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기꺼이 가라. 그러면 혁신할 수 있다.” 대신증권은 업계 모두가 무모한 도전이라며 우려를 표했던 길을 택했다. 지난 5월 4일은 대신증권이 차세대시스템을 오픈한 날이자 2년간의 도전과 고난을 극복한 승리의 날이었다. 같은 날 하나은행, 신영증권 등 다른 금융기업들도 차세대시스템을 오픈했지만 ‘남들처럼’ 진행하지 않은 대신증권 차세대시스템에 유독 관심이 집중됐다. 금융권 최초로 핵심 업무에 자바 기반 프레임워크와 J2EE 기술을 도입했고, 자체 미들웨어 기반으로 주문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업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작부터 많은 험로가 예견되는 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J2EE 기술에 대한 성숙도와 발전 방향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있었고 혁신을 위한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차세대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오픈했다. 물론 오픈 일정이 연기되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만큼 값진 성과를 올렸던 프로젝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도전과 결심
◇두 번의 컨설팅=대신증권은 프로젝트 시작 전 두 차례에 걸쳐 사전 컨설팅을 진행했다. 2006년 말부터 2007년 초까지 한국IBM의 컨설팅에 이어 액센츄어의 컨설팅을 통해 프로젝트 진행 방향을 설정했다. 대신증권은 단순히 일부 영역에 한해 개선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코어 시스템, 클라이언트/서버 기반의 엔터프라이즈포털(EP), 엔터프라이즈애플리케이션통합(EAI), 멀티채널게이트웨이(MCG), 리스크관리(RM) 등에 이르는 전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빅뱅 방식의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컨설팅을 통해 대신증권은 기존 메인프레임 기반 환경을 유닉스 오픈 환경으로 변경하고, 자바 기반의 프레임워크 적용, J2EE 기술을 도입하는 등 빅뱅 방식을 최종 결정했다. 특히 대신증권은 J2EE 기술 기반의 IBM ‘네피스 프레임워크(NeFSS Framework)’를 기간계업무에 적용했다. 증권업계 최초로 주문·체결 업무를 제외한 전체 업무를 J2EE 기반으로 구축하는 기술구조를 채택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단한 도전이었다. 그 당시 국내에서는 은행과 보험사에서 J2EE를 일부 적용해 운영하고 있지만 전면적인 구축 사례는 없었다. 두 번의 사전 컨설팅을 진행한 것도 이런 도전에 대한 사전 검증 작업에 신중을 기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증권 김병철 상무(CIO)는 “금융업계 뿐 아니라 IT 업계 조차도 성공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심지어 ‘J2EE는 속도를 요하는 증권업무에 맞지 않다’라고 공공연히 평가하는 사람조차 있었다”며 “하지만 내부적으로 각 플랫폼의 핵심 업무에 대한 기술검증(PoC)를 통해 속도에 대한 확신을 가졌고, 프로토타이핑을 통해 충분한 구현가능성을 검증했다”고 설명했다.
#확신과 의지
◇속도 향상과 시스템 유연성에 초점=대신증권이 기존의 검증된 TPM(Transaction Processing Monitor) 방식이 아닌 J2EE 적용이라는 힘든 길을 택한 이유는 향후 기술발전 가능성 때문이다. J2EE는 향후 발전 가능성이 높은 신기술이고, 서비스지향아키텍처(SOA), 비즈니스프로세스관리(BPM), 비즈니스룰엔진(BRE) 등 비즈니스 지향적 IT기반 기술의 연계와 적용이 용이하다는 점을 높이 샀다. 하지만 기술 검증이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리스크가 큰 기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김 상무는 “누군가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하지 못한다”며 “J2EE는 호환성이 뛰어난 기술로 모든 하드웨어 플랫폼에서 운영할 수 있고 다양한 인터페이스 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즈니스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채택 이유를 설명했다.
대신증권 차세대시스템은 J2EE 기반의 기술을 도입한 것 외에도 여러 특징들이 있다. 대신증권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미들웨어 솔루션인 인포웨이(Infoway) 기반으로 주문시스템을 구축했다. 범용 패키지의 경우 상대적으로 무겁고 증권 업무에 최적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신증권은 독자적으로 개발한 솔루션을 적용했다. 이는 주문·체결속도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 주문 처리속도가 기존 대비 2배 이상, 체결 처리 속도는 3배 이상 향상됐다.
김 상무는 “인포웨이는 대신증권이 지난 20여 년간 축적된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차세대시스템에 최적화시킨, 역사가 축적된 시스템”이라며 “또 대신증권은 TPM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속도와 성능에 관련된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최고의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속도 뿐 아니라 시스템의 유연성과 확장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신증권은 증권 업무에 맞는 상품팩토리 환경을 구성했다. 즉, 애플리케이션 내부에서 상수처리(하드코딩)돼있던 상품과 관련된 속성과 조건들을 모두 데이터화 했다. 따라서 신상품을 출시하거나 업무 요건을 변경하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수정함으로써 개발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이 외에도 대신증권은 차세대 시스템을 통해 각종 전표와 보고서를 전자문서화했고, 시스템 레벨의 트랜잭션 관리가 아닌 업무거래 단위의 엔드투엔드 거래추적관리 환경을 구축해 좀 더 체계적으로 업무중심 서비스 관리와 거래 응답시간을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좌절과 오해
◇무성한 소문 난무=대신증권의 경우 새로운 시도였던 만큼 예상치 못한 문제도 많았다. 대신증권은 KRX 차세대시스템 가동 예정일과 일정을 맞춰 2009년 1월 28일 차세대시스템을 가동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KRX 차세대 일정이 연기되면서 대신증권 차세대시스템도 일정을 조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서 안정적인 시스템 오픈을 위해 3일간 연휴기간인 5월 4일로 개통일을 연기했다. 이로 인해 대신증권 차세대프로젝트를 둘러싼 업계의 소문이 무성했다. SI 업체인 SK C&C와의 문제, 경험 부족, 기술 부족 등 많은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또한 KRX 차세대시스템의 일정 연기의 주범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이에 대해 김 상무는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시스템 오픈을 연기한 가장 큰 이유는 KRX차세대시스템 오픈 연기로 인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대신증권의 차세대시스템을 KRX 차세대시스템과 연동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KRX 보다 먼저 가동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신증권은 KRX 차세대시스템을 위한 별도 개발 작업을 추진해왔고 자사의 차세대시스템을 가동하기까지 별 문제 없이 유용하게 활용했다.
