 중소 제조업체 한 임원은 “R&D 예산 증액분이 중기 정보화 지원 사업 한해 예산보다 무려 4배나 많다는 것은 정부의 중기 정보화 홀대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중소기업 정보화 ‘낙제점’=정부의 무관심은 결국 기업들의 저조한 정보화 실적으로 직결되고 있다. 지난해 중기청 정보화 수준 평가에서 중소기업 정보화 수준은 53.60점으로 한마디로 낙제점이었다. 대기업 대비 76% 수준에 불과해 정보화 격차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경영 경쟁력이 그만큼 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소기업의 매출 대비 정보화투자율도 지난 2006년 1.27%에서 2007년 1%, 2008년 0.38%로 계속 감소했다. 특히 경기침체가 시작된 지난해에는 전년대비 절반 이상 급락했다. 불황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화 예산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뚜렷한 셈이다.
문제는 아직 정보화를 아예 도입하지 않은 기업이 도입한 기업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에 따르면 현재 중소기업 가운데 정보화 관련 인력을 보유한 곳은 35.3%에 불과하다. 아직 65% 가량이 정보화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정보화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정보화 인력을 보유했더라도 그 수가 극히 적어 질적으로 보잘 것 없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실제 정보화 인력을 보유한 중소기업들의 평균 보유인력은 0.63명으로 1명도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 다른 일을 겸직하거나 1∼2명의 적은 인력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선 기업 정보화에 사활=한국 정부가 중기 정보화 지원 사업을 홀대하는 동안 일본·미국·유럽 등에서는 범국가 차원의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무한경쟁과 경제위기 속에서 중소기업의 생존전략으로 ‘디지털 혁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올해 ‘정보통신기술(ICT) 성장력 강화 계획’을 마련하고, ICT 활용을 통한 기존산업과 중소기업의 경영능력 향상을 적극 추진 중이다. 특히 △중소기업 IT경영혁신지원사업 △중소기업 경영혁신 플랫폼시스템 개발사업 △중소기업 기반기술 계승지원사업 △전략적 CIO 육성지원사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보조금, 세제혜택 등 입체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가 ‘중기 정보화 지원 사업’ 단 하나의 프로그램만 운영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과제당 예산 규모도 올해 새로 신설된 ‘IT경영실천 촉진사업’이 우리나라 중기 정보화 지원사업과 맞먹는 100억여원에 달한다.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2004년부터 ‘이노베이트 아메리카(Innovate America)’라는 정책을 수립해 IT를 활용한 중소 제조와 서비스의 연계 등을 국가혁신전략을 추진 중이다. EU는 2005년 ‘i2010전략’에 IT 활용 제조혁신을 위한 ‘매뉴퓨처(Manufacturing+Future)’를 핵심과제로 내세워 중소업체의 성장과 고용창출을 꾀하고 있다.
특히 EU는 지난 20여년간 유럽의 성장률이 미국에 뒤진 배경이 기업의 IT 활용률이 뒤졌기 때문이라는 최근 유럽정책센터의 분석이 나오자 더욱 공세적으로 돌아선 상태다.
◇중기 정보화, 투자효과 무궁무진=세계 각국이 이처럼 중기 정보화에 사활을 거는 것은 투자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실제 중기청이 지난해 말 정보화기반구축 수행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보화지원시스템 구축 이후 매출이 증가한 기업은 70%에 달했다. 또 원가절감(74%), 품질향상(78%), 납기단축(70%) 등 경영성과가 탁월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중기 정보화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으면 5000만원 정도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5000만원을 투자해 매출, 원가절감, 품질향상, 납기단축 등의 여러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인 셈이다.
차석근 생산정보화협의회장은 “중기 정보화 사업은 IT를 활용한 중소기업 지원정책으로는 유일하면서도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사업”이라며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에는 R&D 등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정보화처럼 직접적인 투자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보화기반구축 지원 혜택을 받은 유아용 기저귀 생산업체 대동의 문경섭 대표는 “중소기업정보화 지원 사업을 한번 접하면 정보화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며 “이 사업은 경영진에게 혁신 동기를 불러 일으키는만큼 정부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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