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그의 ‘디지털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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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욱한 최루탄 연기, 쉰 목소리의 구호, 어딘지 모르게 끌려가는 시위 학생들의 처참한 모습….

 1970∼1980년대를 살아온 이 땅의 40·50대는 ‘그’를 떠올릴 때 매캐하고 움찔한 이미지가 먼저 다가온다. 연이은 투옥, 고문으로 이어진 독재정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탄압받는 사회의 민주주의 정치 지도자는 그렇게 희뿌연 모습으로 각인됐다.

 그는 한국 정치사의 풍운아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먼 길을 돌아왔다. 군부 정권 아래에서 납치도 당했고,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죽음 앞에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숱한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 정부’를 이끄는 지도자로 나섰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나라 곳간은 텅 비어 있었고 국민은 구조조정의 칼날 아래 신음하고 있던 때였다. 암울하기만 하던 때 그는 되레 국민의 헌신을 유도해 극복하는 정치적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사람들로부터 가장 욕을 많이 듣는 직업이 정치인이다. 몇몇이 모여 앉으면 거침없이 독설을 뽑아낸다. 그 욕설을 받아야 하는 사람 가운데 그도 예외는 아니다. 누군가는 ‘삼김(三金) 정치의 마지막 이월상품’이라고 조롱도 했다. 하지만 독설과 조롱을 받아낸 뒤 그는 다시 대한민국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열리지 않을 것 같던 휴전선 빗장을 열었고, IMF로 실직한 가장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욕을 먹든, 조롱을 당하든 그는 21세기 초 한국을 이끈 잊혀지지 않는 지도자다.

 무엇보다 그는 쉽지 않은 대 역사(役事)를 이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깔았다면 그는 정보고속도로를 깔았다. 한 명은 아날로그 시대 유형의 도로를 닦고, 또 다른 한 명은 디지털 시대 무형의 고속도로를 놓았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주위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성공한 정책이었다.

 “우리 민족은 모험심이 강하고 창의력이 풍부하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는 그런 국민이 이끌어간다. 우리는 지금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 21세기는 한국민을 위한 세기다. 긍정적으로 기대하면 그런 결과가 나오고 부정적인 결말을 예측하면 결과도 그럴 확률이 높다.” 2001년도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그 덕에 지금 최고의 인프라를 가진 IT 초강대국이 되어 있지 않은가.

 그는 또 ‘벤처’를 통해 작은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가진 것은 없지만 꿈이 있고 기술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인물이다. 퇴임 후 각종 게이트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는 21세기 패러다임을 ‘벤처’라는 극명한 실체를 통해 보여줬다. 국민과 프로토콜을 맞추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 가능성을 보고 왔다는 것뿐이다.” 지난 2000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는 의기에 찼다. 남북 정상의 만남이라는 역사적 사실도 중요하지만, 동족 간 새로운 희망을 싹틔울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국민을 더욱 흥분시켰다. 하지만 가능성은 통일보다 IT에서 먼저 찾아왔다. ‘아날로그 대한민국’을 ‘디지털 대한민국’으로 변환시키는 프로그래머로 그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가능성은 긍정적 기대로 작용하고, 오늘 그때 그의 어젠다가 현실로 접속됐다.

모든 IT인들의 마음을 담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전에 꽃을 바친다.

이경우 신성장산업부장 kw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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