대신증권측은 다만 그동안 자체 개발을 주로 해왔던 자사 직원과 SK C&C간에 서로의 역할을 분명하게 정립하기까지 초기 혼란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투입된 개발자들이 정의한 J2EE 아키텍처를 충분히 이해하고, 개발 환경이 내재화되기까지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던 만큼 생산성 문제로 인해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또 프로젝트 진행 중에 새로운 제도들이 생기면서 이를 수용하기 위해 변경하고 재테스트 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
업계에서는 실제 J2EE 환경을 적용하는 영역도 초기 계획했던 것보다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대신증권은 초기에 설정한 아키텍처 기본구조와 업무설계 결과를 그대로 구축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값진 성과
◇노력의 결실 커=대신증권 차세대시스템은 이제 오픈한지 1개월여 지났다. 현 시점에서 차세대시스템의 효과를 분석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지금까지의 가시적인 효과들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특히 주문·체결 속도가 크게 개선됐다. 김 상무는 “일부 고객이 주문확인창의 확인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체결보고가 들어오는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주문체결처리 속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며 “대신증권이 자체 개발한 주문시스템으로 주문 처리속도가 기존 대비 2배 이상, 체결 처리속도는 3배 이상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유연성을 강조한 시스템 구축은 결국 신규상품을 개발하는 데도 유용하게 적용됐다. 기존에는 상품을 분석, 설계해 테스트하고 판매하기까지 통상 8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상품팩토리를 이용할 경우 유사한 상품은 2주, 전혀 새로운 상품은 5주 정도로 개발기간이 단축됐다. 현재 대신증권이 상품팩토리로 컴포넌트화한 것은 600개 정도 된다. 이는 자본시장통합법 이후 다양하게 쏟아지고 있는 금융 신상품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내부사용자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EP시스템과 이지(Easy)계좌 개설 등 개선된 업무프로세스로 인해 업무처리절차가 쉽고 간편해졌다. 또한 EAI, MCG의 도입으로 다양한 채널과 인터페이스에 대한 일관되면서도 유연한 처리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고객도 차세대시스템을 통해 주식, 채권, ELW에서부터 수익증권,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까지 다양한 금융상품을 하나의 상품으로 통합한 종합투자상품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하나의 상품 내에서 다양한 유가증권을 투자할 수 있게 됨으로써 투자의 편리성이 높아진 것이다. 또 계좌 개설시에 고객이 원하는 계좌번호를 선택할 수 있고 평생계좌번호가 부여됨에 따라 계좌번호 변경이나 카드 재발급 없이 거래지점을 변경할 수 있다.
이처럼 대신증권의 차세대 프로젝트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현실화시킨 장본인으로 떠올랐다. 차세대 효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대신증권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려는 기업들도 조금씩 보이고 있다. 실제 차세대를 준비하고 있는 국내 한 대형 증권사 CIO가 최근 대신증권을 방문해 새로운 도전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대신증권 차세대시스템은 충분히 성공했다고 평가할 만 하다.
미니인터뷰-대신증권 김병철 상무(CIO)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창사 이래 최대의 IT프로젝트를 수행한 만큼 고민도 많았고 힘든 점도 많았다. 피말리는 싸움이었고 원형 탈모까지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돌이켜보면, 좀 더 준비를 철저히 잘 했다면, 좀 더 충분한 일정과 리소스를 확보했다면, 좀 더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인력들을 확보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2년이 넘는 기간동안 매순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대신증권에서 차세대시스템이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은 무엇인가.
▶대신증권 차세대시스템의 목표는 전사 수준의 비즈니스 전략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지원할 수 있는, 비즈니스와 IT가 이상적으로 통합된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했다. 고객, 사용자, 서비스, 전략경영 지원, 운영비용 측면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사항을 신속하게 제공하고 새로운 환경에 쉽게 개선할 수 있는 유연성을 계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다.
예전에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서 증명했듯이 ‘대신증권이 만들면 업계표준이 되고 세계가 함께 쓰는 글로벌시스템이 된다’는 말처럼 전세계에서 인정하는 글로벌 시스템으로의 위상을 계속 유지해 나아갈 계획이다.
-최근 중견, 소형 증권사들도 차세대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조언을 한다면.
▶차세대 프로젝트를 완료한 경험에 비춰 말한다면 우선 차세대시스템의 개발목적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자사 직원과 SI 업체간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프로젝트 시작단계부터 가동시점까지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SI 업체의 기술력과 자사 직원들의 업무지식을 빠른 시일 내에 융합시켜 개발생산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