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0개 회원국의 이동통신 요금 비교 결과를 이달 초 공개할 예정인 가운데 이동통신 요금을 둘러싼 해묵은 ‘진실게임’이 재현될 전망이다.
2년 간격으로 이동통신 요금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OECD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이 지난 2007년과 비교, 높아졌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OECD 보고서를 계기로 이동통신 사업자를 향해 요금 인하 압력을 가하는 소비자 단체는 물론이고 국회 등 각종 이익집단의 이동통신 요금 인하 주장이 재차 빗발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OECD 이동통신 요금 비교 기준이 통화요금과 기본요금으로 제한돼 망내할인 혹은 결합상품 등 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등 기준의 합리성이 결여됐다는 이동통신 사업자의 설명은 ‘구차한 자기변명’ 혹은 ‘자사 이기주의’로 치부되곤 한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이른바 ‘연중행사’다. 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 인하는 지난 2007년을 기점으로 규제기관 주도에서 시장 경쟁으로 패러다임이 변경됐다.
2007년 이전 이동통신 요금 인하는 규제기관 주도 아래 연 1회 인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요금 인가 대상 사업자 SK텔레콤의 요금을 인하, KTF와 LG텔레콤 등 후발 사업자가 SK텔레콤의 인하 수준을 고려해 요금을 인하하도록 한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은 사업자 간 자발적인 요금 인하 경쟁을 촉진하는 데 실패했다는 게 정설이다.
SK텔레콤이 규제 기관의 요금 인하 추진에 앞서 자발적으로 요금 경쟁에 나설 이유가 없는데다 후발사업자는 SK텔레콤의 요금 인하 수준을 확인하고 이에 맞춰 요금을 조정하면 됐기 때문이다.
2007년 10월 규제기관이 한동안 폐지됐던 이동전화 망내할인을 허용하는 등 이동통신 요금 인하 정책은 자율적인 시장경쟁으로 맥을 달리하게 됐다.
자율적인 시장 경쟁을 통한 이동통신 요금 인하가 과거 규제 기관 주도의 일률적인 요금 인하보다 보다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SK텔레콤을 비롯, KTF와 LG텔레콤이 가입자 유치 및 유지를 위해 망내할인 및 이동통신을 포함한 유무선 결합상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치열한 시장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8년 1년간 SK텔레콤의 망내할인 등 요금 인하 조치로, 이용자가 절약한 이동통신 요금 규모는 망내할인 1680억원, 유무선결합상품 101억원을 포함해 총 5000억원(5119억원)을 상회할 정도다.
SK텔레콤 가입자가 1년간 이동통신 요금 5119억원을 아낀 것이다. 역설적으로 SK텔레콤은 5119억원 손해(?)를 본 셈이다.
이동통신 가입자 성장세 둔화 및 사업자 간 경쟁 격화로 인한 요금 인하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이동통신 사업자의 수익률은 매년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통신시장 성장을 견인해온 이동통신 시장은 지난 2008년 말 기준으로 이동전화 보급률이 93.8%에 달하는 등 사실상 시장 포화에 직면, 성장 한계에 도달했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인한 통신비용 지출 감소가 저가상품의 선호도 증가로 나타나는 등 사업자의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회자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 사업자는 예외 없이 지속적인 투자 확대를 요구받고 있다. 요금 인하에 따른 투자 여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이동통신 사업자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곳은 어느 곳도 없다.
정체된 시장 환경에 확실한 성장동력마저 찾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동통신 사업자를 향한 끊임없는 투자 주문과 통신비용 인하 압력은 이중, 삼중의 부담이다.
이동통신 사업자의 매출이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영업이익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 사업자의 CAPEX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07년 OECD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이동통신 사업자와 비교, SK텔레콤의 EBITDA 이익은 27개 사업자 중 21위에 불과하다. 평균(40%)에도 못 미치는 35.7%에 불과하다.
EBITDA(Earnings Before Interest, Tax,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는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수익성 지표로, 기업의 실제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로 활용된다.
하지만 SK텔레콤의 매출 대비 투자비율은 27개 사업자 중 5위에 랭크된 것으로 조사돼 현금창출 능력과 투자가 엇박자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동통신 재판매 제도(MVNO: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 도입과 이동통신 요금 인가제 완화 등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기존 이동통신 사업자의 입지 축소 및 추가적인 요금 인하는 예정된 순서다.
이런 가운데 이동통신이 IT 생태계의 중심축으로 IT 산업의 선단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정보통신 전문가 진영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성장 한계’에 직면, 갈수록 투자여력이 사라지는 이동통신의 위축이 곧 IT 생태계 전반의 침체로 치닫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다.
올해 1분기 이동통신 요금 할인 규모가 4304억원에 이른다. SK텔레콤이 2354억원으로 가장 많고 KT(옛 KTF) 1013억원, LG텔레콤 937억원 순이다.
각종 할인상품과 결합상품 가입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올해 이동통신 요금 할인 규모는 지난해의 3배에 달하는 2조원대에 육박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동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와 지속적인 요금 인하라는 ‘대의명분’도 중요하지만 이미 현실로 구체화된 것처럼 자율적인 시장 경쟁 메커니즘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당장의 이동통신 요금 인하가 선순위인지 혹은 이동통신 사업자로 하여금 스스로 성장동력을 발굴할 기회와 시간을 보장, 향후 창출할 미래가치를 IT 생태계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게 선순위인지의 논란과 관련,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는 자명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경쟁이 충분하면 이동통신 요금은 인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시장 경쟁을 통한 요금 인하가 후유증 없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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