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시행된 개정 저작권법에 엄청난 독소 조항이 있다. 영화나 노래파일을 저작권자 허락 없이 인터넷상에 퍼뜨리는 것을 규제한다고 개정된 법에 삼진 아웃제도가 도입돼 많은 네티즌이 흥분하지만 더 나쁜 독소 조항은 컴퓨터 프로그램 저작물에 관한 조항이다.
‘저작권법’과 ‘컴퓨터프로그램 보호법’이 하나의 법률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컴퓨터프로그램 저작자에 매우 불리한 조항을 삽입했다. 즉 모든 저작권은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에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해 이용할 권리는 포함되지 아니한다(법 제45조)’라고 돼 있으나 ‘프로그램의 경우 2차적 저작물 작성권도 함께 양도된 것으로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소통하는 정부의 정책공감’이라는 블로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A라는 회사가 B라는 회사에 의뢰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했을 경우, 과거에는 주문을 했던 A사에서 프로그램의 사용권만 가지고, 제작을 맡은 B사에서는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소유했습니다. 따라서 프로그램을 다시 변경하거나 수정하는 권리도 B사가 가지고 있었죠. 그러나 개정된 저작권법에서는 프로그램을 의뢰했던 A사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사용권뿐만 아니라 제작된 프로그램을 이용한 또 다른 프로그램을 만드는 권리(2차 저작물 작성권)까지 포함해 저작권 모두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정된 저작권법처럼 프로그램의 개작권, 즉 2차 저작물 작성권이 모두 주문자에게 있다면 컴퓨터 프로그램 즉 소프트웨어의 재사용이 불가능하게 된다.
하나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려면 여러 가지 기능이 필요하다. 한 예로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기능이 필요하다면 이것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작성돼 전체 프로그램 저작물의 일부로서 주문자에게 전달된다. 추후 제3의 회사에서 주문한 시스템에서도 사용자를 확인하는 기능이 필요할 때 개발자는 저작해 두었던 프로그램을 적절히 수정 보완해 사용한다.
이렇게 자주 사용되는 부품 성격의 프로그램을 공통 모듈이라고 한다. 경험이 많은 프로그래머는 많은 수의 잘 개발된 높은 품질의 공통 모듈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공통 모듈은 개발자의 지식 자산이다.
개정된 저작권법이 실행되면 개발자는 자신이 작성한 소프트웨어(SW) 모듈이라도 재사용할 수 없게 된다. 남의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기능을 하는 높은 품질의 공통 모듈을 갖고도 다시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한다. 기존의 SW 성능을 향상시켜서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 가는 SW산업의 생태계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또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얻지 않아도 프로그램의 역분석을 허락하는 것도 문제다.
프로그램이란 개발자의 지식, 오랜 연구의 결과들이 코드화돼 있는데 이를 역분석해 알아내게 하는 것을 법에서 허용할 이유가 있을까. 이렇게 개발자의 권익을 보호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SW 산업이 생존할 수가 있겠는가.
일전에 정부에서 발주한 SW의 소유권을 개발자가 갖도록 하자는 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가 기획재정부의 주관으로 개최됐다. 용역으로 개발해 무한 복제 사용하는 정부 관행을 개선해 보자는 여러 부처의 담당 과장이 토론에 참석한 의미 있는 모임이었는데 이번 저작권 법 개정으로 이러한 노력을 허망하게 했다.
대한민국 SW는 없는 것이 많다. 돈 버는 SW 회사가 없고, 대학의 SW 관련 학과에는 학생이 없고 지원자도 없다. 정부와 국회의 관심도 없고, 그들을 감시할 SW 전문가도 없다.
오죽했으면 ‘대한민국에는 SW가 없다’는 책이 저술됐을까. 그동안 대한민국 SW 산업은 불법복제에 치이고, 명확하지 않은 요구 사항으로 멍들고 또 머릿수 세어서 값 매기는 관행으로 이미 병들어왔다.
거기에 이번 저작권법의 독소 조항은 SW산업의 죽음을 재촉하고 있다. SW산업이 죽음을 맞기 전에 저작권법을 속히 재개정하기 바란다.
김진형 KAIST 전산학과 교수 jkim@KAIS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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