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IFRS) 의무 도입 시기가 15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의무 적용 후 전년도 결산을 IFRS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1년도 채 남지 않은 셈이다. 그만큼 IFRS 대응은 모든 금융사와 상장사에게 있어 시급한 과제다. 국내 기업의 회계 수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려 회계 투명성을 높이고자 도입되는 IFRS. 그러나 많은 기업에게 여전히 부담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의무 적용 대상 기업 중 절반 이상이 IFRS 도입을 위한 준비조차 못하고 있다. 또 IFRS 도입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기업이라고 해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현 주소다. 자칫 국제적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을 현 상황의 원인은 무엇인가,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07년 3월 발표한 IFRS 도입 로드맵에 따라 오는 2011년부터 IFRS 의무 적용 기준을 담고 있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곧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당초 중소 상장사의 IFRS 도입에 대한 준비 부족으로 인해 의무적용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정부는 예정대로 의무 적용 기준안을 확정지을 방침이다. 따라서 1∼3년 정도 적용을 유예받을 예정인 수출입은행, 농협, 수협 등을 제외하고는 모든 금융사와 상장사는 오는 2011년부터 IFRS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중소 상장사 대부분이 IFRS 도입은 부담=현재 STX팬오션, KT&G 등 14개 기업은 IFRS를 조기 도입한 상태다. 내년에는 한전그룹 계열사, 삼성전자, 삼성SDI, LG전자, LG화학 등 27개사가 IFRS를 도입하게 된다. 은행들도 대형 보험사, 증권사를 중심으로 IFRS 도입이 이뤄진다. 그러나 이처럼 IFRS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은 대형 기업에 한정돼 있다.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현재 IFRS 도입을 준비 중인 상장사는 전체 중 44.7%에 불과하다. 특히 자산규모가 1000억원 미만 기업의 경우 31.4%만이 IFRS 도입을 추진하고 있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더욱이 31.4%도 외부 컨설팅을 통해 준비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사례가 많아 향후 준비 소홀이 우려되고 있다.
이처럼 중소 상장사들이 IFRS 도입을 주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비용과 인력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중소 상장사들의 회계인력은 매우 적다. 게다가 회계시스템을 수정 보완해야 하는 IFRS 적용의 경우 이를 수행할 내부 인력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들 기업에게 있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외부 컨설팅을 받거나 IT시스템 구축 사업을 발주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중소 상장사 대표는 “기존에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회계업무를 처리하는데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제도인 IFRS를 적용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소 상장사 대표는 “기존에 회계시스템 자체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입해 IFRS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역시 엄두도 못 낼 일”이라고 토로했다.
중소 상장사들의 IFRS 도입이 늦은 이유 중 하나는 준비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다. 중소 상장사의 경우 IFRS 도입을 준비하는 기간이 통상적으로 3∼6개월 정도면 충분하기 때문에 내년부터 추진해도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내 처음으로 도입되는 제도이기 때문에 금융감독 당국은 완전성 검증을 위해 조기 도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IFRS 도입을 단순한 규제로 여기지 말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김영효 삼정KPMG어드바이저리 대표는 “IFRS를 적용하게 되면 기업 재평가 차액이 자본 잉여금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기업의 재무개선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IFRS 적용을 할까 말까에 대한 고민보다는 적용 후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한다”고 제언했다.
◇앞서 IFRS 준비한 금융사, 문제점 많아=현재 IFRS 도입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기업들도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국내서는 물론, 호주를 제외한 아태지역 첫번째 도입이어서 시행착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가장 앞서 추진한 은행권서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IFRS와 한국형회계기준(K-GAAP)에 대한 차이 분석을 통해 IFRS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이미 상당부분 진행돼 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실제 가동에 있어 많은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시스템 구축에 앞서 진행한 컨설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대로 요건분석이 이뤄지지 않아 시스템 구축 시 반영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스템 구축 시 다시 분석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만큼 시간도 상당 부분 소비하게 됐다. 적용 시점을 갖고 있는 IFRS 프로젝트의 특성상 시간 부족은 치명적이다. 결국 우선 시스템 구축을 완료한 후 수정하는 형태로 추진하고 있다.
시스템 구축 상황에서도 비금융상품에 대한 IFRS 적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IFRS 적용 후 프로세스 변화에 대해서도 준비가 소홀한 상황이다. 정윤호 SK C&C 금융사업부장은 “IFRS 프로젝트 과정에서 새 회계기준에 맞는 회계처리 프로세스나 방법론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러다 보니 최초 적용을 위한 계정처리 및 본결산 방안, 환원계정처리, IFRS 기반의 가결산을 위한 상세한 이행전략이 수립되지 않아 혼란이 초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외에도 새로 산출되는 계정과목의 수치에 대한 검증 절차, IFRS 프로젝트 투입 인력 등에 있어서도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보험업계는 보험업법개정 등 급변하는 환경변화가 IFRS 프로세스나 시스템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방안 마련에도 고심하고 있다. 또 일부 기준안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보험사들은 상당 부분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조영천 코오롱베니트 대표는 “성공적인 IFRS 도입을 위해서는 IFRS 프로젝트는 특정 부서인 회계, IT영역만의 프로젝트가 아닌 전사 프로젝트로 여기고 추진해야 한다”면서 “이와 함께 가능한 조기 착수를 통한 시행착오에 대비해야 하고 안정화를 위한 상당 부분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전력그룹 추진 현황
한전그룹은 공기업 중 가장 앞서 국제회계기준(IFRS) 대응 IT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지난 2007년 9월 IFRS 대응 컨설팅이 착수된 것을 감안하면 은행권과 비교해도 상당히 일찍 준비에 나선 셈이다. 그런만큼 한전그룹 IFRS 대응 프로젝트는 비금융권 기업에게는 앞선 사례로 의미가 있다.
한전그룹은 지난 2007년 IFRS와 기존의 한국형회계기준(K-GAAP)의 차이분석을 통해 IFRS 도입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이후 상각방법, 자산단위별 내용연수 등 유형자산 관련 이슈를 검토하고 40개의 상세분석 항목을 도출했다. 또 연결결산시스템 기능 개선과 주석 등 연결정보 집계 프로세스 개선 및 리포트를 개발했다. 이러한 과정을 기반으로 한전그룹은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회계정책을 수립하고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IFRS재무시스템 구축에 착수했다.
이번 IFRS 시스템 구축은 우선적으로 전사적자원관리(ERP)시스템이 구축돼 있는 한국전력공사(KEPCO)를 비롯해 동서발전, 한국수력원자력, 한전KDN, 한전KPS, 한전연료 등 7개사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통합 ERP 구축 사업이 진행 중인 남동발전, 서부발전, 남부발전, 한국전력기술 등 4개사는 ERP 프로젝트와 병행해 IFRS시스템 구축이 추진된다. IFRS 시스템 구축은 11개 계열사 모두 올해 말 완료 예정이다.
한전그룹의 IFRS 프로젝트 특징은 회계부문과 시스템부문과의 지속적이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한국전력그룹 공통항목을 도출하고 일괄 분석을 실시하고 있다. 이를 자회사에 전파하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와 별도로 자회사들은 각 개별항목을 도출하고 별도 분석을 진행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을 KEPCO가 총괄집계 및 검토 한다.
김용팔 KEPCO 전력IT추진처장은 “한전그룹이 IFRS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하게 되면 글로벌 회계기준 단일화 추세에 적극 대응이 가능하고 회계정보 투명성 및 신뢰도 제고, 회계장부 이중작성 부담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KEPCO의 기업가치는 극대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혜권기자 hk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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