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PCB 산업 내에서 원자재·설비 등 이른바 후방산업군의 열악한 현실은 차세대 고부가 기판 산업 육성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당장 원자재만 해도 고부가 반도체 패키지용 PCB에 들어가는 동박적층판(CCL)은 일본 기업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거의 90%에 육박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부가 PCB 쪽에서 원자재 기술 수준은 일본과 비교해 길게는 4년가량 뒤지고, 심지어 대만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핵심 설비의 국산화율이 취약한 것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패키지 및 고다층 휴대폰용 기판을 제작하는 핵심 설비 시장에서 일본은 무려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반면에 한국과 대만은 저가형 제품에 치중해 있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 제작에 필수적인 CNC드릴은 여전히 국산화율이 겨우 5%에 머무는 실정이다. LG마이크론 관계자는 “핵심 고부가 PCB 제품은 고객사가 직접 설비와 소재까지 정해놓는 사례가 많다”면서 “국내 PCB 후방산업이 워낙 영세하다 보니 차세대 제품의 선행 개발은 꿈도 못 꾸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PCB 설비·원자재 산업의 경쟁력이 이처럼 낙후된 데는 PCB 업체들의 탓도 크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고부가 PCB 시장 선점을 위해 과감한 선행개발이나 양산 투자는 고사하고, 후방 협력사들에 오로지 허리띠 졸라매기만 요구하는 사례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PCB 업체 대부분이 이윤 구조가 취약한 보급형 제품 시장에서 이익 내기에 급급한 까닭에 투자 여력이 없는 것이다. 특히 PCB 설비 업계는 연매출 100억원대 기업이 손에 꼽을 정도로 열악하다. 많게는 수십억원대에 달하는 핵심 장비를 선행 개발하기는 아예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인 셈이다. 결국 PCB 업계의 취약한 이익 구조가 선행 투자 실종으로 이어지고, 다시 후방산업군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면서 고부가 기판 제조 기술 대응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셈이다. PCB 플라즈마 세정장비 전문업체인 제4기한국 백태일 사장은 “선행 개발을 감당할 수 있는 장비·재료 업체들이 드문만큼 PCB 업체들이 힘을 보태주려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특히 일본의 전례를 볼 때 원자재·설비 업체들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선택과 집중으로 외형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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