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경영권 불법 승계 논란과 관련해 한 고비를 넘겼다. 10년 가까이 끌어 온 삼성 재판에서 최소한 경영권 승계 관련해서는 면죄부를 받았다. 삼성 측은 공식적으로 완전하게 판결이 종료하지 않은 점을 감안해 “할 말이 없다” 라고 짧게 논평했지만 주춤했던 ‘이재용 체제’ 구축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이 10년 만에 외부 역풍에서 ‘한숨’을 돌리고 제자리를 찾으면서 ‘삼성 호’ 향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판결 이후 삼성을 둘러싼 안팎의 최대 관심사는 법적인 굴레에서 벗어난 새로운 삼성의 밑그림이다. 경영권 승계를 놓고 법적 공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삼성은 적지 않은 경영상 제약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김용철 변호사 비자금 폭로로 삼성 특검까지 설치되면서 급기야 지난해 4월 이건희 전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룹 ‘컨트롤타워’ 구실을 했던 전략기획실을 해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이재용 전무를 축으로 ‘포스트 이건희’를 대비한 움직임이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점엔 이견이 없다. 한 마디로 이재용 체제를 위한 조직 정비와 승계 작업이 훨씬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올 초 단행한 그룹 계열사 인사에서 이 전무 측근을 주요 계열사 CEO에 전진 배치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여기에는 그만큼 그룹 안팎에서 이건희 회장 퇴진 이후 나타난 리더십 공백과 미래 성장 동력 부재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기 때문이다. ‘사장단 협의회’가 도입됐지만 임시 체제인데다 그나마도 구심점을 잃은 채 방어적인 경영에 급급하다는 비판도 여전했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아직 ‘국민 정서’라는 여론을 해결해야 하지만 최소한 법적인 문제에서는 홀가분해져 그만큼 운신의 폭이 커진 셈이다.
사실 이재용 전무는 이미 2001년 7월 삼성전자에 상무보로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아 왔다. 상무보에서 전무까지 2∼3년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빠르게 그룹 경영에서 입지를 닦아 왔다. 지난해 10월을 기점으로 외견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해외 순환 근무 중이지만 주요 계열사 CEO와 함께 세계 각국을 돌면서 주요 거래처를 챙길 정도로 사실상 ‘후계 수업’ 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렇다고 후계 구도 체제가 당장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법적 문제가 사라졌다고 해도 이른 시일 안에 이재용 전무가 경영 일선에 나서기는 아직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전무가 그룹 전면에 등장하는 시점을 삼성이 지난해 4월 약속한 지배 구조 개선과 맞물려 앞으로 최소 3∼4년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이뤄질 공산이 크다고 내다 봤다.
에버랜드를 사실상 지배 구조 체제로 하는 순환 구조는 유지하는 대신에 그룹 경영 형태에는 다소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자와 금융이라는 양대 계열사 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다만 시가총액 80조원이 넘는 전자를 지주사 체제에 편입시키는 것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은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과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전 회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반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혐의는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해 이 전회장의 경영 복귀설은 힘을 잃었다. 대법원이 항소심의 무죄 판단을 파기해 이 전 회장의 재판은 이어지겠지만 경영권 편법 승계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 판결로 일단락된 셈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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