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세상] 순정만화 속에서 만나는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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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잇백, 에지, 레트로, 미니멀리즘, 믹스앤드매치, 비비드, 프레피, 스칼레토힐….

 위에 열거한 단어들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바로 말할 수 있겠는가. 요즘 드라마에도 많이 나오는 이 단어의 의미가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면 당신은 바로 패션 마니아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대중문화에서 제일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패션’이 됐다. 2000년 이후 각종 케이블 채널에서 패션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수입해 방영하면서 조금은 어색했던 ‘패션’의 개념이 일반 시청자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게 된 것이다. 패션모델이나 디자이너가 나오고, 각종 시상식에서 스타들의 옷차림을 베스트와 워스트로 나누는 수많은 프로그램은 ‘패션’이란 단순히 옷을 단정히 입는 것이라는 교육을 받아왔던 대다수의 한국 여성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내세울 수 있는 중요한 아이템이라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패션을 향한 무한한 관심은 이제 케이블을 넘어 지상파 드라마인 ‘스타일’을 통해 안방극장까지 진출했다. 이 드라마는 ‘스타일’이라는 잡지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지만 또 한편으로는 ‘박기자’ 역을 맡은 김혜수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하이힐을 신고 등장하는지가 더 중요한, 그야말로 패션 드라마인 셈이다.

 한국의 순정만화 역시 대중문화의 중요한 키워드인 패션과 함께해왔다. 현재 ‘마틴 & 존’을 연재하고 있는 박희정 작가는 그 패션 스타일을 보여주는 데 늘 최전선에 서 있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속에 펼쳐지는 작가의 패션에는 언젠가 입어보고 싶은 아이템이 즐비하며, 더 나아가 바라만 봐도 황홀경에 빠질 만큼 아름다운 옷들이 컷마다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 최근 작품 마틴 & 존에서는 현대물을 뛰어넘어 사극, 그리고 뱀파이어 물까지 시·공간을 초월한 패션을 선보이고 있으니 순정만화 속 패션이 어떠한 것인지 박희정의 작품에서 한번 경험해보시라. 물론 작가의 사랑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은 보너스다.

 스타일보다는 당시의 시대 패션을 반영한 작품으로는 천계영의 만화 ‘언플러그드 보이’와 ‘오디션’을 들 수 있겠다. 언플러그드 보이는 1990년대 최고의 대중 아이템이었던 힙합을 캐릭터들의 최고 패션으로써 선보이는 작품이다. ‘우울할 때 풍선껌을 부는’ 주인공 ‘현겸’이는 당시 유행했던 힙합패션의 카탈로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힙합패션을 충실히 보여준다. 또 ‘재활용 밴드’라는 밴드의 성공기를 그린 오디션의 패션은 책장을 넘기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다. 얼마 전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천계영 작가는 최근작 ‘하이힐을 신은 소녀’에서 또다시 2000년대를 읽을 수 있는 다양한 패션을 캐릭터로 선보이고 있으니, 천계영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된다면 과거와 현재를 가리지 않고 당대에 유행하는 최고의 패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원수연 작가의 ‘풀 하우스’, 최경아 작가의 ‘비비’, 하시연 작가의 ‘코믹’, 박소희 작가의 ‘궁’ 등 한국 순정만화 곳곳에는 최첨단 패션 코드가 숨어 있다. 어떤 작품은 연재 당시를 반영해 지금 읽으면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또 어떤 작품은 몇 년이 흘러도 그 화려함과 뛰어난 스타일에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작품을 읽어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순정만화 작가들이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한국의 수많은 순정만화의 패션은 바로 이러한 작가들의 노력에 의해 완성됐을 것이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과연 한국 순정만화 속에 나오는 패션이 얼마나 ‘에지’하고 ‘글래머러스’하며 ‘패셔너블’한지 직접 확인해보는 것. 오늘 당장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패션에 푹 빠진 한국 순정만화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백수진 한국만화영상산업진흥원 만화규장각 콘텐츠 기획담당 bride100@par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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