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협력사는 새로운 네트워크와 경험을 요구한다
◇왜 오픈플랫폼인가=아이팟은 일종의 문화 아이콘이다. 이 히트 상품은 단순한 개발의 결과가 아닌 기업 혁신의 성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팟의 예쁘고 깜찍한 디자인에 감탄하지만 아이팟의 진짜 성공요인은 아이튠스라는 애플의 오픈서비스 플랫폼이라고 봐야 한다. 이 오픈플랫폼으로 애플이라는 낡은 가게, 즉 노포(老鋪)가 21세기 골드키즈(Gold Kids)의 취향을 상징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아이튠스는 음악 등을 추가·삭제 하는 기능 외에 MP3, 영화, TV쇼, 뮤직비디오, 오디오북, 팟캐스트, 게임 등 각종 콘텐츠가 망라된 프로그램이자 인터넷 환경이다. 국내 MP3 산업이 하드웨어 측면에서 먼저 출발했는데도 후발주자인 애플에 밀려 존재가 희미해진 요인도 아이튠스 같은 오픈플랫폼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1세기의 제품과 서비스는 그 자체로도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부품과 기술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네트워크 및 가치들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눈에 보이는 요소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훨씬 큰 것이다. 이런 요소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기업은 경쟁력 확보에 실패하고 시장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다.
오픈플랫폼은 이렇게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네트워크의 정보, 콘텐츠, 경험, 아이디어 등이 유통되고 정리·가공되어 기업의 변화와 혁신, 진화를 돕는 IT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과거 기업들이 사용하던 경영 및 관리 도구로 이런 요소들을 관리하기는 어렵다. 애플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구글, BT, P&G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오픈플랫폼으로 기업 진화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나=기업의 외부 접점에서 오픈플랫폼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P&G가 운영하는 이노센티브닷컴은 오픈플랫폼으로 내부의 R&D 프로세스를 개방, 고객이나 외부 연구자가 P&G의 연구과제에 참여하고 성과를 거둔 사례다. 심지어 경쟁사 연구원까지 참여해 P&G의 아이디어를 해결한 경우도 나타났다.
기업 구성원의 활동 공간도 제품 공간에서 솔루션 공간, 나아가 경험 공간으로 자연스러운 진화와 통합이 이뤄지고 있다. 기업이 고객의 경험에 참여하고 고객이 느끼는 다양한 이벤트를 감지하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기업이 이러한 이벤트에 섬세하고 민감하게 대응하려면 권위적인 프로세스를 지양하고 기업 전체 구성원이 고객의 경험에 집중해서 신속하게 대응하는 적응형 기업(adaptive enterprise)이 되어야 한다.
오픈플랫폼은 오늘날 기업이 똑똑해진 고객을 상대하고 그 고객의 네트워크로 자연스럽게 참여하기 위한 필수 수단이다. 이런 수단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분야가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정보통신, 금융, 제조업 등이다. 이 분야에서는 비즈니스 개방으로 기업 경계가 확장되고 무한 경쟁이 이뤄지며 고객의 참여와 활용, 공유로 고객 인사이트를 지향한다. 컨버전스 환경에서 맞춤형 토털 서비스가 이뤄지는 등의 변화도 서비스 확장을 보여주는 지표다.
정보통신 분야의 경우 디바이스, 운용체계 플랫폼,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등의 공유 자원을 결합 및 서비스화해 사용자와 상호작용하는 플랫폼을 구현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네트워크 개방, 콘텐츠의 오픈마켓 이전 등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경쟁사 간 협력, 표준화, 개방화, 글로벌화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오픈플랫폼 이용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스마트폰에 적합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전략 및 새로운 유통 채널 확보에 주력하고,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 마이크로소프트 스카이마켓, 애플 앱스토어 등 오픈마켓으로 대표되는 승부 환경 조성에 집중하고 있다.
공공 분야는 각 기관이 보유한 정보 자원을 민간에 개방·공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가치를 창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국가 정보자원의 개방 및 공유, 서비스화에 나선 것이나 호주 빅토리아주 화재 당시 구글이 산불 정보를 표시하는 지도 서비스를 시작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이 국가재난센터의 시스템을 오픈플랫폼으로 개편하고 재난 정보의 신속한 공유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나 덴마크가 정부 차원에서 개인의 병원 이력을 축적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보건정보 플랫폼을 구축한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인터넷 및 지식 분야의 경우 방대한 비즈니스와 정보, 상품 등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허브형 플랫폼을 구축하고 IT서비스의 근간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톰슨로이터는 전 세계 뉴스 및 정보, 법률 자문과 출판, 과학 연구, 업체 평가 등 비즈니스 솔루션을 중심으로 오픈플랫폼을 구성하고 있다. 세컨드라이프가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된 가상 세계를 만들어내고 오픈하여 다양한 서비스를 생성할 수 있게 한 것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새 검색엔진 ‘빙’으로 검색 영역에서 기존 라이브플랫폼을 대체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시도다.
