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기술 발달로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많은 것들이 오늘의 일상이 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개인이나 사회 모두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새로운 문제를 던지고 있다. 그중 개인정보 문제는 디지털 시대의 명암을 가를 중대한 과제이다.
개인정보의 수집과 축적, 가공이 용이해지고, 정보의 가치와 이용범위가 확대됨에 따라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침해 사례도 늘고 있다. 개인정보는 일단 유출되면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며 이에 대한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한 속성이 있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계속 유포되며 2차, 3차 피해를 지속적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정보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피해를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용자를 포함한 사업자, 정책당국 모두의 개인정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합리적인 이용방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개인정보는 넓은 의미의 프라이버시 개념에 포함된다. 1890년 워랜과 브랜다이스 는 프라이버시권을 ”진보된 문명세계에서 살고 있는 개인에게 필수적인 것”이라고 정의 하여, 프라이버시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위한 기본조건임을 명시 하였다. 1960년대 이후에는 정보 프라이버시개념이 등장하면서 개인정보의 자기통제권이 중요하게 조명되었다. 즉 개인의 안녕과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정보의 수집•이용•제공 등을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개인의 필수 조건”이며 호주 프라이버시 헌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초적인 인권인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합리적인 기대” 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개인정보는 개인의 자산인 동시에 권리이다. 이것을 보호 할 일차적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 디지털사회에서 개인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살아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개인정보 요구가 과도한 것은 아닌지, 용도와 제공범위는 적정한지에 대해 따져보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이용자들의 개인정보에 대한 이같은 태도와 행동의 변화가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사업자의 행태는 물론 제도 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하여 이용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객정보의 집적과 관리는 그 자체가 기업의 이미지이고 경쟁력인 시대가 됐다. 따라서 기업에서는 개인정보 관리를 비용이 아닌 투자의 개념으로 전환하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필요하다. 개인정보 오남용 및 유출 방지를 위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데이터베이스로 관리되는 고객정보의 안전을 위해 정보를 암호화하고 해킹 등 외부침입 차단을 위한 방안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하여 개인과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 발전의 속도를 감안하면 조직화 되어있지 않은 개인이 개인정보에 대한 완전한 자기 통제권을 갖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추구이다. 이윤추구의 요구와 개인정보보호의 요구가 충돌할 경우 기업의 우선순위는 이윤추구가 될 것이란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서도 개인정보에 대한 정책적 보호가 필요한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출범 후 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고 개인정보 오남용 행위에 엄격하게 대응하는 한편 제도개선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개인정보를 오남용한 사업자에 대해 적극적인 행정처분을 내린 이후로 개인정보에 대한 개인과 기업의 인식 변화가 관찰된다.
이러한 변화를 사회전체로 더욱 확산시키고 개인정보보호의 예방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개인정보 관리에 대한 “사전인증제도”를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를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업자와 미진한 사업자를 국민들이 쉽게 구별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개인정보의 제공을 차단하고 유•노출 사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이 진화함에 따라 현행 법적 보호대상인 ‘개인정보’ 개념의 확장도 검토해 볼 만하다. 예를 들면, 미국의 일부 주(州)는 개인정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하거나 본인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용될 경우 정보주체 (혹은 당사자)의 안녕과 이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인과 관련된 모든 정보" 로 폭넓게 해석하고 있는데 참고할 가치가 있다.
대한민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신강국이다. 정보통신 인프라가 세계최고 수준이고, 이용자들의 이용능력이나 신기술에 대한 적응력 또한 세계 최고수준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정보통신강국으로 자처하기에 ‘2%부족하다’. 그 ‘2%’를 채우는 일이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보호에 관한 변화된 의식과, 의지, 그리고 제도의 보완일 것이다.
이경자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kaylee@kc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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