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저작권 관계맺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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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하는 일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는 걸 느낀다. 혼자서 열심히 하면 되는 일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이뤄지는 일이다. 좋은 기획안을 만들기 위해 애쓰거나 건강을 지키려고 운동하는 것은 전자에 속한다. 그러나 만든 기획안을 다른 부서와 협의해 확정하거나 회사에 체력단련실을 만들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후자에 속한다.

 어리고 젊을 때는 혼자서 열심히 하면 풀리는 일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과 같이 풀어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그런 만큼 타자(他者)와의 ‘관계맺기’ 노하우도 점점 중요해진다. ‘커뮤니케이션의 기술’ ‘설득의 심리학’ ‘상대의 마음을 읽는 노하우’ 등과 같은 인간관계형 서적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다. 세계적인 협상 전문가 허브 코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거대한 협상 테이블이며 세상의 8할이 협상”이라는 말로 관계맺는 기술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디지털 저작권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다양한 국면으로 전개된다. 서울중앙지검은 1일 저작권 방조 혐의로 인터넷 사이트 두 곳의 대표이사를 기소했다. 문화부는 지난달 39명의 헤비업로더를 적발했으며, 법무법인에 의한 고소로 사이버수사대에 불려간 네티즌이 부지기수다. 이것만 보면 저작권 문제 해결은 매우 간단해 보인다. 침해한 사람을 처벌하고, 학습효과를 통해 사회 구성원에게 각인시키면 그만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저작권을 침해했더라도 일정한 교육을 이수하면 기소유예를 해주는 제도를 마련한 것이나 최근 저작권 사회협약체, 클린포럼 등 저작권자와 인터넷서비스 업체 간 협의 테이블이 마련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꼭 사회적 저항 때문만은 아니다. 저작권 문제가 침해의 처벌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배타적인 권리인 동시에 상대적인 권리다. 이용할 대상이 없으면 의미도 없어진다. 따라서 저작권은 창작자인 ‘나의 것’이지만 공개된 저작물은 ‘우리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저작물을 잘 만드는 것은 창작자의 몫이지만 유통업체(ISP·OSP)가 저작물을 이용자(네티즌)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어느 정도의 대가를 받을 것인지는 철저히 ‘관계맺기’에 의해 이뤄지게 된다. 더욱이 복제와 전송이 무한대로 가능한 디지털 시대에는 어쩌면 이 같은 ‘관계맺기’의 성공이 저작권 문제의 해법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이 부문을 너무 소홀히 한 측면이 없지 않다.

 문화부가 이런 문제의식하에 올 1월부터 매달 저작권 클린포럼을 개최해오고 있다. 저작권자와 인터넷 기업이 같이 모여 디지털 콘텐츠 산업 현황이나 저작권 이슈 등에 관한 강연을 듣고 토론하는 자리다. 충돌이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저작권 신탁단체 임원이 유통 활성화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웹하드 업체 대표가 저작권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말하기도 한다. 저작권보호센터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만나기만 하면 늘 험악했는데 요즘은 정말 분위기가 좋아진 것”이라고 귀띔한다. 대립만으로는 서로 얻어갈 것이 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문태준 시인은 ‘떨림’이라는 책에서 “같은 구름이라도 저녁 햇빛과 만나면 노을이 되고, 잘 흐르던 시내가 벼랑을 만나면 폭포가 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와 인터넷 사업자가 만나 ‘과거’라는 웅덩이에서 씨름만 할 수도, ‘미래’라는 바다를 같이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조인혜 미래기술연구센터 팀장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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