◇어디로 접근하고 어떻게 구현하나=위키피디아 등이 설명하는 오픈플랫폼의 개념은 오픈소스나 오픈API 기술적인 측면으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이렇게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볼 경우 오픈플랫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오픈플랫폼은 기술이라기보다 비즈니스 환경의 변화라는 트렌드 위에서 성립하는 기업 전략의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픈플랫폼을 구현하려면 비주얼 모델링 기반의 서비스 생성 및 조합 환경이 필요하다. 또 서비스와 관련한 통합 콘텐츠의 유통과 판매 및 구매, 평가 환경을 갖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소액 결제(micro-payment)가 가능한 과금 체계, 공유 인프라 사용자 중심의 클라우드 환경, 다양한 서비스 구축이 가능한 구조로서 고객이 자유롭게 액세스할 수 있는 오픈 구조를 갖추는 것이 좋다.
오픈플랫폼 아키텍처는 표준화된 모델이 존재하지 않으며, 특정 도메인의 경우 참조 가능한 형태로 구조화된 사례가 있다. 정보통신 서비스 업체에서 서비스 유통 플랫폼(Service Delivery Platform)을 갖추고 있는 것이 그 사례다. 산업 분야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플랫폼이 현재 혁신적인 서비스 구현으로 산업 간 확장이 이뤄지는 단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서비스 혁신의 도구로 오픈플랫폼은 제작자가 아닌 제3자가 소스코드 수정 없이 외부에서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환경이다. 또 오픈플랫폼은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생성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하며, 운용체계를 포함해 다양한 환경에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오픈플랫폼은 다양한 산업으로 진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수의 협업이 가능한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 매시업, 컨버전스 능력, 소셜 네트워킹 등이 이를 위한 기술적 조건이다. 이를 통해 기업과 고객, 파트너들이 공간적, 시간적,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IT 플랫폼인 것이다.
오픈플랫폼은 △콘텐츠(영화, 음악, 동영상, 방송 콘텐츠 등) △플랫폼(온오프라인 연계, 데이터 유통 시장, 고객 창구, 웹, 모바일 플랫폼 등) △네트워크(유무선 통합, 방송 전파, 인터넷 전화, 광대역 네트워크 등) △터미널(PCS, PDA, 홈네트워크 장비, IPTV, 디카 등) 4가지 가치 사슬의 통합을 주도한다. 기업 생태계의 최종적인 지위(영향력)는 이러한 가치 사슬의 통합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오픈플랫폼은 해당 기업의 목적과 조건에 맞춰 최적화해야 한다. 전사적 관점에서 비전, 경영 전략, 수익 모델 등 기업 활동 요소 오픈화를 검토해야 하며 다양한 방향의 소통과 공동 가치 창출, 실시간 대응 등의 요구를 바탕으로 플랫폼 유형을 결정하는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다.
실제 적용에서 △내외부 경계 없이 콘텐츠와 서비스 확보가 이뤄지며 △서비스 생성 시 고객의 참여가 가능하고 △GUI에 기반한 서비스 자동 생성과 서비스 팩터리 △서비스 시뮬레이션과 프로비저닝 △고객의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플랫폼과 무관하게 지원한다. 또 △고객의 1인 미디어 서비스 환경 모바일화를 지원하며 △개인 가상공간을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편적인 것이 아닌 전사 차원의 사업 진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 목표는 기존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인력들이 고객의 실시간 경험에 기반한 미약한 신호를 증폭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이다. 관리자들은 소비자 이벤트와 관련한 실시간 정보를 확보하며, 소비자 이벤트에 개입하고 선택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벤트에 민감한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
관리자의 직관을 도와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곧바로 시험할 수 있는 인프라, 즉 권한의 하향 위임이 이루어지는 ‘임베디드 인텔리전스(embedded intelligence)’를 구현하며, 필요한 자원을 신속하게 재구성해 대응하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또 관리자 간 협력과 합의 도출이 기업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필요한 통합 정보 접근 도구가 필요하다.
오픈플랫폼의 관련 기술은 내부 시스템으로 ESB(Enterprise Service Bus), EAI, 어댑터 등이 있으며 외부 플랫폼으로 오픈API, RSS 등 오픈 인터페이스 관련 기술과 SaaS 등이 있다. 고객 측면에서는 소셜소프트웨어 기술과 모바일 2.0, 자원 측면에서는 SOA와 CBD, 메타데이터와 빌링, ECM 등의 인프라가 거론된다.
◇‘내 문제’로 다가오는 오픈플랫폼=우리가 사는 이 지구 나아가 우주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다. 이러한 거대 생태계는 더 작은 생태계로 구성돼 있으며, 그 생태계들끼리 경험을 공유하고 네트워킹하는 질서를 갖고 있다. 기업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기업들은 어느 거대 생태계에 포함돼야 하며 다시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를 구성해 그 안에서 배타적인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기업의 생태계는 성공하는 반면에 그보다 많은 기업들의 생태계는 실패한다. 그 실패의 원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오픈플랫폼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제대로 된 오픈플랫폼은 많은 기업들과 상생(윈윈)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아이튠스가 성공한 반면에 비슷한 개념의 애니앱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다양한 파트너들이 그 생태계에서 성장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오픈플랫폼 구조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도 오픈플랫폼을 이해하고 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미래 생존의 필수 전제다. 그리고 그 오픈플랫폼이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닌 상생할 줄 아는 기업 전략의 문제라는 점을 가장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희동 이사는>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PMO, PI·ISP 전문가. 다수 금융기관 ISP·차세대 PMO 프로젝트와 물류·유통·제조 분야의 PI·BPR 사업 컨설턴트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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