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중 전기자극을 가해 심박동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페이스메이커’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몸에 이식되는 이 기기는 본체의 70% 이상이 배터리로 이루어졌다. 몸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재충전이 불가능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외과수술을 통해 다시 새로운 기기를 이식해야 생명이 유지된다. 사람의 몸에서 전원을 공급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실제 개발돼 주목 받고 있다.
몸을 이용한 전원 공급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곳은 "인체 이식 가능 융합형 나노배터리·생체연료전지 전원시스템 연구단’. 단장을 맡고 있는 경상대학교 나노·신소재공학부장 남태현 교수는 “사람 몸에 이식한 의료기기의 50% 정도가 배터리로 이루어져 환자가 불편한 것은 물론 크기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었다”면서 “융합형 나노 배터리와 생체연료전지 전원시스템을 이용하면 외부에서 전원을 공급받을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크게 전기를 만들어내는 생체연료전지와 생산한 전기를 보관하는 나노 배터리로 구성돼 있다. 배터리는 충전을 위해서 마련된 것이고 생체연료전지는 전기를 발생하는 장치다.
남태현 교수는 “우선 생체연료전지의 경우 특정한 효소를 이용해 혈액 속에 포함되어 있는 포도당을 산화시켜 전기를 뽑아내고 그런 후 생산된 전기를 나노 배터리에 보관해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좀더 쉽게 살펴보면 전기를 얻는 재료는 혈액이다. 우리 몸의 피 속에는 포도당(글루코오스, Glucose)이 녹아있다. 포도당은 세포가 작동할 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데 생체연료전지는 특정 효소를 통해 포도당을 산화시키고 여기서 전기를 얻는 과정을 거친다. 화력발전이 석탄이나 석유를 태워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이 시스템은 포도당을 이용한다.
아무리 포도당으로 전기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고 현재 사용하는 배터리와 비교하면 용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포도당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전압은 이론적으로 0.8V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를 효율적으로 증폭시키고 컨트롤하는 기술과 함께 나노 배터리에 쌓아두는 기술 개발 역시 매우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남태현 교수는 “현재 의학, 전기, 화학, 생명, 기계, 재료, 환경, 화공, IT 등 갖가지 분야 연구진이 활동하고 있으며 오는 2014년까지 시연 제품을 만들어 낼 것”이라면서 “생체연료전지와 나노 배터리, 그리고 이를 컨트롤하는 칩을 모두 합쳐 가로·세로 5mm, 높이 2mm 정도의 크기에 에너지밀도는 400Wh/ℓ, 효소 수명은 10년 이상이 목표”라고 전했다.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나노로봇의 등장을 앞당기는 등 일대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넘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포도당을 산화시켜 고효율 생체연료전지를 만드는데 적합한 효소를 찾아내야 하고 낮은 전압을 증폭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포도당이 항상 일정하게 피에서 공급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건강상 문제가 없도록 이를 제어할 미세유동 기술도 확보해야 한다. 또한 나노 배터리 에너지 밀도를 높이고 무엇보다 사람 몸에 들어가야 하므로 생체적합성 여부도 따져 봐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이 기술은 우리나라만 보유하고 있어 미래 가치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남 교수는 “오는 2014년에는 시제품을 선보이고 앞으로 10∼15년 정도면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1차 목표는 의료기기지만 노트북이나 휴대폰에 적용하면 크기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어 휴대용 디지털 기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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