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휴대폰 산업의 빛과 그림자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분기 국내 휴대폰 생산 대수

  # 지난 4월 북미 최대 정보통신 전시회 ‘CTIA 2009’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시회에 참가한 삼성전자는 올해 북미 휴대폰 시장에서 25% 이상의 점유율로 1위 자리를 공고히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선진 휴대폰 시장의 바로미터인 북미 지역에서 한국 휴대폰 업체가 주역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그로부터 1주일 후, 중소 휴대폰 수출업체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이지엠텍이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이 회사는 지난 2000년 창업 이후 2003년부터 매년 휴대폰 수출로만 1000억원 이상 매출을 올리던 튼실한 업체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경기 위축을 견디지 못하고 자금난에 봉착, 주문을 받아 놓고도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지경에 놓였다.

한국 휴대폰 업계에 명암이 엇갈렸다. 삼성전자·LG전자 등 대기업들은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30%를 돌파하며 고공 행진을 하는 사이 중소 수출 업체들과 부품업체들의 어려움은 가중됐다. 세계 휴대폰 업계가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힘의 논리로 재편되면서 중소 수출업체들의 기반이 무너졌다. 휴대폰 업체의 해외 생산 비중 확대로 일감이 부족해진 부품 협력업체들도 신사업을 찾는 등 기로에 섰다. 한국 휴대폰 산업의 건전한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지엠텍(대표 김동필)은 GSM 휴대폰을 ODM(제조자 설계생산) 방식으로 수출하는 업체다. 저가를 무기로 한 중국 업체들과 경쟁하면서도 탄탄한 기술과 디자인 경쟁력을 앞세워 매년 200만대 이상의 휴대폰을 수출해 왔다. 진출 국가가 20여 개국이 넘고 지난 2007년에는 1억달러 수출의 탑도 수상했다.

김동필 사장은 “지난해 말 글로벌 경기 위축에 따른 일시적인 자금 압박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 밖에 없었다. 하반기 들어 주문이 회복세를 보이지만 법정관리 영향으로 제대로 생산을 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120여명에 달하던 직원들도 60여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이 업체가 10여년의 기간동안 쌓아온 기술력과 해외 시장 진출 경험은 사장될 위험에 처했다.

김 사장은 “중남미·동남아·동유럽 등에 아직 중소 ODM 휴대폰 업체가 승부할 수 있는 틈새 시장이 있다”며 “한국 업체라는 평판과 디자인,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중국 업체들과도 충분히 겨룰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달 내로 채권은행에 회생 계획안을 내야 하는 김 사장은 M&A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휴대폰 산업의 또 다른 축인 부품 협력업체들도 어려움에 맞닥뜨렸다. 삼성전자 등 대표적인 업체의 생산기지 해외 이전이 가속화하면서 부품업체들의 국내 매출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의 품목별 광공업 생산현황을 보면 지난 2분기 국내에서 생산된 휴대폰은 총 3973만대로 작년 같은 기간(4276만대)에 비해 7% 이상 줄었다. 대기업들이 해외 현지 조달을 확대하며 현지 업체들과 같은 가격을 요구하는 것도 부담이다. 부품 업체들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신재생 에너지 등 다른 곳에서 신사업을 찾는 데 몰두했다. 자칫 휴대폰 부품 기술 기반이 취약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가격 및 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대기업들의 선택은 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중소 개발업체와 부품 업체들이 함께 기반을 갖출 수 있는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국내 휴대폰 산업의 공동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