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의 시네마 읽기]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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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더’의 칸 영화제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봉준호 감독은 기록을 세우게 된다. ‘괴물’ ‘도쿄’에 이어 세 편의 작품이 연속으로 칸에 진출, 그는 이제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는 인물로 부상했다. 경쟁, 비경쟁과 더불어 공식 섹션인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은 세계 각국의 영화 중 ‘비전과 스타일을 겸비한 독창적이고 남다른(it presents a score of films with visions and styles, Original and Different films) 작품’만을 상영하는 자리다. 선발의 가장 첫 번째 기준은 무엇보다도 창의성이다. 잉마르 베리만, 장뤼크 고다르, 빔 벤더스, 마이클 무어 등도 이곳을 거쳐갔다.

 칸 영화제 초청으로 더욱 유명해진 ‘마더’는 사실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 김혜자의 혼신의 연기, 전통적인 엄마 이미지를 비틀고 변주한 힘 있는 드라마로 이미 기대를 끌었다. 적어도 엄마를 새롭게 그렸다는 점에서 마더는 대단한 작품으로 한국 영화사에 자리 매김할 만하다. 봉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뜨겁고 강렬한 부분, 어떻게 보면 불덩어리에서도 제일 뜨거운 열의 핵심 같은 곳을 파고드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 마더는 영화적으로 새로운 도전이다.”

 새로운 도전, 그 말이 적절한지를 놓고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쨌든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도 이 작품은 신선하다. 적어도 우리가 전부터 꿈꿔온 어머니상과는 매우 다르다.

 읍내 약재상에서 일하며 아들과 단둘이 사는 엄마(김혜자). 그녀에게 아들, 도준(원빈)은 온 세상과 마찬가지다. 스물 여덟. 나이답지 않게 제 앞가림을 못 하는 어수룩한 그는 자잘한 사고를 치고 다니며 엄마의 애간장을 태운다. 어느 날, 한 소녀가 살해당하고 어처구니없게 도준이 범인으로 몰린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엄마. 하지만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종결 짓고 무능한 변호사는 돈만 밝힌다. 결국 아들을 구하기 위해 믿을 사람 하나 없이 범인을 찾아나선 엄마. 도준의 혐의가 굳어져 갈수록 엄마 또한 절박해져만 간다.

 시놉시스에서 볼 수 있는 마더는 ‘김혜자에 의한 김혜자를 위한’ 작품이다. 47년 연륜의 중견 여배우는 한국인에게 한 개인이 아니라 ‘엄마’ 그 자체다. 바닥 모를 사랑과 희생 정신, 엄마에게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을 완벽한 연기로 구현해온 그녀에게서 봉준호 감독은 다른 모습을 봤다. 그녀 안에 있었으되 아무도 보지 못했던 히스테릭한 기운과 예민함. TV 드라마에서 보여줄 기회가 없던 강렬하고 파괴적인 모습을 위해 마더스토리는 구상됐다. 특히, 어쩌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자기 안 부정적인 에너지까지 고스란히 사용해도 되는 일종의 굿판 혹은 운동장을 봉준호 감독에 의해 비로소 만난 배우 김혜자. 그녀는 70을 눈앞에 둔 지금, 우리 생애에 드문 경험을 제공한다.

 기존 봉 감독의 영화들은 장르의 특징을 빌려오면서도 기존 컨벤션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비틀어왔다. 그 결과 그의 영화는 특정 장르의 고유한 미덕과는 무관하게, 무조건 새롭고 재미있다는 반가운 선입견을 한국 관객에게 형성시켰다. 마더 또한 그렇다. 영화적 재미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전작들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탄탄한 드라마, 개성과 매력을 겸비한 캐릭터 군단, 서스펜스 직후의 유머 등.

 전작과 달리 이 영화에는 다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죽을 것 같은 사투다. 오직 ‘엄마’와 그의 진심어린 ‘사투’는 이 영화를 끌어가는 기제다. 괴물과는 또 다르다. 이건 억울한 누명을 벗는 일이다. 영화는 사건 자체의 드라마틱함보다는 극단으로 몰린 엄마의 심리와 행동 쪽에 방점을 찍는다. 외형적 스케일보다 내면의 스펙터클에 주목하고, 엄마의 사투를 끝까지 몰아가 그 감정의 등고선에 관객을 동참시키는 것이다. 감독의 말대로 태양열을 한 점에 모아 태우는 돋보기처럼, 엄마라는 본원적 존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를 치열하게 펼쳐 보이는 데 영화는 대부분을 할애한다.

 특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연쇄살인마가 횡행하는 현실에 무감해진 한국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또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엄마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정직한 드라마는 장르적 힘을 등에 업는 변화구가 아닌 공 끝이 살아 있는 직구다.

 한정훈기자 existe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