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에 휴일근무를 해도 추가 수당은커녕 일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월급 없이 연장 근무를 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과제에도 없던 발주자의 지나친 변경요구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요.”
“50대에 소프트웨어(SW) 개발자로 남는다는 것은 회사에서 능력 없는 인간으로 찍힌 것이지요.”
SW 개발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주요 인터넷사이트 블로거들의 목소리를 보고 있자면 개발자들의 불만이 사회적인 저항으로 폭발하지 않을까 두려울 정도다.
SW 개발자들의 상황이 열악해지고 있다. 열악한 개발 환경에 우수한 SW인력은 산업에서 빠져나가고 우수한 기업이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개발자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개발자들은 밤샘작업에 시달리고 있다.
SW시장은 반도체의 3배, 휴대폰의 6배에 이르는 성장 가능성이 큰 산업이다. 부가가치율도 28.7%로 자동차(20.6%)나 컴퓨터(11.5%)보다 높다.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매출 10억원당 제조업이 0.9명을 고용하는 데 비해 SW산업은 6.4명을 고용한다.
하지만 정작 산업 종사자들은 열악한 환경에 몸서리를 치며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처럼 SW산업계의 개발자의 처우가 나빠진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이 만들어낸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우선 수요와 공급의 키를 쥐고 있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 발주관행부터 바꾸자=업계는 우선 사업자로서 정부의 발주관행을 먼저 바꿔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SW산업을 고부가가치산업이라고 추켜세우는 정부가 정작 사업을 발주할 때는 개발자가 현지에 몇 명이 참여했는지로 사업가치를 따져 숫자 채우기 식의 개발 관행을 부추기는 꼴이란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이지운 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는 “개발자의 수를 세 사업을 평가하는 헤드카운팅 방식과 무조건 개발자가 현장에서 개발해야 한다는 발주 형식을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보화전략계획수립(ISP)의 내실화도 주요 개선점으로 꼽았다.
ISP의 가치에 대해 인정하지 않아 적은 예산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이마저 사업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전체 사업을 수행하는 프로젝트 매니저(PM)나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하는 개발자들이 역할 분할과 책임소재, 협업체계 구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불만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IT선진화 방안을 마련해 원격지 개발이나 ISP 내실화를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개발자를 소외한 갑을식 계약관행 =개발자가 실제 업무에서 소외되는 데는 갑과 을이라는 종속적으로 얽힌 사업자 간의 관계도 한몫하고 있다.
한 SW 개발업체 사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하도급 관행이 SW산업에서도 뿌리내리면서 3단계 4단계 심지어 7단계까지 하도급 관행이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로 사업을 수주하는 대형 IT서비스 기업들은 고급인력만을 갖추고 있어 개발에는 하도급을 주는 게 일반화된 관행이다. 공공SW사업은 행정편의, 유지보수 부담 등을 이유로 대형 IT서비스 업체와 일괄계약을 좋아하면서 중소 SW기업의 직접 납품 기회는 줄고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또 이러다 보니 하도급이 다섯 단계를 넘어가는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계가 내려가며 제 몫을 이리저리 떼고 하도급을 주기 때문에 정작 개발 업체나 개발자는 사업대가의 50∼60%조차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해당 사업에 대한 역량이나 인력이 부족한 기업이 사업을 수주하면서 실제 업무를 하는 개발자에게 떨어지는 몫은 20∼30%까지 줄고 있는 것. 이와 관련, 한국SW산업협회 관계자는 “사업을 발주할 때 업체 간의 힘의 관계를 고려한 사업자의 경영상태, 기술 및 인력 보유현황 항목을 꼼꼼히 기록하는 등 기존의 하도급 사전 승인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SW 분리발주를 넘어 사업의 분할발주 요구도 커지고 있다. 분할발주란 건축업계처럼 분석과 설계와 프로젝트를 분할해 업무량과 가격의 불확실성을 해소하자는 것. 우리나라 SW 발주 관행의 가장 큰 문제가 발주자의 전문성 부족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발주자가 기술의 현황을 몰라 할 수 없는 황당한 것을 요구하거나 할 수 있는 것도 빠뜨리곤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발주자들이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건축업계의 관행을 SW 발주자들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산업에 대한 정당한 대가 지급=“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보다 소득이나 생활수준이 떨어지는 멕시코에서도 막무가내식으로 SW 개발비나 유지보수 비용을 깎지는 않습니다.”
강관식 아토정보기술 사장은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SW를 제값을 다 주고 사는 것은 아깝다는 구매자의 관행에 우려를 표했다. 무엇보다 다른 관행 개선에 앞서 사회적으로 SW와 지식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발주자가 사업에 대한 제대로 이해를 못하면서 SW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할 수 없고 개발자 역시 제 몫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SW에 공정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려는 입장에는 여전히 무료 또는 값싸게 제품을 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는 SW뿐만 아니라 컨설팅에 해당하는 ISP 수립에서 헐값으로 사업을 발주하는 관행을 낳고 있다. 또 개발자들의 가치를 제대로 매길 수 없어 전문 아키텍트의 양성도 요원한 일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즉 SW를 제값을 치르지 않겠다는 일반의 생각이 SW산업은 물론이고 지식 산업을 낙후시키는 결과를 만든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지식산업에 대한 이해 부족이 지식산업의 발전을 갉아먹는 지식 산업 육성의 최대 적인 셈이다.
◇개발자가 참여한 정책 수립 전제돼야=최근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를 포함한 정부가 선진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어떤 정책이든 업무의 주체가 소외돼서 일을 추진해선 그 효과를 얻어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 SW 업계 관계자는 “지난 DJ 정권 때의 SW 개발자 10만 양병설은 전문화되고 체계적인 지식습득에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초·중급 엔지니어를 양산하는 일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최근 개발자에 대한 처우가 급락한 데는 대학과 학원을 비롯한 전문기관에서 대거 초 중급 전문가의 양산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즉 산업계가 소외된 잘못된 수요 예측이 개발자의 처우 하락을 원인이 됐다는 비판이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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