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경 논의가 한창이다. 규모도 10조원에서 50조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추경 10조원 이야기가 처음 나올 때 우선 그 규모에 놀랐다. 우리나라 일반회계예산이 10조원대로 넘어선 것이 불과 25년 전인데 이제는 한 회 추경만 그 정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차례 논의를 거듭하면서 20조원을 정치권에서 먼저 꺼내기에 이르렀고, 50조원 논의도 가볍게 이뤄지고 있다. 추경예산 편성 규모는 대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에 근거를 두고 적정여부를 이야기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추경편성에 따른 관리대상 수지 적자다. 이를 감안해서 적정규모로 편성한다. 이에 근거를 두고 가장 보수적인 규모가 GDP의 1∼2% 수준인 10조∼20조원이고, 이 규모로 편성한다면 관리대상 수지적자는 GDP의 3.5∼4.5%에 이르므로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관심사항은 재정규모가 적정한지보다 이를 어디에 쓸 것인지 하는 점이다. 과연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기본적으로 추경으로 늘려 쓴 금액에 따라 국가경제에 어떤 효과를 가져 오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디지털 추경예산은 지식경제부·방통위·행자부·국토부 등에서 1조2000억원을 작성했다고 보도됐다. 재정경제부와 협의 중인 이 추경규모는 아마도 10조원 수준의 추경규모를 상정해서 작성한 것이라 생각된다. 매우 소극적인 규모일 것이며, 일거리·일자리 만들기에 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분야는 최근에 들어 IT서비스나 SW산업의 민간투자가 많이 위축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항은 지난해에 재정을 편성할 때 10조원의 예산을 늘리면서도 연구개발(R&D) 예산은 한 푼도 끼어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정보통신 분야는 자본축적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더구나 기술발달이 빠른 디지털 분야에 투자를 늦추면 생산성 시차는 말할 것도 없이 국제시장에서는 도태를 면할 길이 없다. 더 이상 공공이나 민간의 디지털재정 투자를 늦추는 것은 위험하다. 일본도 4월에 20조엔(310조원) 규모의 제1차 추경 예산안을 편성할 계획이다. 주요 사업은 올해로 앞당겨 추진하는 한편 신칸센 정비 공사 촉진과 광케이블 부설 확대, 태양발전과 차세대 자동차의 보급과 개발 등으로 활용방향을 잡고 있다.
추경에서 일거리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지식과 사람에 대한 투자여야 한다. 단기적 측면의 경기부양과 장기적 측면의 성장잠재력 확충을 함께 생각한다 해도 대규모 R&D 투자로 미래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는 디지털 분야에 대한 추경 활용은 적절하며 타당하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추경은 투입의 효과가 곧바로 나타나야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사업으로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시행 중인 사업 속도를 높이는 것이 즉각적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우리가 그동안 축적했던 IT노하우를 활용하는 사업에서 단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디지털 분야 투자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이끌고, R&D 투자를 늘려 국산 연구 장비 자립화에도 추경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전략적인 부문에서는 과감히 공격적으로 편성해 미래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흥재 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natugari@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