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정보편식으로 멍드는 정보강국

 대한민국의 인터넷 정보량은 거침없는 증가세다. 디지털정보 생산량은 2007년 국민 1인당 평균 92Gb로 세계 인구 1인당 평균인 46Gb보다 두 배가 많다. 하지만 온라인 정보의 양적 증대가 정보 활용력을 높이거나 인간의 관심을 확장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보편식 심화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뉴스·사이트·블로그·채널 등 이념과 호감에 얽매인 정보편식이 정보공동체의 가치관을 약화시키고 있다. 편식이 건강을 해치듯 특정 정보에의 쏠림은 개인 차원에서 거부·배제·단절을 낳으며 사회적 수준에서 불신·편향·분열양상을 드러낸다.

 일례로 이념 편향에 맞물린 정보편식으로 소모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권의 반목은 심각한 상황이다. 집단갈등의 심리실험으로서 지난 1950년대 미국의 무자퍼 셰리프는 모든 면에서 비슷한 소년 22명을 오클라호마의 한 동굴로 데려가 두 패로 나눠 살게 했다. 평범하던 소년들은 서로 미워하고 상대편에게 까닭 없이 적개심을 보이며 공격적 성향도 드러냈다. 끝내 상대 깃발을 태우고 숙소를 습격했다. 단순한 편 가르기만으로도 적대적 양극화가 빚어진다는 이른바 ‘The Robbers Cave’ 실험이 한국 사회에서 현실로 투영된 셈인데, 동일한 현상을 놓고 극단적 견해가 충돌하는 까닭은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으로 정보를 해석·판단·선택하려는 아전인수식 확인편향에서 비롯된다.

 실제 공간과 경계가 모호해지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실체보다 이미지를 추구하고 합리성보다 감성에 집착하며 선동에 취약해 균형감각 유지가 어렵다. 정보 깊이나 신뢰보다 흥미위주의 가벼운 오락 콘텐츠가 진지한 담론을 압도하고 있다. 정보편식을 방치하게 되면 자칫 뫼비우스의 띠처럼 편집증의 굴레라는 화근이 돼 정보강국을 파편화시킬 수 있다. 그동안 인터넷 부작용에 시달린 이명박 정부가 건전한 정보문화 창달을 위해 부심했지만 규제·처벌 위주다.

 정보문화의 창조성이 빈곤하고 자신감도 안 보이며 정보화 의지와 열정도 느낄 수 없다. 무기력한 디지털리더십이 지속되면 자칫 인터넷의 창의성·자율성·신뢰는커녕 정보강국의 위상마저 잃지 않을지 염려된다.

 성숙한 정보강국을 위해 정보화 성찰과 통찰의 바탕에서 생산적 정보 이용이 뒤따라야 한다. 먼저 입맛대로 보도하는 편향언론부터 이념과 정파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갈등의 중재자로서 거듭나야 한다. 정보가치 선별과 논리적 가공 및 분석능력을 높이고 사회현상에 다양한 관점과 창조적 비판으로 생산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취향에 맞는 통계와 유리한 정보만 골라 만든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했던 정부 역시 투명하며 진실하고 정확한 정보의 바탕에서 국민과 양방향 소통하며 정책신뢰를 쌓아야 한다. 인터넷사업자들도 건강한 웰빙 식탁을 차리는 엄마의 심정이 절실하다. 제 기분대로 정보를 선정적으로 소비하는 네티즌이나 제 맘대로 짜깁기하는 청소년들도 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보나 지식습득 과정에서 편리함과 호감만 추구한다면 자칫 편의주의라는 블랙홀에 지성과 창조성이 함몰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일찍이 인간의 삶과 환경을 조망했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젊은이들이 아름다움을 선택하면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이고 유용한 것을 선택하면 세상에는 유용한 것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설파했듯이 네티즌은 정보 유용성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선택, 생산적으로 이용하는 창조적 존재인 호모인포마티쿠스(Homo-Informaticus)가 돼야 한다. 그래야 정보를 넘어 창조성 넘치는 신뢰 기반의 지식강국이 가능하다.

 한세억 동아대 행정학과 교수(정보정책 전공) sehan@dong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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