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진 법무법인 정세 미국변호사
우리나라는 과거에 대단한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황룡사 9층 목탑이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 고려청자 등이 그 사례다. 과거의 우수한 기술은 아쉽게도 후대에 계승 발전되지 못했다.
이런 경험으로 재능 있는 창작자를 잘 대우해줘야 한다는 진리를 알게 됐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대체로 합의가 이뤄진 듯하다.
하지만 23일 시행되는 저작권법 중 일부 규정에는 여러 가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제133조에 추가된 ‘인터넷 삼진아웃제’다.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불법으로 유포하는 이용자에게 세 번까지 경고를 하고 그 이후에는 6개월까지 게시판 이용을 정지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저작물이 원형 그대로 빠르게 유포되는 디지털 시대를 감안해 저작권 침해 사범에 정지명령과 같은 임시조치는 타당하다. 특히 일단 불법 복제물이 범람하면 원저작물의 상품적 가치가 급격히 훼손되는 엔터테인먼트산업은 임시 정지조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미국이나 캐나다 정부도 저작권 침해 사이트에 정지명령과 같은 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관련법을 마련해놓고 있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다른 나라에서는 정지명령을 내리는 주체가 법원인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행정부라는 사실이다. 정지명령은 원천적으로 정보의 접근 자체를 막기 때문에 사법부의 판단에 의하지 않는 정지명령이 남발되면 사실상의 검열제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특정 사이트가 잘못된 결정에 의해 정지된다면 그 후 사법적으로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게 마련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정지명령 대상에 블로그나 카페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발표했지만 개정 저작권법은 이 문제에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개정법률에서는 해당 게시판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 제9호의 게시판 중 상업적 이익 또는 이용 편의를 제공하는 게시판’을 뜻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게시판의 법률적 정의는 ‘그 명칭과 관계없이’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일반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부호·문자·음성·음향·동영상 등의 정보를 이용자가 게재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기술적 장치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법적으로 볼 때 정지명령이 내려질 수 있는 게시판에는 개인 블로그나 카페 등 모든 종류의 표시 형태가 전부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가 지나치게 넓은 범위에서 자의적으로 규제할 우려가 있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 보호를 위해 보다 효과적인 조치가 필요하므로 개정된 저작권법 조항들의 취지는 원칙적으로 옳다.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법도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앞으로 위헌 소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실제로 정지명령을 내리는 데서 문화부가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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