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공산(無主空山), 한국시장 잡아라.’
최근 경쟁적인 증설 투자를 단행한 결정형 태양전지 업체를 놓고 외산 장비업체들의 수주전쟁이 한 층 뜨거워졌다. 산업 초창기 공급실적을 쌓아 시장 선점효과를 노린다는 전략이다. 국산 장비업체들이 박막형 장비 개발에 매진해 있는 탓에 외산 업체들에 안방을 내줬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대표 민계식)은 최근 세계 최대 태양전지 장비업체인 ‘센트로섬’과 연 250메가와트(㎿) 규모의 태양전지 제조 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60㎿급 1공장 구축시 역시 독일계 장비업체인 ‘로스 앤 라우’에 관련 설비를 발주했지만 이번 증설 과정에서 공급사를 바꿨다.
전세가 뒤바뀐 사례도 있다. 미리넷솔라(대표 이상철)는 지난달 120㎿급 2공장 설립을 위해 로스 앤 라우와 제조 설비 일괄수주계약을 체결했다. 당초 센트로섬과 로스 앤 라우 양사 장비를 모두 고려했으나 최종 발주 과정에서 로스 앤 라우가 채택됐다. 오는 4분기 양산을 계획한 한화석유화학(대표 홍기준)도 미국 스파이어와 장비 일괄수주계약을 체결하면서 플라즈마 화학증착장비(PECVD)는 로스 앤 라우의 제품을 도입키로 했다. PECVD는 태양전지 제조 핵심 장비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센트로섬과 로스 앤 라우가 전 세계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국내서도 비슷한 양상”이라며 “증설과정에서 공급사가 바뀌는 등 한국시장을 놓고 외산 업체들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KPE·신성홀딩스 등도 독일 등 해외 업체로부터 장비를 공급받았다.
일각에서는 국산 업체들이 결정형 장비 시장에 뒤늦게 뛰어드는 바람에 외산업체들이 국내 시장을 독식할 것이라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 업체들은 일찍이 LCD 제조 공정과 비슷한 ‘비정질실리콘(a-Si)’ 태양전지 제조 장비 개발에 매진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이 최근 미국 결정형 태양전지업체에 PECVD를 공급키로 한 것을 제외하면 국산업체들의 결정형 장비 공급계약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태양전지 제조 설비는 개별 장비 생산기술은 별로 어렵지 않은 반면 이들을 한 데 묶어 안정화 시키는 작업은 쉽지 않다”며 “경험이 많은 독일 업체들이 일괄수주계약을 통해 시장을 잠식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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