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강국코리아, 다시 시작이다] (6)MVNO제도가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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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이동통신망사업(MVNO)의 갈 길은’

 기존 이동통신망사업자(MNO)의 망을 빌려 서비스하는 이동통신사업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6개월째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MVNO 도입을 통한 이통시장 경쟁 활성화’라는 대명제 아래 어렵게 법안이 제출됐지만 아직 사업자 간 이견도 첨예한 상황이다.

 우리보다 먼저 MVNO제도를 도입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기존 이통서비스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개발·제공한 사업자가 새로운 시장을 열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에 단순한 요금 경쟁에 뛰어들거나 유통망에 한계를 갖고 있는 사업자는 시장에서 퇴출되는 운명을 맞고 있다. 제도 도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MVNO가 경쟁적인 요금인하를 주도하고 이용자에게 편익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 세계적으로는 400여개의 재판매사업자가 이통통신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그중 소수만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사업자는 유통·금융·미디어 등 각기 기존 영역에서 쌓은 마케팅 노하우를 기반으로 기존 이통사와 대등한 경쟁력을 갖추고 사업에 진출했다.

 해외 MVNO는 크게 △부가가치형(value-added) △편의형(convenience) △비용절감형(budget) △틈새공략형(niche)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부가가치형은 데이터, 유무선 결합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형으로 프랑스의 NRJ모바일이 대표적이다. 편의형과 비용절감형은 각각 단순한 서비스와 요금으로 넓은 시장을 공략하는 유형이고 틈새공략형은 10대·학생·이민자 등 특정 고객층을 겨냥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유형을 말한다.

 이 중 시장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부가가치형과 틈새공략형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이통사가 하지 못하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탄탄한 유통망을 활용하면서 이용자의 만족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버진모바일은 기존 사업영역인 음악·금융·운송·출판 등에서 구축한 강력한 브랜드와 유통망을 기반으로 다양한 마케팅을 전개하면서 영국에서만 40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버진모바일은 영국 이동전화 부문 5년 연속 고객만족도 1위를 달성할 정도로 탄탄한 경쟁력을 보유했다.

 또 다른 성공사례인 이탈리아의 포스테모빌레는 전국 1만4000여개의 우체국 유통망을 활용해 사업 첫해인 2008년 한 해에만 70만여명의 가입자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기존의 의존적인 음성 재판매 형태에서 벗어나 차별화된 전략과 비즈니스 모델을 토대로 이통사와 대등한 협력을 이끌어내는 ‘2세대 MVNO’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지터버그는 고성능 스피커, 큰 글자, 911 연결기능 등 노인 전용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이동전화의 기능을 음성대화에서 기술도우미(어시스턴스 테크놀로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아마존은 무선인터넷으로 전자책(e북)을 다운로드하는 ‘킨들’ 단말을 출시해 이통사업자와 협력이 가능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미 이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일본 소프트뱅크는 지난 2월 무선데이터 네트워크 사업자(MNO)인 이모바일과 계약을 하고 데이터 분야 MVNO 사업자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MVNO 사업이 해외에서는 이미 다양한 형태와 차별화된 서비스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아직 오픈하지는 않았지만 내년 2월 NTT 도코모 망을 빌려 일본 MVNO 시장에 진출할 예정인 노키아는 단말기 경쟁력을 바탕으로 차별화된 고객 케어프로그램을 전개할 예정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시장에 확실하게 자리 매김한 MVNO가 있지만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한 MVNO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서비스 차별화 없는 낮은 요금만으로 시장에 진입했다가 한계에 봉착한 사례다. 이들 기업은 결국 파산하거나 기존 MNO에 인수됐다.

 미국의 앰프 모바일은 저렴한 요금으로 한동안 수익을 늘려갔지만 대량 체납 발생 등 이통시장의 이해부족으로 지난 2007년 결국 퇴출되는 운명을 맞았다. 또 지난 2004년 시장에 진출한 프랑스의 데비텔은 낮은 브랜드 인지도 및 유통망 부족 등으로 결국 다른 사업자에 인수되고 말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락잇토크는 월 50달러에 무제한 서비스를 선언했지만 도매가격 수준보다 낮은 요금을 책정하면서 사업을 철수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또 영국 세인즈버리는 4개의 기존 MNO 사업자 상품을 모두 취급하려고 했지만 복잡한 빌링 시스템 처리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사업을 포기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덴마크·핀란드·노르웨이 등 북유럽은 MVNO 사업자들이 한때 난립했지만 대부분 MNO사업자에 흡수 합병되면서 시장이 정리됐다”면서 “갑작스러운 서비스 중단으로 소비자 피해는 물론이고 기존 MNO 사업자들의 재정이 악화되면서 3세대(G) 서비스 도입이 지연되는 등 통신산업 전체에 문제가 발생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도입을 앞두고 있는 MVNO 제도는 분명 통신시장의 경쟁을 활성화하고 이로써 기존 사업자가 충족시키지 못해온 다양한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이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 국회 등 관련 기관도 국내 MVNO 시장이 조속히 열리고 관련 사업자들이 시장에 제대로 안착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는 사전 도매대가 규제 도입 여부가 쟁점이 되면서 MVNO 법안이 계류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MNO와 MVNO 간 망 이용대가 결정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매 대가 규제에 대한 논쟁은 제도도입을 늦추는 소모적인 논쟁에 불과할 뿐이다. 현 정부 제출 법안에서 규정한 것처럼 시장기능에 우선적으로 맡기고 하루 빨리 제도를 시행한 후에 필요한 부분은 사후적으로 보완을 하는 것이 재판매를 활성화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지속 성장 가능한 통신산업을 위한 제도도입 필요하다

 MVNO가 유럽·미국 등지에서는 MVNO에 대한 도매제공 대가 산정 시 MNO의 소매가격에서 MVNO가 수행하는 마케팅 관련 비용을 차감하는 이른바 ‘소매가 할인방식(리테일마이너스)’으로 결정하고 있다. MVNO가 본래 MNO로부터 이동통신망을 임차해 마케팅을 위주로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이라는 점을 감안한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MVNO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업자들이 사전 대가 규제를 바탕으로 기존 이통사업자 대비 30∼50% 저렴한 요금으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해외에서 통용되는 리테일마이너스 방식으로 대가를 산정한다고 가정하면, 통상 국내 이통사 마케팅비용이 20∼30% 선임을 고려할 때 MNO 요금 대비 70% 선이 MVNO의 원가가 될 전망이다. MVNO들은 이 가격에 이윤을 더해 판매해야 하는 만큼 30∼50% 요금인하는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MVNO는 별도 유통망을 신규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고 봐야 한다”면서 “30∼50% 할인된 요금구조가 나온다면 망 임차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존 이통사(MNO)들은 전 세계에서 도매규제를 하는 나라는 아이슬란드뿐이고 여기서도 리테일마이너스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통신산업의 파이프 라인을 제공하는 MNO들의 투자의욕을 꺾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투자 후 투자비를 회수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통신산업의 생태계는 무너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MVNO 도입은 MNO의 부족한 마케팅 인프라를 보완하고 이용자 요금부담을 덜어준다는 측면에서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의 손발을 묶는 과도한 규제는 투자 인센티브를 감소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MNO의 수익성 악화는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게 되고 장비 및 소프트웨어업계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면서 IT 투자의 선순환 고리가 붕괴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