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S사가 일본 소니TV를 누르다! 이런 놀라운 소식에 온 국민이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하며 궁금해 했을 수도 있다.
똑같은 의문을 세계적 경제지인 비즈니스위크도 가졌던 것 같다. 심층취재를 한 결과를 작년에 발표했다. 주된 요인은 S사의 공급망관리(SCM) 시스템이라 분석했다. 이 시스템은 매주 월요일 아침에 11개국에 나가 있는 20개의 TV 및 모니터 공장에 금주의 생산 및 선적 물량 지시를 낸다. 이런 정보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주말 내내 지난주의 매출, 생산, 원자재 공급, 제품개발 정보를 전 세계에 걸쳐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해당 시장별 수요예측을 주, 월, 분기별로 분석해낸다. 월요일 아침의 생산계획은 이러한 체계적 분석정보에 기초하니 경쟁자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
이 시스템은 전 세계에 펼쳐진 영업망, 공급망, 공장 등을 연계시켜 시장 수요에 최적으로 대응하면서 재고 물량을 최소로 가져갈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 삼성전자의 평균 재고 수준이 2004년엔 21일치 물량이었던 게 이 시스템의 활용으로 2007년엔 15일치로 줄었다. 이는 일본의 어느 전자회사라도 따라오기 힘든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시스템의 효과는 재고수준 감축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제품 출시 속도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 경쟁기업보다 신제품 발표를 두 배나 자주할 수 있고, 또한 신제품을 전 세계 시장에 동시에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평가된 것도 이 시스템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런 추세는 MIT대학 로스(Ross) 연구원 등의 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의 대부분은 S사와 같이 핵심 업무(core process)를 디지털화(digitize)했음을 발견했다. ERP 등으로 이전에 업무별로 따로 돌아가던 시스템을 연계통합하고 핵심 데이터가 서로 연동되어 즉시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정비함으로써 조직간, 기능간, 시스템간의 불필요한 장벽과 비효율성을 거둬낸 것이다. 즉, 핵심 업무의 디지털화가 기업을 훨씬 더 민첩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오늘날 같이 불확실한 경제 환경에서 민첩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민첩성(agility)이란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을 말한다. 몽고가 소수의 군사력으로 전 세계를 정복한 것도 빠른 기마병 때문이라 알고 있듯이, 오늘날 성공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도 민첩해야 한다. 급변하는 수요와 환경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공룡이 사라지듯이 거대한 기업도 쓰러질 수밖에 없다.
최근 LG CNS 초청으로 한국에 온 INSEAD 도즈 교수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처럼 불확실하고 변화의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 기업들이 자신들의 핵심역량만 믿고 변화에 둔감해지면 망하기 십상이라고 질타했다. 한번 승자가 되어 안주하게 되면 더 이상의 혁신이 스며들 여지가 없어 결국 내리막을 걷게 되는 승자의 저주에 빠지게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살아남기 위해선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맞춰 전략을 수정하며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해야 하는 전략적 민첩성을 강조한다.
이런 민첩성은 핵심 업무의 디지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핵심 업무의 디지털화는 기업의 가장 필수적인 업무를 안정적으로 그리고 예측가능한 수준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고객 및 판매 동향과 같은 환경변화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경영진은 일상적 업무보다는 더 핵심적이고 혁신에 필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즉 어떤 제품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성공할 것인가, 이 제품 아이디어를 어떻게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 등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수 있게 된다. S사와 같이 핵심 업무를 디지털화한 기업들이 더 높은 수익성과 더 빠른 제품 출시 효과를 거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같이 정보화의 목표도 기업을 더 민첩하게 만드는 데 두어야 한다. 오늘날 경제위기로 한층 움츠러진 CIO 들이여! 기업의 민첩성을 화두로 다시 전진해 나가자.
이를 위해 우선 여러분의 기업이 얼마나 민첩한가를 정확하게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한 방안으로, 지난 3년 내에 출시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부터로의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민첩성의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자사의 민첩성은 어떤 수준인지, 업종 평균에 비해 어떠한지, 경쟁기업과는 어떤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지 등을 조사해 경영진에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민첩성과 같은 비즈니스 화두야말로 오늘날의 경영진에게 다가갈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김성근 중앙대학교 교수(한국CIO포럼 대표간사) sungk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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