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머나먼 국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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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나는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의 부의장 경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제기구에 참여해 우리나라의 의견을 개진하고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능력이 닿는 한 누구나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정교수가 된 이후에 이러한 원칙에 따라 장기간 국제 업무에 봉사해 왔다. 마침 지난해에 국제기구의 작업반 의장단 출마를 요청받아 경선에 따라 선출된 바가 있다. 임기가 1년으로 매년 경선을 하지만 중임이 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두 번의 회의 및 전화 회의 등을 통해 이미 사무국과 여러 가지 문제를 놓고 토의 및 의제 결정을 수행한 바가 있다. 사무국에서는 많지 않은 동양의 부의장으로서 나에게 거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도 사임을 결정하게 된 데에는 국제기구를 관장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업무처리에 대한 불만에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국제기구 업무는 기본적으로 2∼3년 후를 내다보고 장기적인 진행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떠한 과제를 제안하게 되면 회의에서는 의제로 채택이 돼 발표가 이루어져야 한다. 올해 제안된 사항은 내년 상반기의 회의에서 검토·결정되고, 예산이 반영되는 2011년에나 신규 과제로서 착수가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 실정은 공무원의 순환 보직 제도에 따라 성과를 얻고자하는 조급함과 감투 위주의 행정으로 성과를 의장단의 수효, 과제 채택 등과 같이 가시적인 효과만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8월 초에 열린 정부의 대책회의에서는 관련 기관의 연구원들이 아이디어를 모아 가능한 과제를 제시했으나 사무관이 각 과제를 놓고 언급하며 기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회의는 제시된 과제 다수가 채택되지 못했으며 재검토해 다시 제출하라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러한 행태는 담당자가 국내 실정을 기반으로 국제기구와 무관하게 정하는 것이므로 회의에 참석한 인사들의 활동을 기대할 수가 없어 나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과제 도출을 위한 예산이 국책기관에 지원되지 않은 현실에서는 획기적인 과제 도출이 어렵다. 또 가을 회의의 의제에 대한 전화 회의가 한 달 후에 예정돼 있으므로 예산이 없이도 발표가 가능한 7·7 DDoS 공격에 대한 사항을 정리해 발표하면 국제적으로 관심이 있는 주제가 될 수 있다. 각 나라의 자료를 모은 백서 발간을 제안하는 것은 향후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제시해 검토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담당기관에 연락한 결과 자신들은 회의 후 곧바로 보충자료를 보냈으며 검토 후 연락을 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의제 초안이 15∼20분 간격으로 준비된 전화 회의가 예정된 상태에서 회의 이전에 타국 대표단의 검토 의견을 들어야 하는 내 재촉에 e메일도 보내지 말고 훈령을 기다리라는 답변만이 계속될 뿐이었다. e메일을 보내도 시간이 부족한 날짜가 돼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가 없게 되자 나는 차기 의장단 불출마와 회의 불참을 통보했다.

 다른 사업에 우선순위가 밀려 국제회의 의제 훈령의 결정이 지연되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참석하는 것은 부의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다음날 발표 허가가 나오고 부의장에 출마하라는 연락이 오는데 지연 사유가 예산 작업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하고 있었다. DDoS 사건은 해당 부처의 주요 사업으로 진행하겠다는 발표가 이미 있은 후인데 훈령을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며, 지연자는 누구인지 하는 질문에 사무관은 주무관, 주무관은 다른 과를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핑퐁식 책임 회피 행태를 보여주었다. 담당자의 성향에 따라 과제를 제안하라, 철회하라는 조령모개식의 행정으로는 국제기구에 참여해 업무를 제대로 추진할 수도 없다. 자신들이 직접 참가할 역량이 부족하다면 해당 부서를 담당하는 실무진을 과감하게 개방직으로 모집해야 한다. 권한을 부여하고 성과에 따라 연임하도록 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장기적인 안목과 비전을 겸비하고 국제화를 수행할 수 있는 젊은 인재에게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해 업무를 맡기는 것이 국익도 얻고 전문화된 공무원도 배출할 수가 있다고 판단된다. 이래야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이야기가 국제기구에서 나오지 않게 될 것이며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권영빈 중앙대학교 교수·대학정보화협의회장/ybkwon@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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